힘겹게, 힘겹게 나가는 듯하나, 돌아보면 제자리였다.
김영기과장의 자료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초순수 공정의 개요와 상황별 대응 방안이 포함되어 있었고,
Display 공정별 특성과 그에 맞는 구성이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Display 공정별 특성과 그에 맞는 구성은 현장과 바로 접목이 가능했다.
책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책과 현장의 괴리감, 간극을 좁혀주는 듯했다.
자그마한 틈으로 빛이 새어 들어오는 듯했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
동트기 전 어두운 새벽길을 더듬거리며, 걷고 있다 생각했다.
조금 더 걷다 보면 동이 트며, 밝아질 거라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거라
하루, 하루 지내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럴 것이라, 그래야 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희망과 절망은 서로 공존한다는 걸 당시의 나는 알지 못했다.
불행하게, 안타깝게, 아니 아둔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평범한 토요일이었다.
6 공장의 공정배관과 기기 설치가 모두 계획되어 있던 날이라
김과장과 나 모두 출근했다.
현장 투입을 마치고 한, 두 시간쯤 지났을까
휴대전화가 요란스레 울린다.
“김정우차장님이십니까?”
“예, 제가 김정우입니다.”
“중앙통제실입니다.
작업 중 C.R(Crean Room) 내 소방배관 파손이 있어 현재 긴급 복구 중입니다.
지금 속히 통제실로 와주셨으면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공정배관 연결 중 소방배관 파손이 있었던 것 같다.
서둘러 김과장에게 연락했다.
‘C.R에 있다면 연락이 안 될 텐데’
뚜, 뚜, 뚜 신호음이 반복될 때마다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이다.
두·세 번 전화가 끊어지고 다시 연결되기를 반복하다 김과장이 전화를 받았다.
“예, 차장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C.R에 있어서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현재 통제실로 가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김과장도 바로 통제실로 향하겠다 한다.
통제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익숙한 얼굴이 있다.
“김차장, 오늘 당직이야?”
방재과장이다.
“김영기과장과 제가 당직입니다.”
“김과장은 전화가 안된다. 소방배관 내 소화수는 강제 배출해서 피해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이현소장한테 보고하고, 오후에 현장 확인하자!”
“예, 감사합니다. 과장님”
소장에게 사고 개요와 대응 사항을 보고 하니 김과장이 헐레벌떡 통제실에 도착했다.
나도 모르게 쉽지 않은 하루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