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얽혀있는 생각, 가벼운 발걸음
이현소장에게 그만 두겠다 이야기한지 이틀쯤 지났을까
박지현과장이 나에게 이야기 나누자 했다.
“차장님, 그만 두신다 들었습니다.
혹시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초순수(제조시설) 공사가 익숙하지 못하다보니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지만
팀에 부담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요.“
“혹 다른 이유가 있으시지는 않을까 해서요?”
“제가 그만두는 이유가 중요한가요?
다들 홀가분해 할 줄 알았는데 허허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회의나 이런저런 자리에서
나나 김영기과장을 여러 번 면박 주던 박과장 아닌가요?
나는 이제 그만두고, 김과장은 다음 달이면 중국 현장으로 파견 갈텐데
눈에 가시 같던 이가 둘이나 떠나니 홀가분해 할 줄 알았죠?
피차 불편한 자리이니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뒤돌아서는 나에게 박과장은 죄송하다 이야기했지만 곧이 듣지 않았다.
진심이 아닐 것을 알고 있기에
구미 Display현장이 처음 개설되었을 때 박과장은
초순수(제조시설) 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협력사 담당자였다고 한다.
급작스러운 수요 증가로 인하여 생산뿐만이 아니라 Utility 증설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며, 그즈음 대대적인 인원 채용이 있었다 했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 생각한다.
교육을 거치지 않고 실무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원이 필요했고,
그 필요에 가장 부합했던 이가 박과장이 아니었을까
더군다나 당시 초순수(제조시설) 공사 책임자는 이현소장이었다.
여러 해 손발을 맞춰왔기에 서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거기까지였다면 나나, 김과장이 곤란을 겪지는 않았겠지만
한해, 두해로 끝날 것 같던 Display 수요는 몇 해를 이어갔고,
회사는 중요 인력에 대한 내재화를 부르짖으며,
협업 중이던 건설사 인원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그 인원 중 한명이 김영기과장이었다.
나 역시 기계, 배관 설계, 시공 관련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라는 이유로 합류하였고
초순수(제조시설) 공사를 혼자 담당하며, 진행하던 박과장에게
나나 김과장은 협업해야할 동료라기보다 불편한 경쟁자라는 인식이 컸다.
사업장의 특성을 공유하기보다
아직 현장 확인이 미흡하시네요, 노력하셔야겠어요 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던 박과장이었다.
그런 박과장이 이제와서 왜?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양심이라는 녀석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것일까?
아무렴 어떠랴
지금 나에게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며칠 남지 않은 시간동안 내가 해야 할일에 집중할 뿐이다.
불쾌함과 불편함을 걷어내고자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다행이 진행하던 공사는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고,
박과장의 이런저런 참견이 있었기에 굳이 인수인계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김정우차장님, 김차장님”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았다.
강현과장이다.
“어디가십니까?”
“아니요, 공사도 마무리되어가고 며칠 남지 않아서 여기저기 다니고 있죠, 허허허”
“그만두시면 어디 가실 곳은?”
“어디든 가겠죠, 당분간 쉬려고요.”
강과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사무실로 향했다.
그렇다 나는 처음으로 계획 없는 퇴사를 저질렀다.
앞이 깜깜하고 막막하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알 수 없는 자신감으로 퇴사를 저질렀다.
내가 이곳에 더 있으려하면 할수록 망가지는 것은 나일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