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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갬성장인 Apr 09. 2024

달갑지 않은 이방인을 떼어내 보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옥죄고 있었던 꼬리표를 떼어내는 첫걸음!

달갑지 않은 '상세불명의 우울에피소드', 번아웃(소진) 증후군으로 동반된 불면과 공황장애를 극복해 보자!

이제 달갑지 않은 이방인 떼어내기, 불편한 꼬리표 떼어내기의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나의 이방인 떼어내기의 시작은 작은 것에서 출발하였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으며, 마음건강센터 상담을 받으며, 나는 내가 그동안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꿈꾸던 것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야 하는 것,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에 대한 나에게는 책임과 의무만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참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무엇을 좋아하세요?"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괜찮아요,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시겠으면 제일 행복했던 시간은 언제였나요?"

거듭되는 질문에도 무엇하나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는 누군가의 말에 의미를 찾고 답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만 했다.

낱말 하나하나가, 단어 하나하나가 흩뿌려져 허공에 맴도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제일 행복했던 시기가 언제였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고, 그들 역시 재촉하지 않고, 나를 기다려주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책을 읽을 때가 제일 즐거웠던 것 같아요." "책 읽는 것을 좋아하시는군요."

"책을 읽었던 기억은 희미하여 잘 나지 않지만 책을 읽을 때가 가장 즐거웠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 대답이다. 하지만 당시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의 대답이었다.

"그럼,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있나요? 없다면 어떤 책을 읽고 싶은가요?"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없지만, 따뜻한 이야기를 가진 책을 읽고 싶어요."

"아! 그럼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을 추천받아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요?"

그날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상담을 마쳤다.


그렇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의 나는 책을 참 좋아했다.

아주 어릴 적에는 동화를, 조금씩 커 나가며 펄벅, 톨스토이, 헤밍웨이, 모파상, 괴테를 좋아했다.

(톨스토이는 덤덤한 듯 써 내려가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좋았고, 헤밍웨이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묘한 끌림이 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여유는 없었지만 한동안 책을 놓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에는 류시화가 좋았고, 조정래가 좋았다.

(류시화의 시는 따뜻했고 고요한 울림이 있었고, 조정래는 장쾌하며, 힘 있는 문장이 좋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에게 맡겨진 책임이, 의무가 늘어나며, 

 책임과 의무에 짓눌려 정작 나를 위한,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들과점점 거리를 두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함께하는 이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나는 어떤 이야기에도 낄 수가 없었다.

당시의 나는 나에게 맡겨진 일, 주어진 일 외에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으니까, 아니 일 외에는 그 무엇도 알지 못했으니까

살아기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살아가는 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당시의 그 바보 같은, 무모한 순간들이 모여 달갑지 않은 이방인의 방문을 허락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바보같이

늦었지만 이제 바보 같은 삶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랫동안 일 외에 그 무엇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나는, 엄마를 잃어버리고 울고 있는 어린아이 같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어버린 체 표류하고 있는 배 같았다.

안타깝지만 그때의 나는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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