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갬성장인 Apr 02. 2024

언제부터인지 나와 함께하는 이방인

이 반갑지 않은 이방인이 언제부터 나와 함께였지?

이 반갑지 않은 이방인이 언제부터 나와 함께였는지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벌써 함께한 지 몇 해가 지나 기억 속에서 흐려져버린 것인지, 함께한 지난 몇 해가 나를 포기하게 만든 것인지 잘 모르겠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몇 해 전부터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처음은 네 시간, 다섯 시간, 다음은 두 시간, 세 시간, 잠을 자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어만 갔다. 간혹 어떤 날은 밤을 꼬박 새운적도 있었다.

왜일까, 무슨 일인거지?

그래,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잠을 설친다라는 말은 내 기억 속에 없었다. 아니,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빛을 보고 난 이래로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이었다.

몹시 당황스러웠다.


많은 고민들이 이어졌다. 커피를 많이 마셨나? 커피를 줄여볼까? 요 며칠 피곤했니 그런 걸까?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나 딱히 이렇다, 이것 때문일 거야라는 답은 없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이유 때문일 거야라며 명쾌하게 이야기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런 이유도 알지 못하고, 그렇게 한 달, 두 달을 보내고 있었다.


마치 불면증이라는 이 반갑지 않은 이방인을 곁에 두고 바쁘지 않아서 그럴지도, 피곤하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바보 같은 생각으로 나 스스로를 몰아붙이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나는 더욱 망가져갔다.

잠을 설치지, 아니 불면증에 시달려보지 않은 이에게 잠들지 못하는 고통에 대하여 설명하여야 한다면 그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싶다. 나 역시도 반갑지 않은 이방인과 함께하기 전까지는 겉으로는 이해하는 척, 안타까운 척하였지만 내심 바쁘다면, 피곤하다면 잠을 설치게 될까?라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보 같은 시간들이 지나 불면증이라는 이방인은 나의 공간에,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방문하였다. 아니 어쩌면 나의 공간에서 나를 쫓아내고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이 지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갑작스럽게 숨이 가빠오기도, 숨이 쉬어지지 않기도, 어떤 날은 너무 우울하기도, 또 어떤 날은 너무 예민하기도 했다. 너무 낯선 내 모습에 덜컥 겁이 났었다.

내가 살아가며 이 이름을 찾아볼 날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나에게 이런 생각조차도 사치였다.


황급하게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고,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는 마음건강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은 마치 나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 온 듯이 친근했고, 편안하게 대해주었다. 그리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할 때는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러했을 것이라 이야기해 주었고,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 혼자 참아오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도닥여주었다.

마음건강상담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았다. 이곳 또한 편안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상담선생님은 돌고 돌아오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제 같이 이겨내자며 힘을 북돋아 주었다.


정신건강의학과와 마음건강상담센터의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던 나에게 내가 살아가며, 겪으리라 상상하지 못했던 꼬리표 하나가 생겨났다. 오래전부터 달고 있었던 꼬리표를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고, 그 꼬리표를 이제야 떼어내려 한다.

나의 꼬리표는 참 길고도 낯설었다.

'상세불명의 우울에피소드' 내 꼬리표의 학술명이다.

내 꼬리표는 많은 이들이 이렇게 부른다. 번아웃(소진) 증후군으로 인하여 동반된 불면과 공황장애

오랜 시간 나에게 붙어있던 꼬리표의 본모습을 이제야 알게 되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