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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갬성장인 Apr 16. 2024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

낙수가 바위를 뚫듯이 천천히 시작해 보자, 나는 아직 젊지 않은가!

좋아하지만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하나하나 시작해 보기로 했다.

먼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읽기는 어쩌면 환자가 병을 이겨내기 위하여 좋은 의사와 약을 찾듯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손에 들었던 책은 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였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손이 가는 책이었다. 

거짓말 같지만 계략적인 줄거리도, 황보름 작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책을 좋아했다는 기억을 가지고, 서점에서 반나절이상 머물 수 있었던, 의식 속 언덕너머의 기억이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로 손이 가게 하였는지 모르겠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단숨에 읽어 내려갔고, 그날은 지긋지긋한 불면증이 너무 고마웠다. 

아니, 다음날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조차도 잊어버린 체, 졸린 눈까지 비벼가며 읽었다.

나와 비슷한 이들이 옆에 함께 있어주는 듯했다. 

나에게 귀엣말로 "힘내! 괜찮아!"라고 속삭여 주는 듯했다.

책 속에 있는 이들에게 위로를 받았고, 그들과 교류하는 듯했다. 

아마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고 지금까지 읽고 있는 책들이 모두 비슷비슷한 듯하다. 

어찌 되었든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통해 나는 황보름 작가의 책은 모두 읽었고 어느 순간부터 열혈팬(독자)이 되어있었다. 후후후


당시의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진료를, 한 달에 두 번 정도 상담을 받았다.

어느덧 진료일이 되었다.

"정우님, 요즘은 기분이 어떠세요?"

"아, 책을 읽고 있습니다. 소설인데 저와 비슷한 이들이 서점을 배경으로 웃기도, 울기도 하며 서로를 배려하고 아껴주는 내용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아, 책 읽는 것을 좋아하시는군요, 때로는 약보다, 정우님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아, 그럴 수 있겠네요."

"책 읽는 것 외에 또 좋아하시거나 하고 싶은 것들이 있나요?"

"예, 요즘은 풍경이 좋은 곳에서 커피나 차를 마시며, 멍 때리는 것이 좋아졌습니다. 아침 시간의 카페는 은은한 커피 향과 고소한 빵내음, 달콤한 디저트 향이 머무르는 듯하여 너무 좋습니다."

"이제야 정우님이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 하나하나 떠 오르시나 보군요."

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그것들을 어떻게 하면 자주 할 수 있을까, 자주 접할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약간 달랐다.

"정우님, 제가 한 가지 조심스러운 제안을 들일까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오늘은 부쩍 조심스러우시네요, 조금 긴장되는데요."라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니, 그는 나에게 휴직을 제안하였다.

검사결과가 매우 좋지 못하다고 했다.


불안은 최고조에 달해있었고, 자존감은 이미 바닥을 친지 오래된 듯하다 했다.

뭐, 그 변화를 내가 먼저 체감하고 있었기에 새삼스럽지도, 놀랍지도 않았다.

"회사도, 저도 각자의 사정이라는 것이 있어 고민해 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도 애써 설명하려, 강요하려 하지 않았다. 검사결과를 설명해 주며, 지금은 일과 분리되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담담히 이어나갔다.

"드넓은 강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도 작은 하천이, 이 작은 하천이 다시 모여 강이 되고, 강이 다시 모여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가 되듯 누군가가 채우지 않고 쓰려고만 한다면 언젠가는 말라버리지 않을까요?

지금 정우님의 상태가 그러합니다." 진료를 마무리할 때쯤 그의 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래 언제부터인지 나에게 일 이외에 다른 무엇이 있었을까, 심지어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야기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게, 참, 안타까웠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많은 생각이 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동안 '나'를 너무 버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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