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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May 20. 2022

07_뭐 다 안 된대

해피엔딩이 아닐지라도 - 시험관 고차수 난임에세이


자궁경을 통한 수술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2-3년 전쯤에도 한 번 받았었는데, 그 효과를 보긴 했던 것인지 수술 3개월 후 이식한 배아가 착상이 되고 임신이 되긴 했었다. 하지만 수술 후 워낙 고생을 좀 했던 터라 사실 다시 받고 싶지 않은 수술이었는데, 얼마 전 옮긴 병원에서 이식하기 전에 자궁경을 한 번 더 해보자고 한다. 요즘은 이 과정(시험관의 여정)을 언제까지 하겠나 싶은 생각이 크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고 한 번 잘 견뎌보자 싶다.


예약된 날짜가 되어 병원에 갔다. 초음파를 보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그날로부터 일주일 후 오전에 하기로 했다. 수술 전 안내사항을 알려주는데, 전과 다른 건 수술 전날 밤에 싸이토텍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싸이토텍은 내게 큰 트라우마가 있는 약이다. 유산 시 자궁수축을 통해 잔여물을 배출할 수 있게끔 해주는 약인데, 출혈도 많고 통증이 어마어마하다. 병원마다 자궁경 전 처치 방법이 조금씩 다르긴 한데, 종종 싸이토텍을 처방하는 병원이 있다고 듣긴 했다. 자궁경 전에 싸이토텍을 복용하게 하는 이유는, 자궁 경부를 부드럽게 해서 수술이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옮긴 병원에서 이 처방이 나올 줄은 몰랐다. 순간 겁이 너무 나서 안 먹으면 안 될지, 이 약에 대한 공포증이 심하다고 얘기해보았다. 이번에는 임신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큰 통증이 있지는 않을 거라고 한다.


다음 안내사항은 여기 적힌 것 중 현재 복용하는 약이 있으면 수술 전까지 복용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오랜만에 정형외과를 찾았었고, 소염제를 처방받아먹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 약을 중단하라고 한다.




손목과 무릎 통증으로 힘든 요즘이었다. 20대 후반부터 시작된 관절통과 인대의 불편함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심해진다. 워낙 마른 편이었고 근육량이 없다 보니 관절과 연골에 가해지는 무리가 늘 있었다. 뾰족한 것에 대한 무서움이 있어 침은 잘 못 맞고 정형외과를 주로 다녔는데 어쩌다 생각나면 한 번씩 가서 하고 오는 물리치료가 큰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관절치료는 꾸준히 해야 하는 거라고 가능만 하면 매일 와서 물리치료를 받으라고 했는데, 매일 병원에 가서 한 시간씩이나 누워있는 시간을 내기는 어려웠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야근에 잠잘 시간도 제대로 없던 사회 초년생 시절이었다. 어쩌다 또 시간이 난다 해도 그 시간에 연애를 하든지 아니면 잠시라도 더 놀아야 했다. 파스 좀 붙이고 견디면 되는데 그냥 그렇게 누워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던 때였다.


조금이라도 어리고 젊을 때 더 관리를 제대로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시험관을 시작한 이후 체중이 많이 늘었다. 시험관을 할 때 투여되는 여러 가지 호르몬제에는 몇몇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적혀있는데, 그중 하나가 체중 증가이다. 살이 찐다기보다는 처음에는 말 그대로 체중이 증가한다.


시험관을 하며 체중이 증가하는 원인 중 하나는 수분 때문이다.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은 몸의 수분을 잡아두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 또 과배란 시 투여되는 호르몬제는 난포를 여러 개 키우면서 복부팽만, 난소 비대 등을 발생시킨다. 그래서인지 시험관 중에는 몸이 매우 많이 붓는다. 부스터 역할을 하는 성장호르몬까지 맞으면 후반기에는 구두 같은 신발은 도저히 신을 수 없을 정도로 온 몸이 퉁퉁 붓는다. 찻수가 끝나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붓기가 빠지고 체중도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런데 '완전히'가 아니고 '거의'이다. 미세하게 증가된 체중의 그람수는 빠지지 않고 남아있다.


잘 먹는데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이었다. 물만 마셔도 살찌는 체질이라는 걸 들어보긴 했는데 실제로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어떤 것인지 잘 몰랐다. 또 붓기를 그냥 두면 살이 된다는 얘기도 진짜 그런 걸까 싶었다.


초반 몇 차수 동안에는 증가폭이 미세해서 체중이 많이 늘고 있는지 잘 몰랐다. 또 붓기가 빠질 새도 없이 두세 달 간격으로 계속 시술을 하니 지금 이 체중이 호르몬제 영향과 붓기 때문인지 진짜 체중인지 정확히 알 길도 없었다. 작년쯤 인바디를 한번 해 볼 기회가 있었다. 예전에 비해 체중이 4킬로 정도 증가되었는데, 체성분으로는 체지방이 6킬로나 늘어있었다. 근육량은 거의 바닥이었다. 남편이 내 인바디 결과를 보더니 지금 내 몸이 뼈 위에 지방이 있고 그 위에 그냥 살가죽으로 덮여있는 모습인 거라고 했다. 뼈를 받쳐주고 있는 근육이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러니 관절이 더 아플 수밖에 없었다.


시험관을 하며 몇 년째 농도 높은 여성호르몬을 인위적으로 계속 투여하고 있으니, 체지방은 늘고 안 그래도 없는 근육은 더 빠지거나 잘 붙지 않는 체질이 되었다. 먹는 양이 특별히 더 많아진 것도 아닌데 그랬다. 오히려 건강식단을 해보겠다고 고단백 저탄수의 식단을 더 자주 먹기도 했는데 그랬다. 과배란을 할 때 걷는 운동이 좋다고 해서 코시국 동안엔 집에 워킹패드도 들여놓고 열심히 걸었다. 근육이 없는 상태에서 걷기 운동을 오래 하니 무릎에는 점점 더 무리가 갔다.


시험관 중 피부가 뒤집어지거나 아니면 물광이 오른 듯 뽀얗게 좋아지거나 할 수 있는데 이건 나는 다행히 후자 쪽이었다. 이것도 역시 여성호르몬제의 영향이다. 어떤 사람은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가 있는 사춘기 때처럼 얼굴이 온통 트러블로 덮이기도 한다. 나는 마치 20대 초반의 대학생 때처럼 얼굴에 윤기가 돌았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은 내가 살이 통통하게 찌고 얼굴이 뽀얗게 빛이 나니 좋아 보인다고들 말하기도 했다. 겉모습이라도 그렇게 보아주니 좋은 건가도 싶었다.


아무튼, 관절 얘기로 다시 돌아와서. 나뿐만 아니라 시험관을 오래 진행한 사람들 중에는 관절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시험관을 하기 전에는 몰랐던 호르몬의 세계. 호르몬의 적절함의 정도가 신체의 여러 조직을 건강하게도 약하게도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투여되는 호르몬은 우리의 관절도 약하게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근육은 빠지고 체중은 또 점점 늘어간다. 아무래도 무릎에 하중이 점점 더 실리고 있는 것 같다. 다음 찻수가 시작이 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치료를 받아야겠다 싶었다. 이식을 하게 되면 또 고주파 저주파 치료 같은 건 할 수 없으니까.


정형외과에 가서 시험관 시술을 오랫동안 받았다고 말했다. 요즘은 일상생활이 많이 불편할 정도로 통증이 있는데 조만간 이식을 할 예정이고, 그전까지 잠시의 치료로 어느 정도 개선이 될 수 있을지 상담했다. 어차피 물리치료는 보조적인 거라고 선천적으로 관절이 약하게 태어난 것을 인정하고 적당히 쓰고 조심하면서 살아가라고 한다. 무리한 운동으로 개선하겠다는 생각도 내려놓으라고 한다. 선천적으로 소화기관이 약하게 태어난 사람들이 매운 음식이나 유제품 등 소화하기 어려운 것들을 조심하면서 사는 것처럼, 관절 뼈마디가 약한 사람들은 무리한 움직임이나 운동을 조심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한다. 시험관 시술에 들어가면 아마 먹는 약은 병행하지 못할 테니 쉬는 동안 먹는 약으로 염증과 통증 등을 좀 잡아보자고 한다.




그렇게 해서 소염제를 한 3일째 복용 중이었다. 아직 먹어야 할 약이 더 남아있었다. 소염제 덕분인지 느낌적인 느낌인지 무릎 통증이 조금 견딜만한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이번 한 달 치료를 좀 잘 받아놓으면 효과가 꽤 있겠다 싶었다.


수술 전 안내사항을 설명해주시는 간호 선생님께 관절이 아파 정형외과 치료를 받는 중이고 약 복용도 하는 중이라고 했다. 며칠 안 남았는데 이 약만이라도 다 먹으면 안 되겠냐고 했는데, 수술 중 다른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어 먹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신다.


아직 호르몬 투여를 하기 전이라 다른 약을 먹는 것에 지장이 없을 줄 알았다. 화가 났다. 고작 이까짓 소염제 하나 못 먹는 걸로 짜증이 난 것이 아니었다.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또 없구나, 또 다 안된대. 대체 몇 년 째인지. 답답하고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에 별 것 아닌 일로 그동안 참아왔던 것들이 또 내 안에서 다 터져버렸다.


시력이 좋지 않은데 안구건조증이 심해 어느 순간부터는 렌즈를 잘 끼지 못했다. 운전을 할 때나 멀리 있는 것을 보아야 할 때 (극장, 강의, 교회 예배 등)에만 안경을 끼는데, 다른 일상에서는 그냥 흐릿한 채로 산다. 살다 보니 또 흐릿한 세상에 적응이 되어서 크게 불편하다는 생각도 못했다. 동생이 라식을 할 때 따라갔었는데, 대기실 모니터로 동생의 수술 장면을 보면서 난 도저히 못하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라식도 하지 않고 살았다.


안경을 쓰는 일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코로나 이후 마스크와 함께 안경을 쓰려니 김서림도 생기고 그제야 이게 좀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산과 유산 이후 생긴 갑상선 호르몬 이상 때문에 시험관 시술을 잠시 쉬고 있던 때였다. 시국으로 보나 내 상황으로 보나 더 이상 미룰 것이 아니라 그냥 지금 라식을 하는 것이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과에 도착해 문진표를 작성하고 코디네이터의 안내를 따라 이것저것 검사를 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음 검사실로 이동하기 전에 상담실장님이 나를 따로 불렀다. 시험관을 오래 했고 얼마 전에 유산을 하신 걸로 적어주셨는데, 그럼 추후 임신 준비 계획은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두 달 후에 다시 시험관 시술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더니, 그럼 지금은 라식 수술이 불가하다고 했다. 라식 수술 후 6개월간 투여해야 하는 약이 있는데 그 약을 투여하는 중에는 임신을 피해야 한다고 했다. 또 나의 갑상선 호르몬 수치가 아직 불안정한 상태라 이것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정 지금 라식 수술을 하고 싶으면 임신 준비(시험관 시술)를 조금 더 미루던가, 아니면 출산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난임 환자에게 한 달 한 달의 시간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데, 이미 여러 달 쉬고 있던 상황에서 6개월이나 더 쉬어야 한다니 우선순위상 그건 아니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과연 6개월 안에 나에게 "건강하고 안정적인" 임신 상황이라는 것이 주어질까 그것도 의문이었다.


그놈의 슬픈 예감은 92 이오공감이 외쳤을 때부터 지금까지  번도 틀린 적이 다. 6개월 후에 내가 임산부가 되는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때  라식을 하지 않았던 건가. 그때 라식을 했었 더라면 비록 지금  품에 아기는 없더라도,   밝은 세상을   있는  눈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당하고서도 혹시 하는 기대로 포기하고 내려놓는 일들이 너무 많아진다.


아니면 출산 후에 다시 오라고도했다. 내가 그놈의 출산을 언제 할 줄 알고 출산 후에 다시 오래나. 몰랐는데 라식을 할 수 있는 적정 나이가 정해져 있더라. 노안이 진행되는 나이대가 되면 라식을 해도 소용이 없다고. 누진다초점렌즈를 맞춰야 하는 나이에 라식을 하러 갈 수는 없지 않나.


스케일링을 받으러 치과에 갔었다. 이 중에서 복용 중인 약이 있으면 체크하라는 항목이 있어서, 아스피린에 체크를 했다. 아스피린을 왜 먹으며, 언제부터 먹었냐고 묻는다. 시험관을 하고 있어서 이식 준비 중에 먹어야 하는 약이라고 했다. 아스피린을 먹고 있으면 스케일링 후 출혈이 좀 많을 수 있는데 괜찮겠느냐고 한다. 신경 쓰이면 나중에 오라고 한다. 이식 후 임신이 될 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스케일링을 받으러 온 건데 나중에 오라면 대체 언제. 그냥 하겠다고 했다.


건강검진을 하러 가서도 시험관을 하고 있다고 하면 이 검사는 안된다고 하는 것들이 종종 있다. 다른 사람과 같은 돈을 내고서도 이런저런 검사들을 제외한다. 다니고 있는 내과에서는 유산 후 갑상선 수치가 계속 불안해서 좀 더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고 오라고 의뢰서를 써 준 적도 있다. 서류를 들고 대학병원에 갔는데, 시험관 시술 중이라고 하니 임신 준비를 중단할 것이 아니면 지금 거기서 해줄 수 있는 검사가 없다고 했다. 피검사를 통해 좀 더 자주 추적관찰을 해보고, 임신이 되는 즉시 병원에 다시 오라고 했다.


가임기 여성에게 병원에서 '임신 준비 중' 인지를 묻는 문진은 굉장히 기본적인 것이지만, 이제는 임신 준비 중이라는 항목에 체크를 해야 하는 손이 언젠가부터는 참 부끄럽고 뻘쭘하게 여겨진다. 한 번 이상 방문한 병원이라면 날 기억할 것만 같고 '얘 저번에도 시험관 한다던 걔 아니야? 아직도 임신 준비 중이야? 대체 몇 년 째야' 할 것만 같다 (물론 절대 그럴 리 없겠지만 그냥 나만의 자괴감이다).


종종 피부관리를 받으러 가는 관리실에서조차 '임신 가능성 있으세요?'를 묻는다. 피부 관리기 중 전류가 흐르면서 진동을 주는 것이 있는데, 그 기기를 사용해도 되는 건지를 묻는 것이다. 그냥 없다고 하면 될 것을 그놈의 '임신'이라는 말만 들으면, 왜 또 뭐가 문제지 싶어서 괜히 마음이 작아진다. 묻지도 않은 시험관 얘기를 고백해야 할 것만 같고 그렇다.  


체력이 점점 약해지니 체계적으로 운동을 하고 싶었었다. 트레이너 같이 도와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다가도 마음을 접었던 것은, 최소 한 달 간격으로 시술이 계속 이루어지다 보니 운동을 하지 못하게 되는 날들도 많을 것이었다. 내 사정을 얘기하면 상황에 맞는 프로그램을 짜 줄 수도 있을 거고, 패키지 횟수도 그에 맞게 조정해 줄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구구절절하게 내 상황이 어떻노라고 설명하며 다니는 것도 다 싫었다.




트리플 A형에 ISFJ다 보니 쌓아놨다가 한꺼번에 터지는 타입이다. 소염제 몇 알 뭐 안 먹어도 그만인 건데 별 것 아닌 일에 온갖 과거 일들까지 다 소환해가며 또 자기 연민의 시간을 가졌다.  


고차수 난임 단톡방에서 친구들이 지금 하는 드라마 좀 틀어보라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난임병원을 다니는 에피소드가 나오는 중이었다. 배에 주사를 몇 번 맞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뜬다.


주사에 대한 공포심이 컸었다. 난임병원 첫 진료 때 선생님께 '제가 자가주사를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주사를 너무 무서워해요'라고 했더니, '이거 주사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지금 겪어 나갈 게 얼마나 많은데'라고 하셨다. 본인도 시험관을 통해서 어렵게 아이를 낳으신 분이었다.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점점 너무, 절실하게 이해가 간다.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난임이 과정이 너무 단순하고 가볍다. 주사 몇 대 맞는 게 다가 아닌데. 설명하자면 길지만, 어떨 땐 그 주사조차도 맞을 수 없는 난임 환자들도 정말 많다. 배에 멍으로 도배가 되어도 좋으니 차라리 주사라도 넉넉하게 처방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사람들도 참 많다.


오늘 밤에는 싸이토텍을 먹고 자야 한다. 통증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타이레놀도 같이 하나 먹으려고 한다. 이번에는 그렇게 아프지 않을 거라고 하니 선생님 말을 믿고 용기를 내어봐야겠다. 남편에게 오늘 밤 부디 나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고 잠자리에 들어본다.   



시험관 고차수이고, 난임을 겪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 가정의 오랜 노력과 소망이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아도 좋겠다는 위험한 생각을 합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는데 진짜 그러면 어쩌려고 이제 글까지 써서 남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수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들을 정리해봅니다. 누구나 바라는 것이 있겠습니다. 그 모든 바람이 해피엔딩이 아닐진대, 인생의 섭리를 인정하며 나에게 이 경험이 왜 찾아왔을지 사유해봅니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누군가에겐 부디 공감과 위로를 드릴 수 있길 바랍니다. 연재를 하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적다 보니 글의 시점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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