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친척 결혼식에 다녀왔다.
떠나기 전 호텔 라운지 소파에 앉아
잠시 기다리는 중이었다.
내 옆에 앉아 계셨던 작은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너의 외할머니가 너를 얼마나
소중하게 키웠는지 아니?”
이 말을 듣는 순간 우리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날 뻔했다.
오래전 할머니의 따뜻한 품이 그리웠다.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사랑해야 한다”라는 답으로 끝난다.
꼭 남녀 간의 사랑이나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어린 모모와 늙은 로자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다.
둘 다 외롭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제도권 밖 비주류이자 소외된 사람들이다.
이 둘은 서로를 가족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며 보살핀다.
소설을 읽고 나서 외할머니의 사랑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 댁에서 자랐다.
“엄마보다 할머니가 더 좋아”
엄마에게 진심 반 농담 반으로 한 말이지만,
그만큼 할머니를 좋아했다.
할머니가 좋았던 이유는
아무런 조건 없이 내 존재만으로도
나를 무한히 사랑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인생에 한 명이라도 있다면
큰 축복이다.
외할머니 덕분에 내 인생 전체는
포근한 이불 속에 있는 것처럼 아늑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지 10년이 훌쩍 지났다.
울고 싶을 때, 내 편이 아무도 없다고 느낄 때,
버티기 힘들 때 할머니를 떠올렸다.
할머니의 존재와 사랑을 기억하면서
다시 힘을 얻었다.
더 이상 할머니를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할머니의 따스한 사랑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현존한다.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자신에 대한 염려가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감을 알았습니다.
사람으로 있을 때 제가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계획해서가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과
그의 아내 마음에 있는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고아들은 자신을 챙길 수 있어서가 아니라
낯선 여인의 마음에 있는 사랑으로,
그들을 가엾게 여기는 사랑으로 살아남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계획해서가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사랑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영원하지 않다.
언젠가 한 줌의 재로 변한다.
영원한 삶은 없지만
영구히 남기는 부분도 있다.
내 실존이 사라져도 영영 남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할머니가 내게 남겨주신 사랑은
지금도 내 삶을 지탱하는 커다란 힘이다.
고통과 시련을 만날 때마다
인생을 포기하지 않도록 해주셨다.
또 인생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사랑’임을 알려주셨다.
내가 할머니를 여전히 기억하고 사랑하듯,
나도 누군가의 마음 안에서 오래도록
살아 있고 싶다.
지금도 잠들기 전에 할머니를 떠올린다.
그때마다 할머니께 이렇게 전한다.
“저도 할머니처럼 존재만으로도
따뜻한 선물 같은 사람이 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