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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아우구스투스(1913): 재앙이 된 소원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행복일까? 재앙일까?

by 정가은

※ 해당 게시물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줄거리
사람이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사람들을 싫어해도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있다. 그는 아우구스투스다.

아우구스투스의 인간관계에 역행이 발생한 이유는 그의 어머니가 빈 소원 때문이다. 아우구스투스의 대부는 홀로 아들을 키워야 하는 그녀에게 아들을 위한 소원을 하나 이루어주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그러나 곧 본인이 잘못된 소원을 빌었음을 깨닫고 후회한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으며 자란 아우구스투스는 사랑에 혐오를 느끼며 비행을 저지른다. 웬만한 자극에 질린 그는, 지인들을 파티에 초대하여 사망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자살을 준비한다. 그러나 독이 든 술을 마시기 직전 찾아온 대부에게 새로운 소원을 빌고,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뀐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해달라는 소원이었다. 기존 마법이 풀리자, 사람들은 그가 저질렀던 갖은 악행에 책임을 물었다. 결국 긴 시간 감옥에 갇혀 있다 석방된 그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이전에 느끼지 못하던 행복을 느낀다.

2. 파고들기
모두에게 사랑받는 아우구스투스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제대로 된 훈육은 깊은 사랑에 기인한다. 어떤 행동을 해도 사람들에게 용서받았던 그는, 잘못된 행동에 대한 어머니의 훈육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자책하고 슬퍼한다. 잘못된 행동이 맹목적으로 수용되는 경험을 반복하며 그의 내면은 망가진다. 무조건적인 애정이 올바른 사랑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3. 질문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은 재앙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행복일까? 석방된 아우구스투스는 방랑자로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며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가 국가의 지도자였다면 불행했을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쁘고 아름다운 것만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책임과 결부된 사랑은 의도치 않은 슬픔을 동반하기도 한다. 아우구스투스가 엇나가는 것을 보는 그의 어머니처럼 말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권력을 원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도 없을 것이다. 범인이 타인을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은 공동체에 치명적이지 않다. 오히려 사랑으로 베푸는 사람은 공동체에 좋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행복일까? 아니면 재앙일까?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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