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예민자로 태어나 세상을 사랑하기까지
최근 듣고 있는 팟캐스트 '여둘톡'을 듣다 '소년의 시간'이라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알게 되었다.
요즘 황선우 작가와 김하나 작가가 구축해 온 세계를 즐기는 재미에 푹 빠져,
출근길이고 퇴근길이고, 때로는 회사 점심시간에 조차,
'나에게 인정을 받는 방법'의 하나로 그녀들의 팟캐스트를 듣고 있다.
그녀들의 올곧고 따뜻한 마음들을,
세상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들을 마주할 때면,
괜스레 위로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세상이 그다지 팍팍하지는 않구나, 하는 안도감이
잔뜩 긴장한 나의 주먹 쥔 손을 피게 한다.
두 작가가 티를 즐겨 마신다는 말에,
홀로 즐기는 찻자리를 좋아하던 내가,
나의 겉을 드러내기 위해 사려고 쟁여 두었던 예쁜 옷이 아닌,
아무도 알지 못해도 나를 인정하는 마음으로,
좋은 차와 맛있는 디저트를 선별해 장바구니에 담았다.
아무도 보지 않으면 어떤가,
아무도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가,
내가 나를 이토록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나에게 인정받으면 그것으로 되었는 걸.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소년의 시간'을 보았다.
원테이크로 찍어 몰입감을 증폭시켰다거나 아역 배우의 내밀한 연기와 스토리,
이런 것들은 다른 곳에서도 이야기할 것이 분명하므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훌륭하므로,
다른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나를 좋아해요?"
"날 조금도 안 좋아해?"
"그럼 날 어떻게 생각했는데!"
- 소년의 시간 -
내가 다니는 회사 이야기를 잠깐 할까 한다.
처음 회사에 입사한 나는 평생 만나보지 못한 훌륭한 팀장님과,
늘 간절히 원했던 분야에서의 첫출발에 상당히 설레었다.
뭐, 당연한 것이겠지만,
'꿈의 직장'은 곧 '현실'이 되었다.
일은 논외로 하고 나를 가장 지치게하는 것은 사람들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관계 속의 긴장이었다.
나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어쩌다 보니 중간자의 입장에 서 있게 되었다.
그건 어쩌면 상사와 직원들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조율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그러나 그 고된 노동을 무감하게 외면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지닌,
남다른 책임감으로 살아가는 팀장님 곁에 있을 수 있는,
누군가 그를 알아봐 주지 않아도 다른 이들을 위해 길을 닦는 빗자루가 되기를 소망한다던,
그래서 홀로 외로이 팀을 떠받치고 있던,
팀장님과 함께하는 영광스런 나의 포지션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덕에 나는 회사에 일어나는 무수한 감정의 텐션과 날 선 의견들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아마 그것을 파악하는 데는 나의 '초예민성'이 한몫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놓칠 법한 타인의 감정과 미묘한 관계의 어그러짐을,
그 누구보다도 흡수하는 나였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것들이 더욱 선명해져 갔다.
때로는 상사들과 출장을 함께하며 그들의 외로움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회사에서 가장 고립되어 보이는 직원들과 밥을 먹으며 그들의 터놓지 못한 마음을 읽었다.
때로는 회사 내에서 걸핏하면 투쟁을 벌이는 직원들을 지켜보며 그들의 목마름을 보았다.
또 때로는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업무에 자신의 일생을 쏟아붓는 이들을 보며 그들의 고됨을 느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관계들 속에,
갈래갈래 찢어진 그룹들과 서로를 꺼려하는 팽팽한 긴장이 보였다.
그 엉켜버린 실타래는 생각보다 단단하게 꼬여 있었으나,
어쩐지 의외로 단순하다고 느꼈다.
좋은 사람으로 존경받고 싶어 하는 마음,
나는 이 회사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믿음,
나의 의견, 나의 방식, 나의 열심이 틀리지 않았다는 위로.
우리는 모두, 그저,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걸지 모른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남자와 여자가 나뉘어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는다.
서로의 존재가 사회의 악이라며 못을 박는다.
알파 메일을 갖는 여자는 소수라는 둥,
예쁜 여자를 꼬시는 법이라는 둥,
도태남, 도태녀라는 둥,
여자에게 결혼과 육아는 손해라는 둥,
결혼한 남자는 퐁퐁남이 되지 않기 위해 초반 기선제압이 중요하다는 둥.
가족이든, 부부관계이든,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어떤 모임에서든,
우리는 편을 지어 등을 돌려 버린다.
알아가려는 노력조차 없이.
한번 마음을 먹고 스스로의 눈을 가린 필터는 쉽사리 벗겨지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가 가장 열렬히 갈구하는 것은,
나의 존재 의미를 인정받는 것이 아닐까 하고.
'소년의 시간'에서 제이미가 울부짖듯 토해냈던 그 질문이,
왜 나를 서운하게 하냐며,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냐며,
연인 간에 서로를 비난하며 내뱉었던 그 모진 말들 속에,
회사 동료들끼리 수군대는 그 날 선 가십 속에,
취업난에 절망하며 사회를 규탄하는 그 분노 속에,
방황하는 청소년과 꿈을 찾는 이들이 세상을 등지던 뒷모습에,
어쩌면 우리가 하고 싶었던 진짜 질문은 '나를 어떻게 생각해?'가 아닐까.
너의 눈과 시선 속에 담긴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길 간절히 바라며.
최근 남자친구와 나의 관계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꼬여 있는 인간들의 실타래에 압도되어 말을 잃은 채 무력하게 바라보기만 했던 나는,
그와의 관계를 되짚어 보던 찰나,
아주 실낱같은,
아니 어쩌면 확신의 희망을 발견했다.
남자친구는 (정확하기는 나와 사귀기로 한 바로 직후) 나를 열렬히 사랑해 주었다.
'사랑해 주다'라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사랑해', '귀여워', '행복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밖이던 안에 있던 누가 보고 있던 상관하지 않고,
뽀뽀를 하거나 머리를 쓰다듬는 행동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그의 행동은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마음이 진심인 걸까?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이내 알았다.
마음이 행동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마음을 부르는 것이라는 걸.
나도 어느샌가 그에게,
'네가 있어서 행복해', '너는 내 결핍을 채워 주는 사람 같아', '너는 나에게 유일해' 라며,
그를 향해 온 힘을 다해 사랑을 표출했고,
그 행동과 마음이 나를, 그리고 그를,
또다시 움직이는 것을 목도했다.
그제야 알았다.
서로에게 인정을 주는 것은,
이토록 충만하게 채워지는 것이라는 걸.
물론 나도 아직은 부모님을 비롯한 몇 오래된 관계 속에서는,
낯부끄럽다는 진솔한 핑계를 대며,
남자친구와 있을 때만큼 깊이 표현하지 못한다.
다만, 아주 천천히, 하지만 높은 점도로,
나의 마음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리고 있다.
나의 작은 행동과 눈물 어린 인정이,
누군가의 삶을 바꾸고,
그리고 나의 삶 또한 바뀌기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