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예민자로 태어나 세상을 사랑하기까지
나는 떠돌아 다닌 적이 있다. 4년간을.
누구에게는 짧다고도 할 만한,
그러나 내게는 인생을 바꿔 놓은,
여름밤같은 꿈 속 여행이었다.
그 모든 여행 속,
첫 미지의 세계로의 입성을 나는 나는 아직도, 결코 잊지 못한다.
나는 늘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할 때,
여행이 아니라 삶의 터전을 시작하는 이만이 느낄 수 있는,
첫 발을 내딛는 그 순간을,
'걸리버 여행기'라고 지칭한다.
처음 미국 공항에 내려,
무거운 이민가방 두개를 싣은 택시를 타고,
공항을 지나 큰 다리 위를 건너가며 차창 너머를 내다보던 그 순간.
집 앞 낯선 도보를 걷다 문득 올려 본 장엄한 건물과 장신의 사람들을 보며,
'어쩌면 나는 거인국에 온 소인국 사람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던 순간.
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또,
처음 캐리어와 짐을 가득 싣은 아빠가 빌린 렌트카를 타고,
공항을 지나 고속도로를 지나며 차창 너머로 도로변에 줄지어 선 야자수를 내다보던 그 순간.
집 앞 낯선 현무암 재질의 도보를 걷다 문득 고개를 돌린 곳에,
끝도 없이 펼쳐지는 폭포와 자연을 보며,
'어쩌면 나는 정글 어딘가 불시착한 걸리버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순간.
그 첫 내음, 기이한 풍경, 낯선 공기, 익숙치 않은 사람들, 그리고 그 속의 피어오르는 설렘과 두려움.
그 순간들이 먹먹한 그리움이 되어 남은 것은,
그것이 곧 사라질 신기루 같은 기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한 여행자가 아닌,
그곳에서 삶을 시작하는 자에게는,
첫 순간의 강렬함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없다.
곧 모든 것은 일상이 되고,
익숙함은 더 이상 새로울 자격을 얻지 못했기에 처음의 감각을 지운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부러 시간을 들여 겉치레를 해야 하는 여행을 싫어하는 지도 모르겠다.
여행으로는 느낄 수 없는 그 새로움과 지루함의 사이,
낯선 타지가 삶이 되어가는,
그 기묘한 작용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소중해서,
세상의 모든 곳들을 아껴두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처음이 퇴색되지 않도록.
사람들은 인생이 힘들고 지루할 때,
각자가 꺼내는 보석함이 있다.
누군가는 그 속에 돈이 들어 있어 쇼핑을 하며 뿜어져 나오는 기분으로 덮어버리고,
누군가는 그 속에 술이 있어 하루를 지워버리고,
누군가는 그 속에 사람이 있어 온기를 얻는다.
내 보석함에는 추억이 있다.
물론 나도 꽤 자주 돈으로, 사람으로, 다른 무엇으로
세월이 주는 허무함을 견디어냈다.
지금도 아주 벗어나 있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세월은 종종 그렇게 말했다.
나의 펼쳐질 인생 앞에 뭐 그리 대단한 이야기가 있겠냐고.
때가 되면 아무 이유도 없이 덮쳐오는 우울감은,
이제는 나름 현명하게 대처하며 잘 달래 돌려 보내고 있지만,
어떤 때에는 완전히 나를 무너트리고는 했다.
그리고 그럴 때 가장 위안이 되면서도,
나를 더 깊은 심연으로 밀치는 것은,
열린 보석함 속 스믈스믈 기어 나오는 나의 옛 추억이었다.
고된 하루로 내 삶이 조각나 흩어지면,
화려하고 다채로웠던 조각을 하나 하나 주워 모아,
나라는 사람이 있어야 할 제자리에 조각들을 끼워 맞춰본다.
그 순간 나는 다시 빛이 나기 시작한다.
비록 그것은 이제는 없는 빛의 잔상이 온 몸을 떨며 피워낸 그림자일지라도.
지금 나는 서울, 2호선 어딘가에 살고 있다.
유동인구 수와 거주인구 수가 가장 많기로 소문난 곳.
지하철을 내려서든, 지하철 안에서든, 동네를 돌아다닐 때이든, 해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늦은 밤이든.
어디에 가든 사람은 늘 차고 넘쳤다.
4년간의 여행과도 같은 삶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나의 삶은 어느덧 지리한 일상으로 접어들었다.
일과 집, 글, 발레, 인간관계, 붐비는 지하철.
새로울 건 없었다. 아무것도.
27년간 서울에 거주하며 살아왔던 내게,
서울의 풍경은 이미 눈에 익어버린 지 오래였다.
가끔 지하철과 길거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과 보폭을 맞추며 생각한다.
하루에 어느 한 순간이라도,
나를 둘러싼 세계 안에서 진정으로 감탄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날이면,
명치 깊은 곳에서 애끓는 소리가 구슬프다.
답답함에 터져나올 듯 부풀어 오르는 탄원을,
내뱉지도 삼키지도 못한 채,
다시금 현실의 군중 속에 휩쓸려 고개를 숙이며 걷는다.
탄원이 절망이 되고 체념으로 기화할 즈음이면,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내가 문제인 것인지,
끊임없이 새로운 추억을 쌓아야 하는 나의 기질이 문제인 것인지,
혼란스러운 시기가 도래하고 만다.
한 때 나의 꿈은 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가지각색의 다름의 너비와 부피들을,
두 눈으로 보고 맡고 만지고 듣고 싶었다.
그 속에 흠뻑 나를 적시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 앞에,
나의 꿈이라 생각하고 막연히 달려온 나의 발이 멈춘 이 곳에,
나는 비로소 현실을 조금씩이나마 수용하기 위해 발악한다.
분명 나는 날아갈 것이다.
갇혀 있는 파랑새를 꺼내어 저 먼 곳으로 날려 보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새장 속에서 내가 해야만 하는 것들,
삶이, 시간이, 운명이 나를 보낸 이 곳에서 나는 땀을 흘려야 한다.
깃털을 고르고 날아갈 나의 걸리버 여행기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