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10. 2. 목요일 D+5
고비가 닥쳤다.
나를 또 한 번 넘어야 했다.
퇴사하는 동료와의 마지막 배웅길,
동료는 장난 반, 진실 반 농담을 던졌다.
불평하지 않고 항상 웃는 내가,
힘들어하지 않고 순조로이 적응하는 내가,
모든 고통을 피해 가는 것 같은 내가,
자신과 똑같이 괴로웠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알고 있었다.
나를 어떻게 보는 지도.
알면서도 모른척했다.
그 누구만의 편이 되지 않겠다던,
사회 초년생의 다짐을 지켜야 했다.
그러나 그들과 내가 본질적으로 섞이지 않아,
자연스레 나를 끼워주지 않았다는 것도.
하지만 그것이 너무도 노골적이었을 때,
나는 상처가 난 부위에서,
구더기 같은 무엇이 들끓고 있음을 알았다.
모든 걸 망치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든 것은,
한순간의 일이었다.
장난스레 툭,
억지로 툭,
나는 그럼에도 당신들을 애정하고 있음을,
스스로 시인했다.
나를 까 보였다.
책 앞에 써넣은 편지를 찢으려다,
나는 결국 책을 선물했다.
그에게는 패턴이 있다.
먼저 내가 나의 인생 속 갈림길에서,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한 후에야,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해석한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았다.
학창 시절 소외되고 외로웠던 내가 보였다.
과거에도 이런 일로 화가 났었는데.
나를 분노케 하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나는 다시 분노하고 말았다.
그러나 흘려보냈다.
흘러간 곳에는 감사가 남았다.
나를 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종족이,
하나 더 늘었다.
감사의 형태에 웃음이 보태어졌다.
본인의 생일임에도,
여자친구의 접시에 먼저 음식을 덜어주는,
그것이 너무도 당연히 몸에 베여있는 사람.
그는 나의 그릇보다,
더 큰 그릇을 가진 게 틀림이 없다.
오늘도 사랑하는 사람과,
퇴근 후 생일을 축하할 수 있는,
이토록 지극히 평범한 하루에 이름이 붙었다.
내일 죽는다 해도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는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