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였다면, 내가 너였다면

25. 10. 1. D+4

by 흩날림문고




요새 감정이 너울댄다.

내가 딛고 일어서는 누군가의 삶이,

나의 실적이 되는 세상.


내가 너였다면 너의 고통은 내 것이었고,

네가 나였다면 나의 풍요는 네 것이었는데.

나는 어째서 그 빚을 갚지 못하는가.


어쩐지 나는 계속 잘못하는 기분이 든다.

빚을 진 채 살아가는 무거움이,

이토록 답답했던 적이 또 있나.


이런 마음을 토로할,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자고 말해주는 이가,

이곳에는 없다는 사실이,

이곳은 제주가 아님을 실감케 했다.

사무치게 외로웠다.


그런 나를 위로하는 이는,

행여나 내가 외로울까 들여다보고,

전화를 걸어주는,

오직 그뿐이었다.



답답함에 뛰쳐나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했다.

나의 기도는 간절했다.


나는 능력이 없으니 거두어 가시라고.

나를 놔주시면 안 되겠냐고.

나는 글이나 쓰며 맘 편히 살고 싶다고.


투정 부렸다.

늘 그랬듯.


그는 기다리라 하신다.

내가 하겠다고.


아직은 모르겠다.

내 착각일지, 그가 정말 뭐라도 하시려는지.

나는 기다릴 수 밖에는 없다.




퇴근하는 길.

그녀를 만났다.

나는 좋아하지만,

나를 좋아하는지는 확신할 수 없는 그녀.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사실 망설였다.


내가 다가가는 것이,

어쩌면 나만 원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또다시 받을 상처가 눈에 보였다.


그러나 역시 나는 미련했다.

나라는 인간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다.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좋아함을 멈출 수 없다.


함께 이야기하며 집으로 돌아오니,

크라임씬이 더 눈에 잘 들어온다.

오래간만에 자지러지게 웃었다.


마음이란 요사스럽다.

그 마음에 무엇이 담겼는지에 따라,

나오는 것이 다르다.

한숨이거나, 포복절도이거나.




동료가 내일 퇴사를 한다.


혹자는 눈치가 없고 수다쟁이라 하지만,

내게는 그 누구보다 순수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자신을 밀어낸 이를 회상하며,

“그분도 나 때문에 힘들었지, 뭐.” 라며,

웃을 줄 아는 이였다.


선과 악을 구분 짓지 않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사람.


동료에게 나는 책을 선물하고 싶었다.

자기 훈육을 주제로 한 책.


그러나 고민이 되었다.

기분 나빠하면 어쩌나,

내가 신도 아닌데.


새 책을 주려 쿠팡으로 주문까지 했으나,

취소해버리고 만 결심.


고민 속에서 책을 폈고 저자는 말했다.

진정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충고는 모험이라고.


결심했다.

나는 내일 나의 책을 선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