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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창업 Feb 26. 2022

자가격리해제자의 하루

큰일이 벌어져야 일상이 소중하지

어제 자정을 기해 저는 코로나 확진 후 자가격리 해제가 되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남편이 축하하네, 라고 말해요.


아이들은 오늘 아침으로 빵을 먹고 싶다 합니다. 아들은 엄마 바깥 바람 쐬고 싶었지? 삼십분 줄테니까 혼자 나가서 오늘 아침은 엄마가 빵사와. 합니다.


딸내미는 촐랑 촐랑 다가오더니 삼십분 안되, 엄마 없이 삼십분 절대 안되, 무조건 5분 만에 갔다와 라며 허벅지에 메달립니다.


알았어 엄마가 알아서 할게 하고 옷을 주어 입었습니다. 날씨 어플을 확인해 보니 아침인데도 영상권의 기온 입니다. 속에 어떤 옷을 입었는지 알수 없게 대충 롱패딩을 걸치고 추리닝 바지 바람에 시장 가방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 이후 딱 8일째 만에 집 밖에 나왔습니다. 밖은 비가 왔었는지 바닥이 촉촉해요. 갑자기 찬바람이 들어오자 기침이 나왔습니다. 무슨 큰병을 앓았던 사람처럼 기침을 한번 해주고 일부러 팔을 세게 휘두르며 늘 걷던 동네 길을 낯선 마음으로 걸어 파리 바게트에 도착했습니다.


해피포인트도 해주세요. 가 가족외의 사람과 밖에서 8일째 만에 나눈 첫 대화 라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엄마는 전화가 와서 어디 멀리 차라도 끌고 나가라고 합니다. 니가 격리 해제가 됬다니 내 마음이 다 시원 하다며 축하를 해줘요. 식빵 사러 나왔다니 에게 겨우 거기 갔냐며 ㅎ 더 멀리 멀리 나가라고 합니다.


애 엄마가 아침 부터 어딜 나가냐고 엄마와의 통화를 끊고 집으로 향합니다.


아이들이 현관 문앞에서 빵봉지를 들고 들어오는 저를 기다립니다. 가족 모두 시차를 두고 확진이 되어 우리 집 최초의 해제자 이자 바깥 바람을 쐬고 오니 모두 질문을 하기 바쁩니다. 밖에 나가니 어때? 물어 주고 남편은 바깥 공기좀 몰아 오라며 어떠냡니다. 어떻긴 뭐가 어때 맨날 똑같지 하지만 똑같지 않은 이 기분. 진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요


우린 일상을 너무나 당연스럽게 생각합니다. 늘 맞이 하는 아침, 늘 걷던 길, 아이들과 마주 앉는 밥상, 떠드는 소리… 하지만 지난 며칠간 일상이 전혀 일상스럽지 않게 되자 생존과도 관련되어 있던 일이라 그런지 우린 너무 재빠르게 절대 적응이 되지 않을 것 같던 생활에 적응을 해버렸습니다.


12년째 잠자리 독립에 번번히 실패 하던 아들에게 코로나  걸릴려면   가서 자야해. 라고 말하자 아들서럽게 울면서 자기 방으로 갔고요


6살 밖에 안된 딸은 코로나 안 걸릴려면 혼자 밥 먹어야해 하니 지 방에서 문을 닫고 독상을 받고 밥을 먹어요.


평소라면 혼자 밥을 먹기 싫다고 울고 떼를 썻겠죠? 아들도 엄마 옆에서 자고 싶다고 베개를 끌어 안고 방으로 왔겠죠? 그런데. 일사불란하게 아이들은 바뀐 환경에 연습을 미리 해둔 것 처럼 절대 적응되지 않을 상황을 받아 들였습니다.


적응을 한 것이 아니라, 받아 들인 겁니다.


집에서 마스크를 하는 것도, 밥을 각자 방에서 혼자 먹는것도, 엄마랑 절대 스킨쉽을 하지 않는 것도 아이들은 모두 받아 들였습니다.


오늘 8일 째 만에 가족이 모두 모여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잠들기 전에 다 같이 모여 앉아 식탁에서 책을 읽었고요. 아이들은 바로 어제까지 집에서 마스크를 쓰고 지냈던 것을 까먹고 바로 다시 원래의 우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어찌나 떠들던지 혼자 밥 먹었던 기억은 나지 않냐고 물으니 그런건 생각도 안 난다고 합니다. 넷이 둘러 앉아 밥을 먹고 떠들고, 바깥 공기에 대해 얘기하는 일상이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평소에 이런 주제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생각한다 한들 형식적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아 왔습니다.


그러나 일상을 잃고 보니 우리가 지금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상태로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돌아 보게 됩니다.


아이들과 수시로 끌어안고 머리 냄새를 킁킁 맞고 볼이며 엉덩이를 꼬집어 줍니다. 그 느낌이 좋습니다.


일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아무날도 아닌 날들에 감사하며 그런 아무날들이 쌓인 날들이 사실은 우리들에게 평온 했던 한때로 기억될 수 있다는 걸, 아무일을 겪고 보니 더 확실히 알겠습니다.


편안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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