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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의 갑질보다 더 무서운 것

학부모 갑질사건을 보며 느낀 것

학부모의 갑질보다 더 무서운 것          


1. 학부모 갑질은 정말 학부모만의 문제였을까?

교사들에 대한 학부모의 갑질 문제가 화제다. 

벌써 몇 명의 교사가 자살을 했고, 그 어이없는 학부모의 행태들에 사람들은 분노를 쏟아낸다. 그런데 이게 과연 ‘학부모 갑질’만의 문제일까?     


18년째 직업상담이란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 비록 1인기업으로 강의가 주력이지만, 한번도 상담현장을 떠난 적이 없으니 상담, 혹은 컨설팅을 하는 사람이란 표현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면서 현장의 취약한 모습을 꽤 많이 봐 왔다. 바로 ‘악성 민원’이다.

이른바, 자신의 일 중 일부를 ‘감정노동’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이런 악성 민원에 시달려 봤을 것이다. 이게 참 괴로운 것 중 하나는 멀쩡한 사람도 때로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이다. 가끔은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도 가해자가 되는 삶을 우리는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악성 민원은 대체로 갑질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반드시 힘이 있는 이들만이 갑질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기준으로 절박한 상황에 몰리면 본의 아니게 이런 짓을 하기도 한다. 


갑질은 어떤 의미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호시스템의 부재(不在)’에서 발생한다.     


아주 오래전 공무원으로 일할 당시의 얘기다.

실업급여와 관련해 어떤 방문자가 무리한 요구를 했다. 핵심은 ‘규정상 안 되는 것을 요구’한 것이다. 나는 ‘그 부분은 안 된다’고 나름 정중하고 좋게 말씀드렸다.(자기변명이 아니라 성격상 모질게 누구에게 얘기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명백히 안 되는 일이었고, 심각해질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결과는...

나는 불친절 공무원으로 과천중앙청사와 청와대 게시판까지 이름이 올라갔다.

그리고 상부에서 전화를 받았다.

“이 부분에 대해 얼마든지 소명하겠습니다.”라는 내 말에 그 높은 분은 한마디만 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민원이 안 나오게 하십시오.”라는 것이었다.(다시 말하지만...오래 전 얘기다. 설마 지금이야....)

함께 일하던 상사는 내게 ‘무조건 해주라’는 지시를 내렸고, 나는 그 지시에 따랐다.

나중에 그 당사자를 만났더니 놀랍게도 ‘미안하다’며 내게 사과를 했다. 더 웃기는 것은 그 민원이 당사자가 올린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건 나름 절박했던(?) 방문자의 상황을 듣고 한 친구가 자발적으로(?) 올린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피해자도 가해자도 될 수 있다. 그래서 일방적인 흐름을 경계해야 한다


2. 내가 모셨던 리더들, 내가 충성했던 직장은 뭔가?

수많은 이들이 일을 하다 보면 이익이 상충되는 이들의 불만에 시달릴 수 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런 것에 대해 어떤 보호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수의 감정노동 현장에서는 ‘(담당자가) 알아서 해결하시라’는 무책임이 난무한다. 그 많던 상사 중에 ‘책임지고 막아주는’ 이가 하나 없다. 이럴 때 보면 상사는 명령할 때만 필요한 존재로 보일 때도 있다. 

자기상사도 자기조직도 이럴 때는 철저히 남이거나
오히려 가해자와 한 패가 된다.


그러니 일하는 사람만 죽어나는 것이다. 이번 학부모 갑질 건도 조금만 학교가(혹은 상사가) 혹은 다른 어떤 시스템이 작동해 주었다면 애꿎은 젊은 목숨들이 희생되진 않았을 것이다.      


어떤 민원은 당연히 정당성이 있다. 그러나 어떤 민원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들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며, 그 당사자들은 어느 순간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대로라면 곤란하다. 민원에 대해서도 옥석을 가릴 수 있어야 하고, 누군가는 가장 힘없는 근로자를 보호해 주어야 한다.(알고 계시겠지만 다수의 악성 민원이 여성 직원을 대상으로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벌써 다른 뉴스들에 묻혀가는 이번 사건이 또 다시 갑질 운운하는 분노만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래본다. 

무작정 민원을 겁내는 것은 조직의 비겁한 자기보호다. 고객보다 직원을
훨씬 값싸게(?) 여기는 무서운 관점의 반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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