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 잠수하다
2012년 말 쯤으로 기억한다.
구본형 선생님의 ‘공부하는 법’에 대한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어 당시 마포에 있던 변화경영연구소에서 운영하던 커피숍(이름조차 희미하다)에 들렀다.
저녁 행사였는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었고, 나는 운 좋게 한 가지 퀴즈를 풀어 구본형 선생님과 인증 샷을 찍을 기회를 얻었었다.
흔쾌히 사진을 찍어 주시던 선생님께 간신히 “제가 힘들었던 시절, 선생님의 책으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라며 감사의 말씀을 드렸다.
화질은 엉망이었지만...그렇게 찍은 한 장의 사진은 큰 의미가 있었는데...아무래도 나랑은 그 정도의 인연이셨던지...희한하게도 그 사진만 어디로 갔는지 잃어버리고 말았다.
꽤 어려웠던 시절, 얼굴조차 보지 못했지만 책으로 내게 새로운 길을 제시했던 은인과의 짧은 기억이다.
‘구본형, 내 삶의 터닝 포인트’는 그런 면에서 읽기 전부터 내게 이런 저런 감회를 안겼던 책이다. 일단 쉽게 읽힌다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유려한 글과 각각의 제자들의 다양한 삶, 그리고 씨실과 날실처럼 얽혀드는 스승과의 미담이 마음을 적시듯 쉽게 스며든다.
구본형 선생은 변경연에 모이는 사람들을 ‘창조적 부적응자’란 말로 표현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예전엔 잘 와 닿지 않았는데...지금은 참 절묘한 표현이라는 생각에 절로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지금도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꽤 있다. 어쩌면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사실 개인적으로는 초창기 연구원에 지원했다가 서류에서 탈락된 경험이 있기도 하다.
제자들 중 몇몇 분들은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라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늘 놀라웠던 것은 그 제자들이 꽤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그들을 이렇게 넉넉하게 끌어안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 한결같은 제자들의 그리움을 보며 고인이 훌륭한 리더라기보다는 마치 누군가의 마음에 적절히 공명하여 그 사람들 속에 선한 울림을 만들었던 ‘울림통 같은 분이 아니었을까’란 서툰 추측도 해봤다. 무엇보다 그런 스승의 추억을 가진 이들이 부러웠고, 그런 인간관계망이 또한 부럽기도 했다.
이 책은 제자들의 기억과 이야기를 통해 구본형이란 사람의 삶을 좀 더 개별적으로 조명한다. 그 속에서 문득 우리 자신들의 삶을 반추하게 되는 힘이 있다. 필진으로 참여한 이들이 워낙 탁월한 글쓰기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고, 그들 나름대로 일가를 만들며 스스로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이니 그만큼 책이 전하는 울림 역시 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가 세상에 뿌려놓은 것은 꼭 제자들만은 아닐 것이라고..
책의 말미 정예서님의 말처럼 ‘19권의 책을 통해, 강연을 통해, 혹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와 만났을 사람들’이 삶의 어느 시기에선가 그로 인해 힘을 얻고, 살아가고, 선한 영향력을 이어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인생이 아니었을까라고...
이 책이 단순한 그리움의 회고를 넘어 누군가에게 다시 살아갈 삶의 에너지로 치환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