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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작희작 Aug 05. 2023

아무거나

혹은 아무나.


아무 생각 없이
늘 '아무거나'를 뿜으니
자기 색 뿜지 못하는
소극적인 '아무나'가 된다고 하지만

사실 ‘아무거나’는
‘모든 것’을 다 경험할 수 있는
누구보다 더 적극적인 태도.


“뭐 먹을래?”

“흠.. 아무거나, 너 좋아하는 것으로.”


항상 ‘아무거나’를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상대를 배려하는 말인 것 같지만 가끔 자신의 주관과 취향이 없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왜 언제나 ‘아무거나’를말하는 것일까? 그들 안에 함께 속하는 내 생각은 이렇다.


난 특히 ‘음식’ 영역에서 꼭 먹어야 하거나 먹지 말아야 할 것은 없다. 등산을 하고 산꼭대기에서 먹는 막걸리와 하산 후 먹는 순댓국을 제외하고는. 


그래서 친구들과 메뉴를 고를 때 친구들의 기호를 따르면 보통은 80점 이상으로 만족하는 편이고, 가끔 특이하고 낯선 음식의 신세계도 맛본다. 물론 새로운 음식을 ‘불호’라고 느꼈던 적도 있지만 ‘불호’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피해야 할 음식을 쉽게 가려낼 수 있고, ‘호’의 음식 영역이 더 확실해지기도 한다. 이것은 곧 내 취향의 색이 더 진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원리는 ‘인간관계’의 경우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물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아무 사람’과 교제하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의 벽을 치고 처음부터 상대를 차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성품이나 행동의 모양은 너무나 다채로워서 오랜 시간 지내면서도 알겠다가도 모르겠고, 모르다가도 알겠는 것이 사람이다. 이렇게 영원히 파악불가한 ‘인간’이라는 존재를 자신의 단편적 관점으로 벽을 치는 것만큼 잔인한 일이 없다. 나 또한 나를 잘 모르는 누군가의 선입견이라는 장벽 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있을 테니, 이 얼마나 억울한가? 해명조차 구차해지는 단단한 벽 앞에서 그저 쓸쓸해질 뿐이다.


‘아무거나 외치는 아무나’가 되는 것이 부끄러워서 부랴부랴 생각 없이 ‘아무거나’라도 가져와서 만든 ’ 어설픈 취향’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조차 못했던 단계는 이제 끝낸다. 진짜 개성과 색깔은 ‘아무거나’ 시도하고 경험한 후에 만들어진다는 것을 오롯이 믿고, 이제 자신 있게 외쳐보기로.


아무거나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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