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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작희작 Aug 24. 2023

여행


 가끔 일상이 무료해 유료의 비행기 티켓을 과감히 끊는다. 누군가에게는 여행이 새로움을 만나는 ‘경험’이겠지만 나에게는 ‘탈출’의 의미가 크다. 무거운 고민들이 가벼워지지 못한 채 떠나는 곳은 온전한 도피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일단 떠남으로써 고민들에게도 잠시 쉬어갈 틈을 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늘 아래, 땅 위에서 조금 다른 형태의 배경들과 마주하며 걷고 있을 뿐인데 왠지 모르게 마음은 설레고 발걸음이 가볍다. 그러다 문득 이곳도 누군가에겐 그저 반복되는 일상의 공간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새롭게 떠나온 여행지와 지나온 일상 공간들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공간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었다.


 그동안 새로움을 대하는 자세가 너무 경건하고 진지했다. 이전과는 극명하게 다른 자극적인 무엇인가가 필요했고 그 신선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자극들이 사라지면 순식간에 무료함은 밀려왔고, 무료하게 밀려오는 파도를 피해 도망치듯 더 새롭고 더 자극적인 무엇인가를 찾아야 했다.


 지속되는 밀물에 지쳐가는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지 못한 채 도망치듯 또 다른 여행지를 찾고 있는 과정은 즐거움이 아닌 피로함 자체였다. 지난날의 여행이 피곤했던 것은 이미 충분한 새로움 안에서 또 다른 새로움을 찾고 있던 과로 탓이었던 것.


 이제 새로움을 대하는 태도를 가볍게 해야 할 때다. 주변의 작은 변화는 절대 작지 않다. 땅 위로 새살 드러낸 초록 풀잎은 단단한 흙덩이를 뚫기 위해 매 순간 애쓰고 있고, 어제의 바람도 수많은 건물들에 치이고 흩어지며 지금 이곳으로 왔다. 뜨거운 태양을 견디며 자란 나무들의 푸른 땀들이 모여 지금의 단단함을 드러낸다. 변화하고 있는 ‘매 순간의 다름’을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시선으로 다르게 마주해야 한다.


매 순간은 경이롭고 다채로우며
새로움 그 자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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