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가 남긴 것

by 깨작희작

또 다른 새출발을 향해 이사를 한다. 겉으로 보기엔 참 소박한 짐이라 생각했지만 하나씩 정리하니 소박은커녕 대박이다. 10평 남짓의 작은 소우주 곳곳으로 이런 것도 집에 있었나 하는 희귀템이 발견될 때마다 정리의 여왕이라 생각했던 내 자신에게 쓴 웃음을 짓는다. “도대체 이건 왜 못 버리고 있는 거야?” 아무런 의미도 추억도 없이 한 두 번 나를 스친 물건들이 구석에 숨어서 그동안 얼마나 자신의 처지를 슬퍼 했을까. 주인 잘못만나 자신의 가치를 잃고 어둠속에 묵혔던 시절이 4년이다. 이제 나올 때도 됐지 미안하게 됐다. 지금 너를 꺼내지만 다시 돌려보낼 곳도 쓰레기 장이라 더 미안하게 됐다.


전 집을 비우고 새집에서의 짐풀기는 더 지옥이다. 분명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또 버려야 할 것이 투성이다. “이건 또 왜 가져온 거지?” 아직 미련을 못 버렸군. 다시 가져온 물건들에게 ‘우리 앞으로 새집에서 함께 살 수 있어’라는 희망고문만 하고 결국 고물 투성이의 쓰레기 통으로 또 보내는 잔인한 주인, 아니 주인이란 말도 친근하다. 냉정한 소유자라고 하자. 무엇이 이렇게 또 너를 데려오게 했을까? 라고 물어보면 결국 ‘언젠가는 쓰이지 않겠나?’하는 기대감과 아쉬움이겠다. 뭐 어쨌든 최후에 남은 물건들은 하나둘씩 제 자리를 찾아가 이 대장정의 전쟁의 승리자인 것 마냥 새집에 안착한다.


새집에서의 다짐은 심플하다. ‘심플하게 살자, 제발’ 다시는 예전처럼 ‘물건 쌓기병’이 재발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새 물품 구입에 침착해지자 다짐한다. ‘이것도 저것도’ 둘러보던 내 눈은 ‘이것만 저것만’의 시선으로 변해본다. 제법 집중력 있는 쇼핑 스타일이라 왠지 변하는 자신이 알뜰살뜰해 보여 퍽 마음에 든다. 하지만 이 스타일은 오래가지 ‘못할’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30년 넘게 습관화된 예쁜 물건을 향한 눈굴림 재주가 어디 한순간에 버려지겠는가. 앞으로도 어쩔 수없이 새로운 물건들을 향한 내 호기심은 허용하지만 쇼핑의 끝은 예뿌니들의 유혹을 뿌리치는 결말로 마침표를 찍어보겠다.


새로운 곳에 왔으니 ‘삶’도 함께 이사를 해야지. ‘무엇인가로’ 채우려고만 했던 생활들, 뚜렷한 방향과 이유를 모른 채 온갖 걱정, 생각, 잡동사니를 카트에 고스란히 담아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남는 것은 고갈된 에너지로 인한 지침과 한숨.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해 영상을 보고, 채우기 위해 책을 넘기고, 채우기 위해 냉장고를 뒤지고, 또 고갈된 에너지 충전기를 채우기 위해 무감각하게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계속 채우기만 하니, 채운 곳의 고유한 색감을 제대로 감상하기도 전에 빠르게 또 다른 색이 그 위를 덮는다. 색은 섞이고 섞여 다른 색을 덧칠해도 계속 검은색에 가까워지니 채움의 끝은 결국 어둠이다.


‘채움’의 진짜 색을 감상하려면 결국 비워야 한다. 비우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지 않는 것? 먹지 않는 것? 잠을 줄이는 것?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사되, 먹되, 잠을 자되 또 다시 비울 수 있는 ‘여력’ 과 ‘여유’를 만들어야 한다. 물건을 사고 인연이 다하면 미련 없이 버릴 수 있고, 소화시킬 수 있는 만큼 먹고 미련 없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새로운 하루를 향해 미련 없이 이불을 걷어 차고 일어나기. 이렇게 ‘미련 없이 내려놓기’가 비움을 향한 한걸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구든 미련과 이별하기란 힘들다. 하지만 의미 없이 쌓이는 것들 속에서 호흡곤란의 미련한 짓은 이제 그만. 처음 만날 때의 ‘가벼운 안녕’과 떠날 때의 ‘가벼운 안녕’사이를 아주 가볍게 오갈 수 있다면, 더 이상 버리고 비우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쉬운 발걸음이 되리라 믿어본다.


오늘부터 하나씩 버린다.

인생 최후에 남겨둘 것이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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