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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mf Jan 17. 2020

믹스커피와 머신커피 그 사이 어딘가의 커피


나는 믹스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먹고 나면 무언가가 달라붙어 있는 느낌이다. 내 입천장에도 붙어있고 내 목구멍에도 붙어있고 내 식도를 거쳐 위까지 붙어있는 느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중 믹스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기를.


아무튼 그래서 보통은 머신커피로 아메리카노를 주로 내려먹고 가끔 라떼밖에 안 드시는 우리 엄마 꺼를 홀짝홀짝 마시고는 한다.

그랬던 내가 코타키나발루 여행 중 우연히 만난 화이트 코코아 믹스커피를 맛보게 되었다. 그 맛은 코코아의 특유의 포근하고 고소한 맛이 씁쓸하고 달달한 커피를 감싸안는 느낌이랄까. 너무 맛있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구매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달달 고소한 라테를 먹고 싶어 우유를 데워 거품을 만드는 도중 문득 코타키나발루에서 사 온 그 화이트 코코아 믹스커피가 먹고 싶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어떤 걸 먹고 싶었냐 하면 믹스커피와 머신커피 그 사이의 커피.

몸에 딱 달라붙지는 않지만 적당히 나를 어루만지다 가는 그런 느낌의 커피.

그동안 너무 빨리 나를 스쳐가 버린 아메리카노는 내심 아쉽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여자 처자의 이런 생각들로 결국 나는 그 화이트 코코아 믹스커피를 맛만 날 정도의 적은 양을 라떼 잔에 털어 넣고 따뜻한 우유와 잘 섞은 뒤 머신커피로 내린 에스프레소를 한 구석에다 조르륵 흘려 채웠다.

그리고 수저를 수직으로 세워 라떼의 가장 깊은 곳까지 푹 집어넣어 그 깊은 심연부터 조금씩 원을 크게 그리며 저었다. 하얀 우유 거품과 진한 갈색의 에스프레소가 소용돌이치듯 섞이며 유면 위에 마블링을 만들어냈고 그 마블링 어딘가에는 코코넛의 향이 스며들어있었다.




그렇게 믹스커피와 머신커피 그 사이 어딘가의 커피는 나를 적당히 어루만지다 여운 없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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