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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mf Aug 08. 2021

영화 '박하사탕'을 보고


"나 다시 돌아갈래에에에에"

감히 짐작컨데, 영화는 본 적 없어도 이 대사는 한 번쯤 들어봤을 거라 생각한다.


영화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간은 크게 7개로 나뉜다.


-------이하 출처 : 위키백과

#1 - 야유회, 1999년 봄. 주인공 김영호(설경구 분)가 ‘가리봉 봉우회’의 야유회 장소에 느닷없이 나타난다. 20년 전 첫사랑의 여인 순임(문소리 분)과 함께 소풍을 왔던 곳. 그러나 세월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후다. 기찻길 철로 위, "나 다시 돌아갈래!" 영호의 절규는 기적소리를 뚫고, 영화는 1999년 오늘에서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Chapter #2 - 사진기, 사흘 전 봄. 영호는 마흔 살, 직업은 없다. 젊은 시절 꿈, 야망, 사람, 모든 것을 잃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중년. 어렵사리 구한 권총 한 정으로 죽어버리려 하는데 뜬금없이 나타난 사내의 손에 이끌려 이제는 죽음을 앞둔 첫사랑 순임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순임은 이미 혼수상태에 빠져 그를 알아볼 수 없었다. 스러져 가는 그녀 곁에서 박하사탕을 든 채 울음을 토하는 영호. 그리고 그녀가 남긴 추억의 카메라를 단 돈 4만 원에 팔아버린다.


Chapter #3 - 삶은 아름답다, 1994년 여름. 서른다섯의 가구점 사장 영호. 마누라 홍자(김여진 분)는 운전 교습강사와 바람피우고, 그는 가구점 직원 미스리와 바람피운다, 어느 고깃집에서, 과거 형사 시절 자신이 고문했던 사람과 마주치는 영호. "삶은 아름답다"라고 중얼거려본다. 집들이를 하던 날 아내 홍자의 기도가 장황하게 이어질 때 그는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 안의 모든 것들로부터 1994년 어느 여름의 일.


Chapter #4 - 고백, 1987년 봄. 영호는 닳고 닳은 형사. 아내 홍자는 예정일을 얼마 남기지 않은 만삭의 몸이다. 사랑도 열정도 점점 식어만 가는, 지극히 일상적인 삶에 대한 권태로움으로 지쳐버린 김영호. 그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 잠복근무차 출장 갔던 군산의 허름한 옥탑방. 카페 여종업원의 품에 안긴 그는 첫사랑 순임을 목놓아 부르며 울음을 터뜨린다. 1987년 4월.


Chapter #5 - 기도, 1984년 가을. 아직은 서투른 신참내기 형사, 영호. 그는 선배 형사들의 과격한 모습과 자신의 내면에 내재된 폭력성에 의해 점점 변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순수함을 부인하듯이 순임을 거부한다, 마침내 그의 광기가 폭발해버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을 짝사랑해오던 홍자를 그냥 택한다. 1984년의 어느 가을, 순임을 만난 지 정확히 5년째 해였다.


Chapter #6 - 면회, 1980년 5월. 영호는 전방부대의 신병. 긴급 출동하는 영호는 트럭에서 면회 왔다가 헛걸음치고 돌아가는 순임의 작은 모습을 보게 된다. 또 다른 비 오는 날의 텅 빈 위병소 앞 순임은 오늘도 영호를 기다린다. 영호는 그날 밤 광주 역 주변 어둠 속에서 귀가하던 여고생을 순 임인 듯 마주한다. 급박한 상황에서 영호의 M16에서 발사되는 총성. 우리 모두에게 잔인했던 1980년 5월 어느 날이었다.


Chapter #7 - 소풍, 1979년 가을. 이야기의 시작. 영화의 끝. 구로 공단의 야학에 다니는 10여 명이 소풍을 나왔다. 그 무리 속에 갓 스무 살의 영호와 순임도 보인다. 둘은 서로 좋아하기 시작한 듯하다. 젊음과 아름다운 사랑. 순수한 행복감에 젖어있는 두 사람. 눈부신 햇살 아래서 영호는 순임이 건네준 박하사탕 하나가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1979년 어느 날. 이렇게 영화는 마지막에 와서 다시 시작한다.


---------

이와 같이 총 일곱의 순간들을 하나씩 거슬러 올라가 마침내 다다른 곳은 영호 자신이 가장 순수했던 때이다. 실수로 자신이 누군가를 죽이기 전이고, 그 죄책감으로 인해 첫사랑을 포기하기 전이며, 때문에 자기를 짝사랑해오던 알던 여동생과 결혼을 하기 전이자 경찰로서 잔인한 고문을 하기 전이다. 또,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자신의 친구가 자기를 배신하기 전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영호가 너무나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살면서 필연적으로 순수함을 잃어버리게 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되어 씁쓸했다. 그렇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사회적 상황과 수많은 인간관계에 둘러싸이게 된다. 그리고 마치 박하사탕과 같이 하얗던 우리의 모습에는 점차 색이 물든다.


마치 하얀 물감에 한 방울의 파란색이 떨어지면 하늘색 물감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다양한 색에 물들며 마침내 검어진다. 그리고 그 검어진 물감에는 그 어떤 색을 섞어도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면 다시 전으로 돌아가고자 울부짖는 영호의 간절한 외침은 비릿한 피맛이 나는 절규에 지날 뿐이다.


만약 1980년 5월, 광주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아 영호가 실수로 소녀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영호는 첫사랑과 결혼을 하고, 행복한 삶을 살며 인생이 평탄하게 풀렸을 수도 있다. 혹은 경찰이 되지 않아 잔인한 고문방법과 폭행을 접하지 않았더라면 강아지를 발로 차는 폭력적인 사람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나의 사건이, 한 명의 사람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엄청난 나비효과가 된다. 순식간에 물들인다.


나는 우리 모두 내면 깊숙이 선한 본성과 어두운 본성 모두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어떤 상황에 처하느냐, 혹은 어떤 사람을 겪느냐에 따라 억제되거나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이나 관계 속에서 내가 주체적으로 나를 억제할 것인지 표출할 것인지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영호는 자신의 생각대로, 어두운 본성을 표출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한 번의 선택이 유사한 선택들을 끌어냈다.  


내가 내린 한 번의 선택은 한 방울의 색 물감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색들을 입혀왔을까?


나는 어떤 색을 후회할까?


나는 결국 검은색이 될 나를, 그래서 어떤 색에도 변하지 않을 나를 지금 어떤 색들로 만들어내고 있는 걸까?





갑자기 하얗고 시원한 박하사탕이 먹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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