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오동나무 마을의 주경야독
1. 텅 빈 울림통, 가난한 왕손
명종 3년(1547년). 한성 천달방의 새벽은 뼈를 깎는 삭풍 속에서 시작되었다. 눈 덮인 오동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부딪혀 서글픈 소리를 냈고, 그 아래 자리 잡은 이억의 사저에는 찬기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으앙-!"
방안의 정적을 깨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태종의 여덟째 아들 익녕군의 4대손, 원익이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아버지는 갓 태어난 아이의 발가락을 만지며 씁쓸하게 웃었다.
"원익(元翼)이라... 으뜸가는 날개라 지어주었지만, 이 아이가 날개를 펼 하늘이 조선에 남아있겠느냐."
왕족이라는 이름은 이 집안에서 축복이 아닌 '유폐'였다. 종친은 과거를 볼 수 없고, 정치에 참여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화려한 감옥이었다. 아버지는 관직 대신 거문고를 택했다. 달이 시리게 밝은 밤이면, 아버지는 어린 원익을 앞에 앉히고 거문고 줄을 튕겼다.
"원익아, 손을 이 판 위에 올려보아라."
어린 원익이 고사리 같은 손을 거문고 앞판에 대자, 현의 떨림이 손바닥을 타고 심장까지 전해졌다.
"이 거문고가 왜 이런 깊은 소리를 내는지 아느냐? 오동나무가 제 속을 다 파내어 텅 비어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잘나려 하고 가지려 하면 그 소리는 탁해지는 법이지. 너는 장차 이 거문고처럼 속이 빈 사람이 되어라. 그래야 백성의 가난한 숨소리가 네 몸에 들어와 울릴 수 있다."
"아버지, 저는 족보 속에 갇힌 종친으로 살지 않겠습니다. 제 발로 걸어나가 세상을 조율하겠습니다."
"허면, 너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 할 게다. 중력을 거스르는 새싹은 흙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법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