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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Jun 30. 2023

나는 현실을 살고 있는가?

어쩌면 꿈 속을 살고 있는지도 몰라

이상향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

이상형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유형

***

웹소설은 그야말로 꿈의 세계다.

흔히 회.빙.환 이라고 불리는 웹소설의 3대 설정이 있는데, 바로 회귀, 빙의, 환생이다.

이처럼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웹소설에서는 장르불문, 거의 대다수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설정이다.


게다가, 세계관은 얼마나 멋지고 휘황찬란한가.

여성향 소설에서는 로판(로맨스 판타지)이 주를 이끄는데, 대게 화려하고 예쁜 드레스를 입고 생활하는 유럽의 중세-르네상스-바로크-로코코의 세상을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은 각종 무도회에 참석해야 하고, 사교계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거기다가 잘생기고 멋진 왕자님부터 기사, 마법사, 암튼 세상 잘난 놈들이 주인공에게 푹 빠지며 목매다는 연애도 한다. 세상 이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내가 쓰는 동양풍 로판도 이와 다를 게 없다. 동양풍 로판은 고대 중국의 화풍을 많이 따오는 편이다. 대게는 중국의 가장 화려한 시기라 볼 수 있는 당, 송. 나는 주로 이 시기와 유사한 세계관을 만드는 편이다.


물론, 주인공의 주된 생활공간은 황실이고, 여주를 둘러싼 남자들은 황제, 장군, 고위직 관료, 대게 그런 편이다.

처음에는 이런 상상을 하는 게 너무나도 행복하고 좋았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은 시궁창과 같은데, 소설 속의 세상은 내가 살고 싶던 세계, 내가 꿈꾸던 이상향이었다. 그래서 웹소설을 쓸 때면 현실을 도망쳐서 여행을 간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내 옆에서 스타크래프트를 주구장창 하던 파트너 조교는 우리 학교 유력 학과 교수님의 아드님인지라 교직원들 사이에서도 별명이 '황태자'였다. 나는 일 안 하는 고귀한 황태자 때문에 해야 할 일이 항상 두 배 이상이었다.

그런데 소설 속 남주는 어떤가. 아주 멋진 데다가 최강의 권력을 가진 황제 폐하께서 사랑에 푹 빠져 주인공에게 간이며 쓸개며 다 빼줄 기세니, 웹소설 쓰는 순간이 행복할 수밖에.

아마도 그때부터 웹소설을 쓰는 일이 나를 살린 듯하다. 웹소설을 쓰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때의 나는 그 시간을 절대로 버티지 못했을 듯싶다. 그리고 지금의 나도 없었을 테다.


근데, 어느 순간. 웹소설을 쓸 때 묘한 괴리감을 느꼈다.내가 쓰는 웹소설이 동양풍이거나 역사물이다 보니 현실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내 머릿속 세계가 나에게는 진짜 살아가는 세계 같았고, 현실 세계는 내가 살아가는 게 맞긴 한 건가 하는 이상한 착각까지 했다.

내가 쓰는 웹소설 속 세상은 너무나도 빠삭하게 알고 있는데, 내가 사는 현실 세상은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라디오를 들어도 모르는 것들 투성이었고, 종종 만나는 사람들과도 나눌 이야기가 점점 적어졌다.

솔직히, 내가 미쳐가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시간은 걸렸지만 그래도 다행히 해결책을 찾긴 찾았다. (거의 5년 정도 걸린 듯하다.)

이런 나의 생각에 균형을 잡아준 건 바로 신문이었다. 가장 현실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글과 오직 정보와 약간의 사설 정도만 붙는 기사가 나를 다시 현실 세계에 살아가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줬다.

사실 신문을 보면, 쓰고 있는 웹소설에 대한 집중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내가 이 세상에 속해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주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준다. 

그래서 웹소설을 쓰든, 어떤 장르의 글을 쓰든 절대로 골방에 틀어박혀서 사람들 안 만나고 글만 쓰라고 하고 싶지 않다. 자칫 본인만의 세계관에 정신이 잡혀 먹힐 수 있으니까.

물론, 지금 나의 머릿속 세계의 절반은 역사 속 시간 어딘가에 있지만 현실 감각을 되찾은 지금은 다시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웹소설을 쓰고 있다.

세계관을 왔다 갔다 해야 하니 마감 맞추는 일이 좀 힘들지만, 그래도 과거의 나처럼 다시 즐겁게 웹소설을 쓸 수 있어서 나름 행복하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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