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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니 Dec 24. 2020

저, 대출 무조건 나오그등요

마음에 드는 전(월) 셋집 잡는 법

일요일 오후에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월요일에 계약하는 것 맞는지. 그 연락을 받고 나서 계약금을 내기 위해 가지고 있던 적금을 모두 깼다. 적금을 깨면서 후회가 밀려왔다. 모아둔 돈도 없는데 너무 쉽게 계약한다고 한 것은 아닐까? 이거 전세 사기이면 어떻게 하지? 대출에 문제가 생겨서 계약 파기해야 하면 계약금은 어떻게 하지?


월요일에 회사에 외출 신청을 하고 부동산으로 향하면서도 계속 후회가 되었다. 근데 또 괜한 자존심에 이제 와서 안 하겠다고 하기도 싫었다.(사실 이러면 안 된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집주인이 오기 전, 부동산 아저씨와 잠깐 대화를 나누었다. 주말에 여러 사람에게 연락이 왔는데 구두 계약도 계약이라고, 계약한 사람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보통 계약이라는 것은 계약금을 조금이라도 걸어야 하기 마련인데 날 기다려주신 것이다. 분명 그때 집을 볼 때는 다른 사람이 먼저 계약하면 어쩔 수 없다고 그러셨는데, 날 기다려주신 걸 고마워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원망해야 하는 것인지, 이게 진짜 짜고 치는 사기는 아닐지 속으로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그 사이에 집주인이 도착했는데 실소유주가 아니고 남편분이 오셨다. 대리인으로. 도장도 안 들고 오셔서 부동산에서 막도장을 만들어 계약을 진행했다. 덕분에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나는 인터넷에서 본 대로 '집 문제로 대출이 나오지 않으면 계약금을 돌려달라'라는 말을 특약사항에 집어넣었다. 그 특약사항이 나의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그리고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으로 확정일자를 받아놓았다.




집을 한 번 보고 계약을 하다니. 부동산 아저씨는 왜 다른 사람들의 연락에도 계약할 사람이 있다고 하셨을까? 내가 계약금을 걸었던 것도 아닌데. 아마 다른 사람들도 주말에 와서 집을 봤다면 분명 본인이 계약하겠다고 했을 것이다. 화장실 타일 하나부터 베란다 샷시까지 모두 교체된 말 그대로 올수리집, 위치도 좋은 이 집을 잡을 수 있었던 비법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집을 처음 보러 간 날, 부동산 아저씨는 먼저 연락을 준 아가씨가 있다고 오늘 저녁에 보러 오기로 했다며 그 아가씨는 다른 대출이 있는데 중기청을 받아서 대출을 돌려 막겠다고 했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에이.. 그거 안돼요. 저는 은행에 모든 서류 가져가서 전세금에 80%는 받을 수 있다는 확답을 받고 왔어요. 가지고 있는 대출도 없고 오래된 중고차가 있지만 자동차 할부도 없고 신용등급도 2등급에, 자산도 없어요!(...ㅠㅠ)"라고 말했다. 부동산 아저씨 말씀으로는 그 집을 보고 연락하는 사람들이 다들 중기청 가능한 집이냐고 물어봤단다. 그중에 가장 빠르고 확실할 것 같은 애가 나였나 보다. 아저씨도 잘 모르는 중기청 지식을 마구 읊어대고 대출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이미 갖췄으며 은행도 다녀왔으니 말이다.


"저는 대출이 안 나올 이유가 없어요. 무조건 나와요. 무조건"


다행히 전세사기도 아니었고 잔금일에 대출도 잘 나와줘서 일단은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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