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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es Chang Jun 03. 2019

팔로우어십(Followership)의 정의

Followership. Theme 2.


Theme 2. 팔로우어십(Followership)의 정의


“팔로우어십”은 무엇입니까?

팔로우어십은 한마디로 정의하면 무엇일까요?  사전을 찾아보면 “지도자를 따르는 방식”이라 합니다.  즉 리더를 따르는 방식, 상사를 따르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 정의가 주는 느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지도자를 따른다는 것은 수직적 개념,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개념, 지도자는 말을 하고 따르는 자는 그 말을 이행해야 만하는 것입니다.  그런 수직적 위아래의 개념속에서 리더십과 팔로우어십이 왜곡되고, 그 왜곡된 개념속에서 이루어지는 절차와 과정이 줄 수 있는 위험성을 알기 때문입니다.

팔로우어십을 그저 부하가 상사를 따라가는 것과 같은 수직적 관계에서 바라보는 편협성은 리더와 팔로우어의 관계를 주인과 종의 관계처럼 보게 만듭니다.  그렇게 상하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진 리더와 팔로우어의 관계는 "억누름"과 "억눌림"의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도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러한 건강하지 못한 관계 형성 속에서 리더는 갑질은 물론 해서는 안되는 불공정의 일을 망설임 없이 하게 되고, 그러한 리더를 ‘모시는’ 팔로우어는 억울함과 분노가 쌓이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한 현상은 여러 개인적 분노 조절 장애, 사회 부적응 등과 같은 부작용을 유발하여 한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 더 나아가 사회적 문제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한국의 현대사 속에서 우리는 그러한 경우를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해 오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팔로우어십을 그저 단순한 수직적 개념속에서 “지도자를 따르는 방식”으로 단순 이해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이제는 팔로우어십에 관한 개념적, 실천적 관점에서의 이해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적용되어야 하고, 접근법에도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이제 SNS 시대에 접어들며 팔로우어의 개념은 더욱 그 의미를 더욱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예 어떤 관계성도 정립되지 않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인터넷이라는 온라인 세상에서 어느 SNS를 통해 연결되어져 있기만 해도 팔로우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저도 페이스북에 약 800명의 친구가 있고 인스타그램, 링크드인 등을 합치면 더욱 많은 수의 팔로우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들과 저는 어떤 관계 정립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한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대화를 나누어 본 적도 없으며, 대다수의 분들은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에는 관심조차 없을 것입니다.  그저 서로 간에 팔로우어가 된다는 것은 그저 팔로우어 숫자 채우기에 도움을 주는 정도가 대부분인 것입니다.  즉 팔로우어는 누군가를 따른다는 개념도 아니라 이제는 그냥 SNS 상의 숫자인 세대가 되어져 버린 것입니다.

팔로우어라는 개념이 악용되고, 왜곡되고, 이제는 그냥 숫자가 되어버린 시대에 팔로우어십에 대한 올바른 개념 정리는 변화와 성장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틀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리더십과 팔로우어십 - 동전의 앞뒤면

굳이 긴 설명이 없다 하더라도 기업이던, 가정이던 리더십으로만 꽉 찬 조직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결과는 만들지도 못하면서 얼마나 시끄러울지 상상만 해도 답은 나옵니다.  어떤 조직이던 리더들만으로는 원하는 미래를 만들 수도 없으며 조직과 속한 개개인의 성공은 커녕 혼란과 균열 속에서 모두 함께 자멸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조직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리더와 팔로우어가 둘 다 필요합니다. 성공하는 조직은 좋은 리더십 만큼이나 좋은 팔로우어십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상대와 상황에 따라 누군가를 따라가기도 하고 누군가를 리드하기도 하며 살아갑니다.  저는 집에 들어가면 제 와이프가 리더가 되고 저는 그녀의 팔로우어가 됩니다.  하지만 집 밖에서는 제가 리더가 되고 와이프가 팔로우어가 됩니다.  그것이 제 가정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저는 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한 조직내에서도 한 편으로는 리더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팔로우어가 될 때가 있습니다.  대통령은 한 국가의 리더입니다.  하지만 그는 국민 뜻을 살피고 그들의 뜻을 이루어가는 국민의 훌륭한 팔로우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는 훌륭한 대통령이라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리더와 팔로우어라는 존재는 동전의 앞뒤면처럼 함께 조화롭게 존재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팔로우어는 리더보다 아래 있는 사람도 아니며 팔로우어십은 리더십보다 아래의 개념이 아닌 것입니다.  조직의 미래를 놓고 보면 리더도 팔로우어도 다 존중되어져야 하며 리더십과 팔로우어십 두가지가 다 동일하게 중요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며 우리는 때로는 때와 장소, 환경과 사람에 따라 리더가 되기도 하고, 팔로우어가 되기도 합니다.  동전의 앞뒤면처럼 우리는 어디에 어떻게 놓이느냐에 따라 리더이기도 하고 팔로우어이기도 한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지만 팔로우어십이 리더십인 경우 또한 존재합니다.   배우자의 말을 잘 따르는 팔로우어십을 보여줌으로 자녀들에게는 좋은 리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얼마전 TV에서 어느 어린 소녀의 현대무용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가 선생님을 따라하는 모습이 귀감이 되어 다른 학생들이 그 소녀를 따라하게 됩니다.  그 소녀가 보여준 그 모습은 선생님에게 보여주는 좋은 팔로우어십인 동시에 다른 학생들에게는 그녀의 리더십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장소와 상화에 따라 리더가 되기도 하고 팔로우어가 되듯이, 팔로우어십 자체가 리더십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동전의 앞뒤면처럼 말입니다.

팔로우어십의 올바른 이해

때에 따라 저의 가정에서는 제가 리더가 되기도 하고 제 와이프가 리더가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것은 상하적 관계 중심이 아니라 둘이 함께 공유하는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이 우선되는 것을 같이 이해하고 받아들였기에 가능하게 됩니다.  저와 제 와이프는 가정을 꾸미고 아이들을 키우며 가족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동료이지 상하의 관계가 아닙니다.  유교적 가부장적인 상하의 관계에서 “가장과 식솔”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실천하기도 힘든 일입니다.  만약 그러한 상하의 관계성 때문에 이루어지는 “따라감”이라면 그녀의 순종은 팔로우어십이 아니라 “복종”이 될 것입니다.  리더와 팔로우어는 주종의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고 그것을 함께 이루기로 약속하고 노력하는 조화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팔로우어십은 협업의 꽃을 피우는 방식이다”라고 팔로우어십을 정의합니다.  팔로우어들은 리더와 함께 공동의 목표를 향한 달음박질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리더가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라면 팔로우어는 손에 잡히는 결과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리더가 아이디어를 제공한다면 팔로우어는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키는 과정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리더와 팔로우어는 속한 조직/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의기투합하여 최선의 협업을 통해 그 뜻을 일구어 가는 조화속에서 결과를 함께 만드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즉 팔로우어십은 팔로우어들이 리더와 함께 결과를 만드는 “협업의 꽃을 피우는 방식”인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모두 그랬습니다.  혁명을 외치는 리더와 함께 싸우는 백성들이 있었고, 일류 기업을 일군 기업가에게는 공장에서 일하며 일등 기업을 만들어 가는데 일생을 바친 팔로우어들이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역사는 리더의 역사가 아니라 팔로우어들의 역사라고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를 리더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선택 받은 리더와 선택한 팔로우어들의 합작품이며 그들의 협업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한 팔로우어들이 없었다면 역사에 남은 모든 리더들은 그저 몽상가로 그 인생을 마감하고 기억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가까운 주변을 보아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의 가정도 가족의 협업이 없다면 평화는 유지되지 않을 것이며 행복한 가정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교실에서는 선생과 제자의 협업을 통해 교육의 꽃이 핍니다.  심포니에서는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협업을 통해 아름다운 연주가 가능하게 되고 영화는 감독과 배우, 스텝의 협업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야만 멋진 영화가 만들어 집니다.  어떤 조직이던 프로젝트이던 그렇게 협업을 통해 공동체로서의 목표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팔로우어십은 그저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협업의 꽃을 피우는 방식”으로 이해되어져야 조직에 속한 모두에게 아름다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같은 사람, 다른 문화, 다른 결과

이러한 팔로우어십에 대한 이해는 전혀 다른 조직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리더가 바라보는 팔로우어십에 대한 개념이 바뀌면 팔로우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팔로우어들 스스로도 스스로를 바라보는 자신의 가치도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전혀 다른 조직 문화를 창조하게 됩니다.  조직이 진정으로 살아있는 유기체로 변화됨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사람, 다른 문화, 다른 결과라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리더와 팔로우어가 각기 다른 기능과 역할을 감당함으로 협업의 꽃을 피운다는 개념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면 진정한 동료의 의미가 이해된 것이고 실천되게 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속한 모든 구성원들의 공동체의 성과를 위한 파트너로서의 적극적 참여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의 집중력과 인내력도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정받고 행복한 팔로우어의 만족도에도 영향을 미쳐 효율성은 물론 창조력의 향상도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조직문화 만들기에 성공하는 가정, 기업, 국가는 어찌보면 우리 모두가 원하는, 우리가 속하고 싶은 조직의 모습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는 조직의 성공의 속도와 크기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팔로우어십은 강요와 복종이 아닌 능동적 협업의 힘으로 새롭게 개념 정리되어져야 하며 훈련되어져야 합니다.  

정리합니다.

팔로우어십은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협업의 꽃을 피우는 방식이며 아름다운 결과를 만드는 힘의 원천입니다.  훌륭한 리더는 훌륭한 팔로우어를 만나야 그 꿈을 이룰 수 있으며, 훌륭한 팔로우어는 훌륭한 리더를 만나야 행복하게 일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 둘의 만남은 그들의 소망을 이룸은 물론 속한 조직의 성공을 이루어 내고 더 나은 사회적 가치를 창조하게 될 것입니다.  함께 일하고 함께 이루며 함께 행복한 사회는 바로 올바른 팔로우어십을 이해한 리더와 팔로우어의 협업에 의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팔로우어들도 가슴으로 깨닫고 알아야 하고 그러한 훌륭한 팔로우어가 되기 위한 공부와 발전의 노력이 있어야 하며, 리더들 또한 그 의미를 알고 팔로우어들의 좋은 팔로우어가 되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질문합니다.

.. 당신이 리더인 경우는 어떤 경우입니까?
.. 당신이 팔로우어인 경우는 어떤 경우입니까?
.. 속한 조직에서 최상의 협업을 위해 어떤 포지션을 선택하여 어떤 모습을 보여주시겠습니까?


#followership   #조직문화   #협업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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