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 Apr 30. 2020

일주일 치 기운을 얻는 식사, 꽃게탕

 

오늘 저녁엔 뭘 해 먹지, 뭐 해 먹을까? 마트를 돌다가 ‘싱싱한 꽃게’ 푯말이 보이면 가을이다. 가을엔 새우도 제철, 무도 단맛이 많이 나는 제철이다. 좋아, 꽃게탕 당첨. 꽃게탕은 내가 요리책 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메뉴이며 입맛 까다로운 아들도 잘 먹어서 해 놓고 먹는 기쁨, 보는 흐뭇함이 있다.    


어릴 때부터 게 찌개를 좋아한다. 엄마는 일일이 게살을 발라 내 밥 위에 얹어 주느라 입안이 다 얼얼했다고 종종 말씀하신다. 기억나진 않지만 사랑받은 흐뭇함과 맛있게 먹은 든든한 느낌이 상상돼서 여러 번 들어도 싫지 않다. 엄마처럼 내 아들에게 살을 발라준 기억은 많지 않다. 나 먹기에도 바쁘기 때문이다. 대신 시범을 보인다. 집게를 꼭 잡고 딱 쪼개면 살이 한쪽 집게에 붙어 쏙 빠져 나왔다. 싱싱하다는 증거다. “자, 해솔아. 이거 봐 살이 그대로 붙어있지? 싱싱하면 이렇게 돼.”하고 자랑스럽게 건넨다. 나머진 지가 알아서, 난 내 걸 가열 차게 발라 먹는다. 아들도 좋아하는 반찬이라 꽤 열중해서 잘 먹고 나는 가끔 흐뭇하게 쳐다봐 가며 먹는 행복한 시간.  

  

암꽃게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수게가 더 맛있다. 엄마가 어릴 때 그렇게 말해서 그런 줄 아는 걸지도 모른다. 배 쪽 껍데기 아가미 모양이 뾰족한 삼각형이면 수게, 반원의 동그란 건 암게다. 채식주의자들이 보면 질겁하겠지만 다리가 팔팔 움직이는 살아있는 걸 사와서 요리해야 살이 달다.


게 찌개 국물은 된장과 고춧가루, 파, 마늘이면 된다. 무가 있으면 국물이 시원하지만 없음 말고. 된장의 양을 잘 조절해서(보통 밥숟갈로 한두 술 정도 넣는다. 게 두 마리에) 너무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넣고 적당히 끓이다가 손질해 둔 게와 새우를 넣는다. 국물 맛이 밍밍한 듯하면 양파를 조금 넣어주면 좋다. 해물 맛이 우러나는 중간 중간 맛을 봐서 된장을 좀 더 넣기도 한다. 새우는 너무 오래 끓이면 졸아들어 껍질과 살이 달라붙는다. 촉촉함도 덜하다. 살에 붙은 껍질이 쪼그라들기 전에 요리를 끝내야 한다. 미나리나 쑥갓은 맨 나중에 위에 얹어준다. 살짝만 익어도 괜찮다.    


게와 새우가 익을 때의 발그레한 껍질 색은 먹어도 좋다는 허가증이다. 짭짤 달달한 국물을 밥 위에 적셔 게살을 얹어서 먹으면 너무나 행복한 저녁이 된다. 게 찌개는 먹는 시간 넉넉한 저녁이 제격이다. 음미하며 알뜰하게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반찬은 필요 없다. 밥상에는 찌개 냄비, 밥, 숟가락과 젓가락, 껍질 놓을 빈 그릇과 손 닦을 휴지면 완벽하다.     


게는 맨손으로 들고 먹어야 제 맛이다. 손에 묻히지 않으려고 몸통을 껍질째 입안에 넣고 씹어 빠져나온 살만 먹고 껍질에 살이 붙은 채로 처참하게 버리는 건 게으른 포식자다. 알뜰하고 과감한 자만이 게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 본격적 시작은 덩어리가 큰 몸통부터 한다. 몸통 살은 젓가락으로 막과 막 사이에서 살살 긁어내면 된다. 겉으론 봐선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알 수 없게 껍질은 부수지 않고 살만 쏘옥 깨끗하게 발라먹고 났을 때의 접시를 보면 뿌듯하다. 다리 살을 먹을 땐 젓가락이 가장 요긴하다. 젓가락 두 개를 붙여 모아 껍질 안쪽 벽에 대고 쓱쓱 밀어내면 살이 솔솔 빠져나온다. 나머지는 입으로 쪽쪽 빨아들여 남김없이 먹는다. 다 먹고 나서 비누로 깨끗하게 씻으면 오늘의 식사 끝. 일주일치 기운을 얻은 기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지한 동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