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2020 어떻게 살아왔나요? 2021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요?

by 하원
자주 불안해진다. 때때로 의심한다. 나는 살아있는가? 제대로 된 숨을 들이마시고, 제대로 된 숨을 내뿜으며, 그렇게 살아있는 듯이 살아가는가? '제대로', 사는 것처럼, 살아있는 것처럼 심장 뛰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게 맞나. 지금 잘못 살고 있는 거면,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내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가 되는 일이면 어쩌지. 지금 이 순간이 시간을 버리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면 어쩌나 그런 생각을 한다.


독립을 한다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무게가 무겁다. 나는 돈만 벌면, 돈만 많이 벌면 되는 사람이 아니다. 직업적 소명과 사명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더라도 심장이 뛰는 일을 하고 싶다. 나를 속이고 죽이며 그저 버티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나를 살리는 사람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하는 말들에, 행동에 상처를 입고 간절하게 죽고 싶단 생각을 했을 때에도 나를 살리는 건 항상 나였다. 죽고 싶단 마음의 이면에 누구든 좋으니까 살 수 있게끔 날 붙잡아달라는 살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살고 싶어 하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산 송장처럼 몸만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


죽어 있는 채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

숨을 쉰다고 살아있는 게 아니란 걸 안다. 심장이 뛰어야 한다. 너무 하고 싶어서, 하기 싫은 일도 빨리 처리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하루 종일 머릿속에 떠다닐 만큼 생각하면 설레서 빨리 하고 싶어서 잠이 오지 않을 만큼. 그렇게 설레야 한다. 좋아 죽겠는 일이어야 한다. 좋아서 힘든 게 힘든지도 모를 만큼 심장이 뛰고 행복한 일을 해야 한다.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물론 돈도 좋다. 필요하다. 많이. 중요하다. 많이. 마음이 힘들어지는 원인 중에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경제적 어려움이란 것을 안다. 거기엔 돈이 첫 번째란 것도 안다. 그런데 돈이 있으면 무조건 행복할까? 돈이 정말 다일까? 내 통장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돈의 액수가 나조차 얼마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많으면 그것만 있으면 행복할까?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일이, 지금 현재 이 순간이 행복하지 않다 해도? 현재가 행복하지 않은데, 순간이 행복하지 않은데 미래가 행복할까?

순간순간이 모여 현재라는 시간을 만들고, 현재가 모여 미래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들이 의미 있고, 설레고 심장이 지금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제 역할을 해 줄 때, 눈이 반짝반짝 빛날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아서 행복하다 느낄 때. 그럴 때 미래도 온다. 현재 고민했던, 현재 꿈꿨던 미래가 온다. 행복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나아진 미래.


인생은 백업이 안되니까.
어디다 따로 저장해둘 수도 없고, 다시 복구해서 어떤 지점으로 되돌릴 수도 없다. 키 값을 알아내는 것이 인생이다. 어디서 잘못됐는지 모르겠으면 네트워크 시스템을 다시 구축하더라도 계속 틀린 오답이 옳다고 주장하면 안 되는 게 인생이다. 자꾸 발생하는 버그를 찾고 잡아서 불편함이 없게 해야 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핵심은 과거에 무엇을 했든 이미 날려버린 키 값을 찾아낼 수도 해결할 수도 없다는 것이고, 다만 현재에 할 수 있는 일, 현재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거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냐거나,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아, 내가 청춘이라서인지 90년대 생이 보기엔 다 개소리다.
나이 먹어도 똑같던데. 10대가 되면 크게 달라질 줄 알았던 어린이 시절을 지나고 10대가 되니까 더 큰 고민이 들이닥쳤고, 성인이 되면 내 꿈을 더 크게 펼칠 줄 알았던 20대, 어느덧 중반,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않으면 루저가 되는, 불효녀가 되는 이 시점에 볼 때. 그런 말들은 정말 개소리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청춘이라서 그렇다기엔 인생은 끊임없이 고단하다. 아니, 갈수록 더 불안하고 힘겹고, 허망하다. 신기루를 잡기 위해 달려왔나 싶다. 어릴 적 했던 생각 그대로 몸만 자라고, 몸만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기분이다.


마음은 그대로 몸만 늙는 거야.


'눈이 부시게'라는 12부작 드라마를 보았다. 거기서 김혜자 배우님의 마지막 대사가 심장을 울렸다.

마지막화 엔딩 장면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큼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 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 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나도 모르게 울먹였다. 연말 수상 소감으로 이야기했을 때에도 펑펑 울었고, 이 말을 되뇌며 살아갔던 과거의 한 조각이 떠올라서 지금도 울컥한다. 그때엔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았을 때였는데도 연말 수상 소감을 보고 이불속에서 숨죽여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과거에 얽매여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꾸만 뒤돌아보았던 내가 불쌍해서 울었다. 내가 애처로워서 울었다. 어렸던 날들의 내가 안쓰러워서 토닥여주고 싶어서 울었다. 지금은 미래에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내가 꿈꾸는 삶을 살지 못할까 봐, 불안에 떠는 내가 안쓰러워서 운다. 나는 내가 참 애틋하다. 작품 속의 혜자가 자신을 애틋하다 말하는 것처럼. 등가교환의 법칙, 무엇을 얻으면 무언가는 내놓아야 한다는 세상의 이치. 젊음을 잃고 소중한 것을 얻은 혜자가 깨달은 것처럼. 죽음과 늙음의 얼마나 허망한 지를 격하게 느끼고 나니, 두려움도 생긴다. 내가 꿈꿨던 삶을 살고 있지 않은 미래와 마주하게 될까 봐 내가 그런 삶을 살도록 이끌어가고 있는 현재일까 봐.


그런 고민하는 순간이 늘어날수록 자기 확신도 줄어든다. 스타트업 대사에 나오듯 "자신감은 확신에서 나온다." 이번 주 내내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설레지? 무엇을 할 때 살아있음을 느끼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하지? 난 뭘 하고 싶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이렇게 살아도 될까? 내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취직이든 창업이든 지금 이렇게 살아서 돈을 벌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나 괜찮을까? "


그런데 이 대사가 명쾌하게 답을 해줬다.


'지금을 살 때' 행복하다.


나는 '지금'을 살 때 항상 행복했다. 과거도 미래도 제쳐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지금을 살아갈 때. 현재 심장이 뛰고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행복했다. 인생은 고단한 산행길이다. 언제 갑자기 끝을 맺을 지도 아무도 모른다. 묵묵히 가다 보면 대부분의 고된 길에서 발견하게 되는 즐거움이 있다. 그것이 꽃일 수도 있고, 못 보고 지나쳤던 숲 속의 아름다운 장관일 수도 있고, 정상에서 느끼는 짜릿한 성취감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행복은 그런 것이다. 잠시 잠깐 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현재 행복을 발견하기 위해선 현재를, 지금을 살아야 한다. 행복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 행복만 느낄 수 있다면 그만큼 불행한 것도 없겠지만, 적어도 행복이 제 발로 찾아왔는데도 내쫓지 않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을 살아 보려 한다. 지금의 나와 마주하고 살아 보려 한다. 지금의 나를 애틋하게 여기며.



오늘 아침 식단 : 밤호박 130g, 석류, 코코넛 플레이크, 아몬드 10개, 수제 비건 요구르트 100ml, 시나몬 가루

이제 밀리지 않고 식단일기를 쓰고 운동을 하는 일상으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한 주 동안 푹 쉬고 방황한 것을 마치고, 조금씩 다시 일기 쓰듯 매일 글을 쓰고, 사진을 보정하고,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하고, 하고 싶은 것이 넘쳐나서 행복해하는 현재를 사는 나를 되찾으려 한다. 눈이 부시게.


"오로라는 에러야. 원래 지구 밖에 있는 자기장인데 어쩌다 보니 북극으로 흘러들어왔다는 거야. 그 말인즉슨 오로라는 조물주가 의도한 대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만들어진 에러다, 이거지. 그런데 너무 아름다운 거야. 그 에러가. 에러인데도. 에러도 아름다울 수 있어. 눈물 나게. 나는 오로라를 만나는 순간에 막 울 것 같아. " -<눈이 부시게> 중에서 혜자가 준하에게 건네는 말.
인생에 수많은 버그와 에러를 만나더라도,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님을 기억하고 싶다. 어쩌면 오로라를 마주칠 수도 있는 순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야지. 이 글을 보고 있을 당신도 그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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