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Harry styles - love of my life
사랑을 배웠다. 곧이어 이별도 배웠다. 돌이킬 수 없음을 배웠다.
잠깐의 후회와 되짚음, 오롯이 내 안에 그에게 배운 것이 남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의 끝은 바로 여기에 있음을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그게 더 씁쓸하고 아리게 느껴지는 까닭은 어쩌면 우리가 영원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와 함께 했던 그때 그 시절의 나와 이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떠올려 보면 그는 그 시절, 나의 모든 것이었다.
둘도 없는 친구였고, 닮고 싶은 부분이 아주 많은 멋진 멘토였고, 같이 있으면 마음이 놓이는 가족이었다.
덕분에 깊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기쁨과 행복이 무엇인지를 순간순간 깨달았다.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나와 타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처럼 좋은 사람과 함께 해서 행복했다.
때문에 그를 잃었을 때, 좋아한 만큼, 나의 어리석음과 옹졸함, 치사함과 마주해야 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의 말과 행동에 의해 그도 상처 입었을 것 같아 오랫동안 아팠다.
우리가 만나서 친구가 되고, 살아온 이야기와 감정을 나누고, 그를 좋아한, 그 모든 선택들은 내 마음을 베는 칼이 되었다.
그 모든 선택을 후회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려면, 나의 못난 모습과 뒤늦은 후회까지 각오해야 한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좋아하는 정도와 정확히 비례하게 슬퍼질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것은 그리움이었다.
나를 몹시도 슬프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너무도 사랑해서 사랑하다 하다 미워지거나, 미워지지 않을 만큼 사랑했던 사람들이었다.
내가 나를 미워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도, 내가 사랑했고,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나는 그런 나와 그가 미웠다.
그가 처음에 문을 열고 들어 올 때,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친해지고 싶어서 그의 곁을 맴돌면서 계속 한두 마디씩 말을 걸었다.
우리는 꽤 잘 맞았고,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같이 놀 때면, 나이가 몇 살이고, 지금 어떤 일들을 겪고 있고, 그 때문에 어떤 감정이 드는지, 미래는 어떻게 될지 걱정하는 걸 멈추게 됐다. 그런 고민은 싹 다 잊을 만큼 덕분에 처음 겪는 일들이 즐거웠다.
그 당시 나는 입시에 실패한 패배감에 허우적거리며, 나를 혐오하고 있었다. 그동안 하나씩 쌓아 왔던 자기혐오가 그제야 터져 나왔던 것 같다.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하고 싶은데, 나는 내가 너무 싫어. 나는 영영 나를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라고.
그때마다 그는 나에게 말해주었다.
"내가 볼 때, 너는 너를 정말 사랑해.
자기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너처럼 행동하지 않아.
그리고 나도 너를 사랑하고.
나를 믿어."라고.
덕분에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아차리고 가꿀 수 있었다.
내가 나를 미워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말과 행동을 할 때마다 그는 자기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의 마음을 내게 쏟아 가며 알려 주었다.
덕분에 나는 나를 혐오하는 마음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따금 나를 힘들게 하는 일에 대해 어리광 부리듯이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그때마다 '그런 걸로 마음 고생했어~?'라는 눈빛과 함께 "너무 신경 쓰지 마. 별일 아니야."라는 말을 건넸다.
그때마다 '이건 귀여운 고민인가 봐!'란 생각이 들었다.
그의 약간 무심한 듯 쿨한 면모와 특유의 덤덤함이 나의 예민함과 불안, 걱정을 잠재워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별일처럼 느껴졌던 일도 별일이 아닌 것처럼 사그라들었다.
함께 있으면 늘 눈만 마주쳐도 깔깔대며 웃기 바빴다.
나는 조금씩 그의 밝음에 동화되고 정화되었다.
그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 나도 나를 사랑하며, 사랑을 나누는 법을 배웠다.
그와 바다를 보러 갔다.
밤바다에서 버스킹 하는 사람들과 손잡고 거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맥주를 마셨다. 황홀하고 눈부신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여행은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그는 그 뒤 핸드폰 번호도 바꿔 버리고, 잠적을 했다.
나한테 와서 묻는 사람이 많았지만 아무것도 답할 수 없었다. 서럽고 서운하고 화가 나고 당혹스러웠다.
소문만 무성하고 그의 생사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내가 여행에서 뭔가 기분을 상하게 했나? 여행 다녀와서 연락을 하지 않는 동안에 무슨 사고라도 생겼나?'
별의별 상상과 추측을 다 해 봐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별 일 아닌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은 너무 큰 충격이었다.
나한테까지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내가 그만큼 믿음을 주지 못한 사람에 불과했다는 의미로 읽혔다.
나한테도 화가 나고, 그에게도 실망했다. 어쩐지 크게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겨우'이 정도의 사람이었다는 게 실망스러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힘든 일이 생길 때나 기쁜 일이 생길 때, 그를 가장 먼저 떠올릴 정도로 우린 가까웠다.
그래서 어떤 변화가 생기면 나한테 가장 먼저 이야기해 줄 거라 의심치 않았다.
그 정도로 나한테 큰 사람이었고, 그만큼 그에게 의지했었다.
나만의 착각이었나 싶어서 생각과 감정이 널을 뛰었다.
내가 도망치듯 휴학을 선택했을 때, 그는 절묘하게도 내게 다시 연락했다.
달갑지 않았다. 혼란스러웠다.
그는 말했다. 복잡한 상황과 여러 감정이 얽혀서 나한테조차 이야기를 건네기가 어려웠다고. 다시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고.
나는 경험해 본 적 없는 일이고 감정이라, 그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납득하기 어려웠다.
사정은 알겠지만 나는 너무 서운해서 아무 일도 없었던 예전처럼 지내기는 어렵다고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절박했다. 어떻게든 그를 다시 내 삶에 붙잡아 두고 싶었다.
당시의 나는 이미 여러 사건을 겪으며, 모든 감정이 소진된 감정 불능 상태였다.
상대방과 나를 자세히 들여다 보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감정적 에너지가 이미 완전히 고갈되어 있었다.
그가 곁에 있기만 한다면, 예전처럼 영혼에 상처 입은 일들이 별일 아닌 것으로 정화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털어놓고 의지하고 기대고 어리광 부리고 싶었다. 힘든 일은 잠시 잊고 그와 다시 시시콜콜한 잡담이나 하면서 웃고 싶기도 했다.
괜찮은 척 애쓰는 걸 그의 앞에서라면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끊어진 인연을 이어 붙이려고 노력했다. 마치 끊어진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 간극을 느끼지도 않고, 느껴지지 않도록 하려고 갖은 애를 썼다.
하지만 금세 서로 깨달았다. 우리는 지금의 우리를 보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어린아이 같이 웃고 떠들고 즐겁고 시시콜콜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우리, 자기 자신이 그리운 것뿐이었다. 추억 속에 살고 싶은 거였다.
그와 다시 함께 하면서 사람 대 사람으로, 마음 대 마음으로, 서로에 관해 깊이 탐구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애정이 남아서, 추억이 남았다는 이유만으로는 끊어졌던 인연을 다시 이어 붙일 순 없었다.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주었으면 좋겠는지, 나는 어떤 방식으로 주고 싶은지 원하는 모양이 정해져 있는 관계는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변해가는 우리와 이미 변해버린 우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간극을 좁힐 게 아니라, 관계를 새로 만들어 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걸 기대하고 다시 만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억지스러운 부분, 과하게 신경 쓰고, 신경 쓰이는 부분이 늘어갔다.
마음을 쓴다고 한 말과 행동이 외려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게 했다.
자꾸만 서로에게 서로의 존재가 무겁고 불편한 위치로 옮겨갔다.
그래서 그가 "우리 더 이상 만나지 말자"라고 통보했을 때에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이해와 공감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어서, 이따금 함께 했던 시간에 머물렀다.
내 행동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곤 했다.
이상하게 너무 아프고 또렷하게 다가와서, 열어 보았다가도 금세 닫았다.
우리였던 때의 나는 서툴러서 상처받고 상처를 내고, 아직 어린이면서 어른인 척 흉내를 내고 있었다.
너무 지질하고 속 좁고 모든 게 처음이라 아무도 없는 곳에서야 겨우 펑펑 울었던 어린 어른인 나와 마주했다.
전화번호도 모를 정도로 서로 연이 온전히 끊긴 후에야 깨달았다.
내가 알아차리고 있던 것보다 그를 더 많이 사랑했다. 그 어떤 사람보다도.
사랑한 만큼 그가 말도 없이 곁을 떠났을 때엔 버려진 것 같아서 상처받았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엔 기뻤다. 괜찮은 척, 아닌 척하려고 했지만 정말 많이 좋아하고 의지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가 날 다시 떠날까 봐 극도로 불안에 떨었다. 그걸 티 내지 않으려, 괜히 더 쿨한 척했다.
작정하고 내가 나를 속이니까 나는 또 그런 내 마음을 알지 못했다. 괴로웠다.
그가 정말로 다시 나를 떠났을 때엔 진짜로 버려진 느낌이 들어서 슬프고 아팠다.
우리의 완전한 이별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말로만이 아니라, 진짜로 괜찮아질 '시간'이 필요했다.
그와 완전히 이별하며 생각했다.
더 이상 슬퍼하기 싫다.
누구도 사랑하고 싶지 않다.
두렵다. 또 '버려질까' 두렵다.
사랑하지 않아야겠다.
누구도 곁에 두지 말아야겠다.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할 마음도 남지 않아 버린 채, 나는 다짐했다.
나는 더 이상 그를 사랑했던 만큼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