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생 - 나현상씨밴드
평생 함께 할 거라 생각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와는 오랜 시간을 가장 가깝게 지냈다.
수많은 힘들고 기쁜 날들을 함께 보냈다.
돌아보면 날씨처럼 늘 내 곁에 있었다.
많은 시간 동안 내게 볕이 되고 선선한 기분 좋은 바람이 되고, 나를 품어주는 새벽녘이 되어주었다. 깊은 밤에도 덜 무섭고 덜 두려웠다.
오랜 시간 서로의 발전과 성장을 함께 했고, 응원했다.
그 많은 시간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같이 있으면 절로 자라나는 느낌이었다.
곁에서 오래 보고 배우고 싶었다.
그는 내게 기쁨과 슬픔. 위로와 버팀목, 감탄과 질투였다.
그는 내가 나보다도 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세심하고 생각이 많아서 선택을 내릴 때나 말을 할 때 고심해서 골라서 꺼내 놓았다.
그런 부분은 나와 꼭 닮았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우린 서로를 서운하게 하는 일이 적었다.
미움받거나 기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상대의 눈치를 많이 보는 점도 닮아서 공감할 수 있는 점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계속 우리이기 힘든 건, 역설적으로 우리가 너무 성장했기 때문이고, 앞으로 더 큰 사람이 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미처 몰랐는데, 커갈수록 너무 잘 보였다.
우리는 뼛속부터 너무 달랐다.
비슷해서 통하는 부분이 그리 크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상극이었다.
서로 너무 달라서 끌리기도 하고, 본받고 자극받으면서 자라나는 사이였다.
배울 점이 많고 줄 게 많은 쪽이 갑이라면, 그는 나에게 갑이었다.
나도 그에게 그만큼의 무엇을 주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가 나를 곁에 두기로 선택했을 땐, 그만큼 나도 그에게 무엇을 주었기 때문이겠지 추측할 뿐이다.
나는 그를 곁에 두고, 내가 부족한 부분을 그에게 배우면서 나의 결점이나 결핍을 메꾸려고 많이 노력했다.
진심을 다해 들어주는 태도, 상대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 것, 따뜻하고 진심 어린 위로와 격려, 말투 모두 나는 부족한 부분이었다.
나는 그처럼 다정함을 타고나지 못해서, 다정한 사람들에게서 어깨너머로 많이 훔쳐 배우고, 내게 맞는 모양으로 체득했다.
나의 다정함은 분명히 그로부터 온 게 많다.
차갑다는 말을 듣던 내가 다정하고 편안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까지 대부분의 덕은 아마도 그에게 있다.
그와 함께 하면서 그의 다정함이 나를 물들인 덕분이다.
우리가 헤어지기로 한 첫 번째 이유는 우리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컸기 때문이었다.
그는 갈등 상황 자체를 힘겨워했다.
괜히 껄끄러워지기 싫어서 기분이 상해도 티 내지 않고 속으로 꾹 참고 집에 가서 계속 곱씹어 보면서 서운해했다.
본인의 속 이야기를 꺼내 놓는 것도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어 했다.
나는 불편함을 느끼면 바로바로 이야기하고, 그래 주길 바랐다.
그래서 터놓고 이야기하게 됐을 때, 나는 꽤 당황했다.
그가 나한테 불편하고 서운한 일이 많았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나쁘게 생각하고 있었단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상했다.
그날 내 앞에서는 천진하게 웃고 있었는데 속으로는 내 욕을 하고 있던 게 아닌가 어쩐지 속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헤어지기로 한 두 번째 이유는 서로에게 베푸는 배려가 각자가 생각하기에 배려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배려였는데 어느 순간 그게 고정돼서 당연하게 여겨진 부분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대화할 때, 그에게 물었다.
너의 속마음이 뭐냐고.
그는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라고 내게 되물었다.
나는 한 번 더 노력해 보고 싶었다.
그는 전부 '우리 그만하자'는 뉘앙스로 말하면서, 그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가 어려우니까 나한테 자꾸 떠넘기는 듯했다.
그래서 내가 한 번 더 노력해 보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나를 배려하는 말투로 내게 자꾸만 다시 물었다.
'새로운 사람들, 너한테 더 잘 맞는 사람들이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보고 싶지 않냐'라고.
내가 참지 못하고 캐물으니까,
그는 결국 '나는 지금은 더 이상 함께 하긴 힘들 것 같아.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보면 모를까. 지금은 시간을 갖고 떨어져 지내면 좋겠어.'라는 말을 꺼내 놓았다.
그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좀 밉고 허전하고, 아쉽게 느껴졌지만 받아들였다.
이후에는 생각보다 쉽게 마음 정리가 됐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할 때마다 계속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그걸 내가 모른 채로 있는 것보다 차라리 온전한 혼자가 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흔들리는 존재인데, 그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요구했고, 너무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
돌아보면, 그때 그렇게 사이를 정리하길 다행이었던 것 같다.
언제나 그랬듯 그는 현명했다.
당시에는 익숙한 관계 안에서 있고 싶었다.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기에는 겁이 났다. 웅크린 채로 조금 더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나는 좀 더 넓은 관계를 갖고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면서 그에게 의존했던 많은 역할들을 다양한 사람들에게 나눠 줄 필요가 있었다.
내가 흔들려도 그런 갈등 하나로 우리 사이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과 더 가까워져야 했다.
그가 나를 떠나면서 비로소 한 시절이 갔다.
내가 관계 맺었던 패턴에서 다른 방식의 관계 맺음을 습득하고 시도할 때가 됐다는 걸 발견했다. 오히려 후련해졌다.
나를 충분히 들여다 보고, 내가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란 걸 알아차릴 시간이 필요하단 것도 느꼈다.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자 목표인데,
지금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사회에 나가서는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킬 거란 생각이 들었다.
회복이 불가능할 지경까지 무너질지 모를 일이었다.
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시절 인연은 분명히 있다.
굳이 붙잡으려 애쓰기보단,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게 필요한 때도 있다.
어떤 사이든지 변화는 바람처럼 찾아온다. 사람은 변하니까.
놓인 환경이나 상황, 관심사, 만나는 사람에 따라서 더 이상 함께 해도 즐겁지 않은 때가 올 수밖에 없다.
그때엔 잠시 거리를 두는 것도 방법이고, 자연히 멀어지는 것도 방법이다.
정답은 없다.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이나 때마다 다르다.
자꾸 예전의 우리를 떠올리면서 그리워하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상황은 오히려 악화된다.
어쨌든 지금을 살고, 내가 보고 싶은 그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진짜 그 사람을 제대로 바라봐 줄 때, 끊어질 수도 있는 인연을 바로 잡아 상생하는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또 가끔은 그 사람이 왜 그럴까? 그 이면을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알아보려고 노력해 봐야 한다.
그 사람이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 안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 봐 주어야 한다.
나는 많은 관계에서 그러지 못했고, 그와도 그랬다.
그래도 그를 만난 건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다시 보고 싶지는 않다.
그러면 아마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현명하고 똑 부러지는 친구니까.
그저 언제 어디서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길 바란다. 그럴 거라고 의심치 않는다.
많이 미안했고
고맙고
참 많이 좋아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