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INTJ - 바이닐
나는 갈등이 생겼을 때, 갈등 상황 자체를 빨리 없애고 싶어 하는 편이었다.
갈등을 피하고 싶지만, 지금만 피하고 싶은 게 아니라 앞으로 모든 상황에서 같은 갈등을 겪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불편한 감정이 들거나,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곧바로 해결하려고 했다.
갈등 상황이 생기면 침착하려고 애썼지만, 늘 안절부절못하고 관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느낀 거 같다.
어떤 갈등이 생기면 상대방이 나와 같이 이 문제를 나처럼 크게 느끼고, '우리의 문제'로 인식해 줄 거라는 믿음이 크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갈등 하나로 우리 사이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 거라고 믿는 사람을 못 만나 본 거 같다.
나는 늘 어떤 갈등이 생겼을 때, 나처럼 안절부절못하고 빨리 갈등을 없애 버리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만났다
또는 나한테 맞춰주면서 갈등을 회피하고 그런 상황을 축적해 뒀다가, 본인이 참지 못하게 되는 어느 날 갑자기 관계를 끝내자고 하는 사람과 친밀하게 지냈다.
두 가지 모습 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일면이었다.
그도 그중 한 명이었다.
당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그가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부쩍 가까워졌다.
그러다가 충돌이 생겼다.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아서, 내가 제안한 의견에 동의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 제안이 싫은데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답을 피해왔던 거였다.
그는 갈등을 피하고 싶었는데 갈등 상황을 결국 내가 만들었다는 듯이 내 탓을 했다.
말하다 보니 참을 수 없었는지 그동안 나한테 서운했던 점을 그도 하나하나 쏟아 내었다.
그 말을 듣고 엄청 놀랐다.
그 모든 날들에 내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같이 웃었기 때문이다.
'너만 참았던 거 아니야.'라는 마음이 들어, 나도 서운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네가 네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데,
내가 그 속마음을 다 알아차릴 수는 없어.
사실상 너의 선호나 일상을 거의 몰라.
나는 네 얘길 듣고 싶어 했지만,
너는 얘길 하지 않았어.
계속 피하는 것 같아서
굳이 묻지 않았는데,
난 서운했어."
라고 그에게 말했다.
어느새 서로의 탓을 하면서, 누구한테 더 책임이 있는 지를 가려서 상대방에게 탓이 있다고 떠넘기려고 했다.
결국에 그가 시간을 갖자고 해서 한동안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
오래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랑 관계를 끝내고 싶은데 차마 그렇게 말하지 못해서 돌려 말한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정리했다.
내가 '시간을 갖자'는 말을 꺼낸 게 아니기 때문에 내가 이제 시간을 그만 갖자고 말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그에게 내 의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관계가 끝이 났다.
이후에 그가 몇 번 다시 찾아와서
“그땐 내가 잘못했어. 다시 잘 지내보자”
고 말했지만 거절하고 잘라냈다.
그와 관계를 정리하면서, 주기적, 지속적으로 비슷한 문제가 생겨왔던 걸 알아차렸다.
인정했다. 이전에 남은 흉터가 자꾸 나를 건들고 있었다.
그래서 눈치도 과하게 많이 보고, 늘 그의 선택이나 반응에 따라 내가 취할 스탠스를 정했다.
자기중심 없이, 이리저리 휘둘렸다.
나에 대한 믿음도, 상대에 대한 믿음도 크지 않았다.
때문에 조그마한 갈등에도 불안하고 힘들어했다.
나는 그동안 나한테 해로운 관계 패턴을 계속 답습하고 있었다.
깨달은 점들을 적용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면도 있었지만, 결국엔 이전의 관계를 통해 이미 만들어진 잘못된 신념이 굳혀지기 쉬운 사람들에게 끌렸다.
내게 맞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려내지 못했다.
잠시 그 패턴을 들여다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지금까지의 나는 어떤 사람인지,
왜, 어떻게 관계 안에서 이런 내가 만들어졌는지,
그때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였는지,
내가 원하는 대로 바뀌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내 상태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믿음이 필요했다.
나에 대해서 덜 의심하고, 타인도 좀 더 믿고 덜 경계하고 좀 더 의지하되 집착하진 않는 법을 익혀 가야 했다.
건강하게 의존하는 방법을 습득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