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마음 - 김연정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때는 그 사람이 무조건 틀렸다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현명했고, 내가 틀렸다.
내가 어렸다. 아직 덜 자란 구석을 마주 보지 못했다.
내 안에 아직 자라지 못했던 아이가 고집을 부려서, 좋은 사람을 밀어냈다.
충분히 수용받지 못했던 구석이 비집고 나와, 난리법석 난동을 부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굴었다.
때문에 다른 사람 탓만 하기 일쑤였다.
나를 참 예쁘게 봐주고, 좋은 아이로 봐준 사람이 있었다.
내가 한 친구 때문에 너무 마음이 힘들어졌을 때, 그 마음을 어떻게 해결하지 못하고, 계속 괴로워하다가 그에게 털어놓았다.
사실은 그동안 말 못 했는데,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고,
여전히 너무 화가 나고 배신감이 들어서
계속 마음이 힘들다고.
하소연하면서, 내심 그가 내 편을 들어주길 바랐다.
같이 흉을 보고, 내가 옳았다고 말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런 일은 생길 수 있다. 거기에 얽매이지 마'라는 식으로 반응했다.
단 한 마디의 험담도 하지 않고,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았다.
속상했다. 서운했다.
'내가 그럴 수 있었으면 그랬겠지...! 왜 내 말에 공감을 못해? 왜 안 해줘?',
'나랑 더 가까우면서, 왜 내가 걔 때문에 그렇게 힘든데, 내 편을 들어주지 않지? 왜 같이 화를 내주질 않지?
나 정말 어렵게 털어놓은 건데... 가깝게 지낼 사이는 아닌가 보다...'
꽁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연락처를 지웠다.
별다른 연락 없이 핸드폰 번호를 바꿔 버렸다.
내 마음을 좀 더 솔직하게 내보이는 게 어려웠다.
속 좁아 보일까 봐 걱정됐다. 쿨하지 못한 성격이 괴로웠다.
내 탓과 그의 탓을 동시에 하면서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시간이 갈수록 미안함이 자라났다.
그는 건강하고 현명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진정으로 나를 위해준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런 마음과 상황을 먼저 겪어 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명확한 대처 방법을 갖고 있었던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많은 순간, 나는 나에게조차 채찍질을 했다.
우울하거나, 기분이 오락가락할 때,
내가 느끼기에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 있을 때,
감싸 안아 준 적이 없었다.
내가 나를 품기가 어려우니, 나를 품어줄 사람을 찾아다녔다.
아주 어린아이가 길을 잃어 엄마를 애타게 찾아다니듯이.
몸은 다 자랐는데 마음은 아직 자라지 못한 아이가 내 안에서 떼를 쓰며 울고 있었다.
지치고 힘든 나를 좀 안아 달라고.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나를 안아 주었다.
이젠, 누군가 안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다른 사람의 품이 간절하지 않다.
누군가 내 편을 들어주지 않더라도 괜찮다.
나는 내 마음에 나의 어떤 마음이 피어나고 있는 지를 알아차릴 수 있고, 왜 거기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
같이 있어줄 수도, 안아줄 수도 있다.
영원한 나의 편이 있다는 걸 안다.
모두가 나를 배신하고, 떠나고, 버리더라도 난 끝내 어쨌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내 편이다.
사이좋지 않았던 내 안의 어린아이와 사이좋게 지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이만 어른인 내가,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자 나를 안아주는 사람들도 생겨 났다.
시간이 흘러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때의 우리가 달랐던 건, 성숙도였다.
나는 아직 자아 없이 외부의 자극에 의해 크게 흔들리는 성인이었고, 그는 남과 구별되는 '나'가 있었던 성인이었다.
누가 내게 더 마음을 쓰는 사람인지, 이제야 안다.
비어있는 공감보다 내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더 나를 아낀다.
오히려 자기중심을 잡고 내게 따끔한 충고를 조심스럽게 건네는 사람이 더 나를 위하는 사람일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진국이다.
진국을 알아보지 못해서 놓쳤고, 상처 주었다.
이젠 진국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
다음에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꼭 꽉 잡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