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이중인격자 - 장유빈
사람을 꿰뚫어 보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숨김없이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누군가를 알아가고 관계를 맺는다는 건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는 환상을 절망으로 뒤바꾸는 과정일 지도 모르겠다.
상대에게 품었던 환상이 깨지면서 전체적인 그의 모습을 다 볼 수 있게 된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보다가, 보기 싫은 모습까지도 모두 보게 된다.
어쩔 수 없다. 모든 사람은 다면적이고, 선악을 모두 가지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언젠가 한 번쯤은 그에게 실망하게 된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크다.
그 사람의 본모습, 가장 극한 상황에서 가까운 사람한테 대하는 태도가
평소 나한테 대했던 태도, 평소 내가 예상하고 기대했던 것과 차이가 크면 클수록 실망도 크다.
다섯 가지 감정의 단계를 겪는 것 같다.
1. 첫 번째로 사람을 잘못 본 나를 자책하는 마음이 들고,
2. 두 번째는 내가 이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태도에 대한 회의, 후회가 밀려온다.
3. 세 번째는 내가 누군가를 품어 줄 수 있는 마음의 크기와 깊이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점이 통탄스럽다.
4. 네 번째는 그동안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진다.
5. 마지막으로 그동안 나를 속여 온 상대방에게 배신감과 울화가 치민다.
이 사이클이 계속 반복되다가, 내가 실망한 정도에 따라서 두 가지 반응을 보이게 된다.
내가 생각했던 그 사람과 본모습이 크게 벗어난 정도가 아니라면, 깊이 반성한다.
그동안 너무 편협적으로만 보고 있었다는 걸 인정하고, 결점이라도 받아들인다.
그 사람의 극히 일부일 뿐, 전체는 아니니까.
그냥 넘기기에 계속 그 사람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면, 하루 또는 일주일 뒤에 이야기해 준다.
그리고 더 다양한 면들을 자세히 알아보려고 노력한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은 질문을 던진다.
내가 생각했던 그 사람과 그 사람의 본모습이 180도 다르다면, 오랜 고민 끝에 서서히 멀어지거나 관계를 정리하는 쪽을 택한다.
그와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땡볕에 캐리어를 끌고 배낭을 메고 다녔다.
길을 헤매면서 힘들게 찾아간 카페가 문을 안 열어서 다른 곳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평소의 내가 본 그는 상냥하고 배려심이 넘치고, 눈치가 빨라서 센스도 좋은 사람이었다.
평소에 그런 모습만 보여줬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상황이 닥친다고 해도 그는 그런 사람일 거라 예상했다.
그래서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다른 데 가 볼 기회잖아. 오히려 좋아~! '같은 말을 해 줄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혼자만 고생하고 있는 게 아니라, 나도 같이 고생하고 있고, 같은 감정을 나도 느끼고 있다는 걸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의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평소 성격과 비교하게 됐다.
그가 힘들 때 나타나는 성격과 상반된 모습이 자꾸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이중적이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여행 후에, 그와 서서히 멀어지는 쪽을 택했다.
물론 나를 대했던 평소의 모습도 부단히 노력해서 잘 가꿔낸 성격의 일부겠지만, 그 당시에 그의 알맹이를 보고 모른 척할 자신이 없었다.
기분은 때때로 태도가 될 수 있다.
나의 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어디까지 허용하고, 수용할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감지하고, 분명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환상이 깨지고 현실을 마주했을 때에도 좋아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고 여전할 수 있다.
애초에 사람을 선택할 때에도 나의 선을 기준으로 선택하니 실망할 일 자체가 적다.
내 기분을 어떻게 다뤄서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는 온전히 나의 선택이고 책임이고 권한이다.
지금의 내 기분을 잘 감지해서 미래의 나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태도로 내비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기분을 잘 감지하고, 충분히 느껴줘서, 감정이 풍요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조금씩 감정 그릇을 넓고 깊게 만들어 가고 싶다.
그래서 좀 더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누군가가 나한테 실수를 하더라도
한 번쯤은 성숙하게
사람을 품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야 더 이상 실망과 절망을 반복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