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람이 더 끌리는 심리

나한테 나쁜 사람한테서 벗어나는 법

by 하원

BGM : Ship and the globe - Kae sun





그를 생각하면 유독 수많은 밤과 늦은 새벽이 떠오른다.


보고 싶어질 때, 연락했을 때, 그가 내 삶에 있었을 때가 주로 그때여서 일까. 그를 한동안 보고 싶어 했다.




꽤 오랫동안이다. '우리'를 소중히 생각했던 게.


어쩌면 그는 나의 일부였다.




주로 그는 받는 쪽이었고, 나는 던지는 쪽이었다.


그가 던지는 쪽이 되고, 내가 받는 쪽이 됐을 때, 그를 떠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서운하고, 당황스러웠을 수 있지만.




우리는 사는 세계가 열두 번도 더 왔다 갔다 할 정도로 내 인생이 가장 위태롭고 소란하던 시절에 만났다.


신도, 부모도, 나 자신도, 이 세계도, 세상 모든 게 원망스럽고 끔찍했던 때였다.




그는 나의 버팀목, 대나무 숲, 친구가 되어주었다.


누군가와 느슨하게 연락을 주고받고, 연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건 다 그와의 추억 덕분일 것이다.


편지를 유독 좋아하는 것도, 거의 매일 SNS로 그한테 편지를 보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가 읽는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숨을 쉬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그가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그 공간은 나한테 대나무 숲이었다.


오히려 내 고백과 같은 편지들을 읽지 않거나, 대충 읽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가끔 궁금해지긴 한다.


알았는데 모른 척 해준 걸까, 몰라서 태연했던 걸까.




내 착각이라면 꽤나 부끄럽고, 그에게 고마워지겠지.


애써 모른 척 해준 덕분에, 그 늪에서도 간간이 숨을 쉬며, 수면 위를 보고 헤엄쳐 나올 수 있었으니까.




내 상처는 누군가에게도 상처가 되거나, 내가 못 이기고 누군가를 베어버리곤 했는데, 그는 달랐다.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나를 불쌍하게 보거나, 부담스러워하거나, 상처 입지 않고, 그냥 나로 봐준 사람이 그가 어쩌면 유일했을 수도 있단 생각을 한다.


어떤 면에서는 서로 동질감을 느꼈던 것도 같다. 비슷한 상처를 갖고 있다는.




그는 내게 위험하고 어려운 면도 있었다.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얘는 그런 애 아니야. 얘는 달라. 얘는 건들지 마."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의 주변 사람들은 확실히 조금 위험하고 험악한 인상이었다.




위태롭고 곡예를 타는 듯하고, 툭툭대지만, 다정한 나의 일면만 꺼내 놓는다면, 딱 그였다.


그때의 나와 그는 그래서 주파수가 잘 맞았던 거겠지.




그가 다시 내게 왔을 때,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이제껏 그랬듯이 그에게 다시 돌아가 머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의 세계는 그동안 천천히 변화했고, 작게 진동하지만, 그와 함께 했던 때만큼 요동치지는 않기에.




집착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는데, 그에게 돌아가면 다시 과하게 의존하고 집착하게 될 것 같았다.




연락 꽤 오래 기다렸어서 다시 연락왔을 때, '이제 와서'란 생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이제는 그의 곁에도 그를 지켜주고 진심으로 사랑해줄 많은 사람들이 있고, 안정되어 가는 것 같아서, 내가 있어주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내 착각이니까 날 찾아왔겠지만.


떠나야, 떠나보내야 그때의 나와도 완연히 이별할 수 있어서 그를 떠났다.




그때의 나를 조금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물론 그건 완전히 나였다.


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다.




하지만 그때의 나만 기억하는 그에게
지금의 내가 끼어들 자리가 있을까?




지금의 나에게는 그는 너무 복잡하다.




점점 더 간결한 것들에 매료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어떤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다.


단지 우리의 세계와 주파수가 살다 보니 어느새 어긋나게 된 거지.




사춘기를 함께 보냈으니까, 사춘기를 떠올리면 여전히 그가 자동으로 연상될 것이다.


그 시절 나를 떠올리면 언제나 그가 있을 테니까.




그를 사랑했고, 때문에 그때의 나도 좀 더 품어 줄 수 있었다.


이해해 주길.




나는 하나의 세계를 뚫고 다음 세계로 넘어왔다.


이젠 누구에게 부축받지 않아도 뚜벅뚜벅 잘 걸어갈 수 있을 만큼 잘 자랐다. 기특하게 여겨줄 거라 믿는다.




그를 떠날 때,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는 내게 고향이기도 했다. 다시 돌아갈 곳이 없어진다는 불안과 맞서야 했다.




이제 나는 그래도 괜찮다. 내가 나의 고향이니까.




맞닿아 있던 우리의 세계가 단지 갈라진 것뿐이다. 홍해처럼.




너무 슬퍼하거나 서운해하진 않길 바란다.




믿는다. 그라면 나와 같이 이해해 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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