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Frame - 국카스텐
나는 욕을 하지 않는다.
아주 드물게 정말 인생이 뭣 같을 때, 혼자 있을 때 읊조리긴 한다.
그때를 빼곤, 욕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그마저도 사람을 향해서는 내뱉지 않는다.
그런 나도 욕 없이 말하는 게 어려웠을 만큼 욕을 많이 했던 때가 있다.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황들이 내가 너무 약하기 때문인 것 같아서.
힘을 가지고 싶었다.
얕보이지 않고,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위협감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 봤자였겠지만.
내가 망가져가고 있음을 누군가 눈치채주길 바랐을 때, 욕을 가장 많이 썼다.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내가 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또래 중에서도 그때 유난히 예민했다.
이상은 높은데 현실의 나는 비굴하고 빌빌거리는 시궁창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괴리 사이에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기도 했고, 어디든지 도피하고 싶기도 했다.
매일 눈 뜨는 게 잔인하게 느껴졌다.
왜 매일 하루가 다시 시작된 것인지, 내게 왜 하루가 더 주어졌는지 망할 신이 있다면, 나를 살게 하는 그 온갖 신을 다 저주하겠노라 마음먹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 신들이 정한 내 운명이란 게 뭔지 내가 두고 본다고.
온 마음이 다 뒤틀리고 비뚤어져 있었다.
그 누구도 모르는 새에. 그 누구도 관심이 없는 새에. 나조차도 나를 속이려고 애쓰는 새에.
일말의 자기 연민과 비대한 자기혐오를 입고 있었다.
언젠가는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고, 구하러 와주거나, 삶이 빨리 끝나버리라고 빌면서. 이 시기를 점프해서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탈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 어디도 마음 편히 쉴 만한 안식처가 없는 것 같았다.
내 일생일대의 가장 큰 반항이자 일탈이 욕이었다.
엄마가 나한테 바라는 이미지를 엄마 모르게 깨트리고 있다는 느낌도 좋았다.
살라는 대로 살지 않고 있는 내가 좋았다. 내가 나를 망치고 있다는 게 좋았다.
엄마가 빚어 놓은 틀을 깨부수는 게 좋았다.
인형처럼 움직이는 게 숨이 막혔다. 끝도 없는 요구와 기대, 높아지는 기준치.
내 인생은 어디 있나. 내 인생이랄 게 있나. 날 망치고 망가뜨려서든지, 내가 세져서든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어떤 세계든지 다른 세계로 벗어나고 싶었다.
겁 많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엄마 모르게 친구들 앞에서 욕을 늘어놓는 것.
그때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아마 지금 날 보면 못 알아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내가 봐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함부로, 애틋했다. 나는 나에게.
애틋하다 앞에, '함부로'라는 수식어가 사라지고, '그럼에도'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내 삶은 바뀌어갔다. 삶의 위기마다 나는 내가 그럼에도 애틋해졌다.
역동하는 불안과 우울을 뚫고, 언제나 어떻게든 나를 지켜내고,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내고야 마는 나를 바라보며 굳은 믿음이 생겼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나는 적어도 나를 지키고 살려낼 거고, 그렇다면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누군가를 지키고 살리는 데 기여할 수 있겠다고.
그는 욕을 정말 많이 했을 때 만났다.
서로 욕을 주고받고, 약간 디스 하듯이 장난스럽게 시비 거는 게 그땐 친근감의 표시였다.
시간이 지나며 갑옷처럼 두르고 있던 욕을 버렸다.
괜히 누군가를 헐뜯거나, 낮추면서 농담을 건네는 것도 관두었다. 일부러 껄렁하게 걸었던 습관과, '~냐'로 끝나는 말투도 버렸다.
나를 낮추거나, 상스럽게 보일 수 있는 언행을 삼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본래의 상냥함과 친절함, 다정함, 특유의 차분함이 말투와 행동에 다시 묻어났다.
가장 나다운 모습을 찾아가면서, 내게 여전히 욕을 하고, 예전의 나를 끄집어내려고 하는 그를 끊어냈다.
지금의 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이미 고정되어 있는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지 않았다.
흔들리고 깨져버릴지라도, 고집스럽게 비칠지라도, 어떤 순간에도 나를 지켜내는 게 우선이다.
타인에게 배려해 주고, 인정받는 걸로 존재감을 채웠었다.
그 마음을 이용하려는 사람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휘청거리곤 했다.
이젠 안다. 내가 애틋한 사람은 애초에 날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날 잃을까 봐 두려운 마음이 어딘가엔 자리 잡고 있을 테니까.
함부로, 애틋하게란 없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나를 애틋하게 생각할 리 없다.
내가 나를 함부로 대하고 있을 때 만나,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여전히 착각하게 두어서, 나를 훼손시키고, 점거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욱여넣은 틀 속에 갇혀 나를 도려 낼 필요는 없다.
자유로운 영혼인 나를 사랑하기에 날 망치고 싶지 않다.
누군가가 날 '함부로' 대할 때, 그건 그냥 함부로 일 뿐, 거기에 '애틋함'은 없다. 거기까지 내가 고려할 필요는 없다.
내가 함부로라고 느꼈으면 함부로 일 뿐이다.
함부로 애틋하게란 없다. 어떤 틀에도 갇혀 있을 필요 없다. 필요하다면, 깨뜨려야 한다.
함부로, 애틋한 건 없다.
나는 다시 나를 제대로 지어 가고 있다. 날 함부로 대한다면, 함부로 대하고 있다는 걸 알려 주고, 그래도 바뀔 마음도 없어 보이고, 바뀌지도 않는다면 단호하게 삶에서 내보내기로 결심했다.
날 함부로 대하면서, 날 위한다는 새치발린 말로 애틋함을 위장하는 사람이라면 수없이 많이 겪었다. 더 이상 속아주지도, 속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애틋하게 내 템포에 맞춰 걸어와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
고정된 채로 있지 않을 테다. 내 두 발로 언제라도 내 삶을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게.
욕과 욕하는 친구를 버리고, 굳건한 나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