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내 가족을 평생 용서하지 못할 줄 알았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때

by 하원

BGM : 텅 빈 방 - 정유빈





나는 사랑받았을 텐데. 왜 기억하지 못할까.


아니, 사랑을 사랑이라고 받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면서 왜 무수한 오해로 점철된 시절을 보내왔을까.




집이 숨이 막혔다.


미디어에서 집에 대한 로망을 실현한 집을 보여 주거나, 그런 가정을 보여 줄 때마다 마음이 힘들었다.




가끔은 뛰쳐나가서 어디론가로 탈출하고 싶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갑갑하고 답답했다.


말을 해야 어떻게 풀어나갈 텐데, 누군가는 회피했고 누군가는 집착했다.


누가 잘못인가를 따지다가 정작 해야 할 말,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 못했다.




좋아할수록 이상하게 꼬였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늘 긴장됐고, 눈치 보였다. 불안하고 무서웠다.




집이 늘 불편했다.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가 특히 힘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았다.


서로를 사랑하는 건 분명한데,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도 달라서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다.




때때로 미워하기도 했다.




서로 생각하는 사랑과 책임의 모양이 너무도 달랐다.




내가 어떤 일을 겪고 있고, 어떤 감정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주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가정에서 주로 내가 그런 역할을 했다.




이해가지 않는 게 너무 많지만, 거기에 맞춰 주려고 애썼고, 실망시키지 않고 기대를 충족시켜주려고 했다.




나도 힘든데, 겉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이미 가뜩이나 모래성처럼 위태로워 보이는데 나까지 부담을 주면 모래가 알알이 흩어져버릴까 봐 겁이 났다.




어떤 힘듦과 감정을 겪고 있는지 알고 있었고, 내색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나만큼은 부모님 걱정시키지 않고 짐이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알아서 내 감정을 해소하고, 나이대마다 주어진 일들을 혼자서 최대한 해결해서 손이 가지 않아도 되도록 최선을 다했다.


집이 나의 안전 기지가 되어주진 못했다.




누구의 탓을 하기도 애매했다.


항상 두 가지의 양가적인 감정이 다투었다. 원망과 감사.


가족들이 미워질 때면, 내가 너무 나쁜 아이 같아서 괴로웠다. 좋아하는데 미웠다.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


분명 배웠을 텐데, 받았을 텐데, 왜 껍데기만 남아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걸까.


책임지는 것도 사랑인데.




내가 원했던 건 감정적인 교류라서 책임지는 사랑은 애정이 한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욕심이 많아서인 걸까.


그 무게를 뒤늦게 헤아리게 된다.




사랑의 언어가 달라서, 나는 뿌리 없이 자라나, 오랜 시간을 떠돌았다.


내 뿌리가 되어 줄 사람을 밖에서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 어디에도 없었다. 파랑새 이야기처럼, 내 뿌리는 내 안에서 자라나 있었다.


자라난 뿌리 덕분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오해도 하나씩 풀어 가고 있다.




우리는 친해지고 있다. 이제야.


우리는 이전과는 다르게 표현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서로의 사랑의 언어를 배우고 있다.




돌아올 곳이 생겼다.


같이 있을 때 더 이상 외딴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여전히 풀어야 할 오해와 겹겹이 쌓인 묵은 감정들이 남아 있지만, 서서히 털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우리는 언젠가 서로에게 진정한 의미의 집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함께여서 더욱 사무치게 외로웠던 시절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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