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 Kong
구룡채성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오늘날 사라져 버린 이 슈퍼 슬럼은 아편전쟁으로 거슬러가는 홍콩의 역사와 영국 식민지 시절 복잡한 국제 관계가 만들어낸 독특한 산물이었다. 당시 영국과 청나라 사이의 권력 공백과 법적 통제의 부재 속 사람들은 계획되지 않은 건물들을 계속해서 지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밀집된 슬럼이 형성된 것이다.
현재 구룡채성이 있던 자리는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1993년 철거가 시작되어 2년 만에 완공돼 슬럼의 흔적은 대부분 사라졌다. 따라서 채성의 흔적으로 남은 것은 일부 성문과 성벽 그리고 관청 건물인 남문과 야문청 정도뿐이다.
방문 당시 운 좋게도 구룡채성의 역사를 다룬 무료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대신 입장하려면 시간대별 티켓을 미리 받아야 해 티켓을 받고 입장 시간을 기다리며 공원을 가볍게 둘러봤다. 연못과 전각, 다리 등이 조화를 이루는 중국 남방식 정원 양식이 눈에 들어왔다.
전시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각 부스별 구룡채성의 내부 생활상을 재현한 조형물을 볼 수 있었다. 대체로 포토존처럼 아담하게 꾸며져 있었다.
나름 잘 꾸며놓은 마트는 달동네에서 볼 법했다. 그러나 구룡채성이라면 이러한 열악한 개별 공간들이 모두 모여 만들어진 거대한 성을 떠올리게 마련이라 달동네 박물관 정도로만 느껴졌다.
주방, 식당, 이발소, 철물점, 수선 가게 등도 재현해 놓았다. 채성 안에는 이렇게 생활에 필요한 모든 상점이 갖춰져 있어 사실상 모든 일상을 안에서 해결할 수 있었던 듯하다. 이보다 더 열악했을 환경을 떠올리니 당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극한이었을지 상상하게 되면서도 흥미로웠다.
오히려 모형 위주로 꾸며진 전시보다 개인적으로 이런 실제 사진과 함께 달린 설명 주석이 더 인상 깊게 다가왔다. 많이들 홍콩에 오면 이렇게 좁고 정신없는 곳에서 어떻게 사냐며 신기해하지만 이조차도 구룡채성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싶다. 사진 속 당시 사람들의 표정에는 그저 자연스럽게 생계를 이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고 그 모습이 오히려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공원에서 나와 몽콩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우연히 카이탁 표지판을 마주쳤다. 카이탁은 과거 홍콩의 대표 관문이었던 공항 지역으로 구룡채성과 가까워 이착륙하는 비행기가 훤히 내려다보였다고 한다. 아마 소음도 장난 아니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