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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먹는 여우 Jul 22. 2024

뒤늦게 사랑이 찾아왔어요, 어찌해야 할까요?

<달빛> - by 기 드 모파상 -

얼마 전 한 여성의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그분은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이신데 운동 동호회에서 만난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 남편과 이혼하고 어린아이들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현실이 드라마 보다 더 막장이라더니 내 가까이에서 실제로 벌어진 이야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동안 그 이야기는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예고도 없이 급작스럽게 찾아온 사랑 앞에서 속수무책일 때가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문학 속 다양한 인물들의 사랑이야기에서 길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평생 문학을 손에서 놓지 못할 것 같다.


   玉 階 怨(옥계원)     

                               李白(이백)

玉 階 生 白 露(옥계생백로)

옥섬돌 위로 하얀 이슬이 내리고

夜 久 侵 羅 襪(야구침라말)

밤이 깊어 비단 버선에까지 냉기가 스며들었네

卻 下 水 晶 簾(각하수정렴)

방으로 돌아와 수정발을 드리우고

玲 瓏 望 秋 月(영롱망추월)

영롱히 비치는 가을 달만 바라보네


술과 달의 시인 이백의 악부시 옥계원(玉階怨)이다. 궁중여인의 외로움을 표현한 시로 밝디 밝은 가을 달빛이 사랑하는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여인의 한을 응축하고 있는 듯하다.

“달”하면 떠오르는 문학적 이미지는 그리움이다. 주로 우리나라와 중국과 같은 동양 문학에서 사랑하는 임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표현할 때 달이 등장한다. 사랑하는 임은 임금, 아름다운 여인, 멀리 떠난 남편, 이루지 못한 꿈 등이 될 수 있다. 달의 모양이나 상태도 둥그렇고 밝은 보름달, 여인의 눈썹에 비유되는 초승달, 구름에 가려져 희미한 달 등 제 각각이지만 모두 외로움과 쓸쓸함의 서정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인 기 드 모파상의 단편 소설 <달빛>이 있다.

사랑을 갈망하는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 이 작품 속에서 달빛은 언니 레토레 부인의 욕망을 투사한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14번을 ‘월광소나타’라고 부를 정도로 루체른 호수에 비친 달빛은 로맨틱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토록 황홀한 풍경 아래에서 달빛은 사랑에 대한 욕망 그 자체이기도 하며 여인의 내밀한 감정을 더욱 자극하고 드러내는 매개체이다.  남편의 무관심과 냉정함으로 상처받은 외로운 여인이 아름다운 달빛 풍경 아래에서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 위로받는다면, 그가 그녀의 정서적 결핍을 채워준다면 그녀는 운명적 사랑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언니 레토레 부인도 자신이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것에 대해 “하룻밤 루체른 호수 위를 비춘 달빛 때문”이라며 애꿎은 달빛을 탓한다. 한 순간의 감정이었을 뿐이라고 부정하지만 그녀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도록 여전히 고통스럽다. 왜일까?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너무나 쉽게 사랑에 빠진 상황에 대한 당황스러움 등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 등이 복잡하게 교차했을 것이다.

“레토레 부인은 동생의 품에 쓰러지듯 안긴 채 거의 울음 같은 탄식을 토해 냈다.” (p.97)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를 그토록 괴롭히고 있는 감정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아픔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풀밭에 앉아 애상을 불러일으키는 그 매혹적인 호수를 바라보았단다. 내 안에 어떤 묘한 것이 일고 있었어. 채워지지 않는 사랑의 갈망. 암울할 만큼 단조로운 내 삶에 대한 반항심이 일렁인 거야. 달빛에 잠긴 호숫가를 따라 사랑하는 남자의 품속으로 달려가는 일이 내겐 결코 없을 테지? 여름밤 백야의 환한 어둠 속에서 격정에 달아오른 두 팔에 뜨겁게 안기는 일이 나에겐 영영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 미친 여자처럼 울음이 터져 나왔어.” (p.96)


잔잔한 호수처럼 정숙한 여인의 내면에는 억눌러있던 사랑, 욕망, 열정이 달빛에 일렁이는 물결처럼 꿈틀거렸다. 이런 여인의 심정을 남편은 알 길이 없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극 T의 소유자였을까, 너무 신중하고 이성적이다. 여인에게는 유독 쌀쌀맞고 배려 없어 보인다. 게다가 늘 한결같아 문제였다. 누구에게 하소연할까, 선량하고 친절한 남편을 두고 철없이 불평한다고 핀잔이나 듣기 십상이다.

 “저 풍경이 당신의 마음에 든다는 사실이 키스를 나눌 이유가 되진 않소.” (p.95)


동생은 언니의 모든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곁에서 들어준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제이자 작가의 메시지라고도 할 수 있는 동생의 조언이 이어진다.

“봐요, 언니, 우리 여자들은 한 남자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랑을 사랑할 때가 종종 있어. 그날 밤 언니가 사랑을 나눈 진짜 애인은 달빛인걸.” (p.97)


다른 남자를 마음에 품은 언니가 죄책감을 갖거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좌절감에 무너지지 않도록, 여자라면 그럴 수 있다고 언니의 감정에 공감하고 다독여 준다. 그리고  한순간의 감정일 뿐 그만 훌훌 털어 버리라고.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어쩌면  사랑하는 과정에서의 설렘, 황홀함, 열정, 기쁨과 같은 그 감정 자체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달빛’은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내 손끝에 닿을 것 같지만 결코 가질 수 없음을 작가 모파상이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허수경 시인의 표현을 빌려 말한다면 "내가 나이를 먹고 또 먹고 진날 마른날 나이를 곱절씩 먹어도..." 여전히 사랑은 나 역시도 힘들고 어렵다. 오랜만에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소설이다.


사랑은 원래 한순간에 찾아오는 것이다. 심장이 제멋대로 뛰어 현기증이 나던 때가 있었다. 귀밑머리 하얘지도록 슬펐던 여인의 눈물이 내 마음에 와닿은 이유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떠오른 시다. 골자는 정치시지만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이 애절하다.


        節 婦 吟 (절부음)

                           張 籍(장적)

君 知 妾 有 夫    贈 妾 雙 明 珠(군지첩유부  증첩쌍명주)

당신은 제게 남편이 있는 줄 알면서    

저에게 쌍명주를 주었어요

感 君 纏 綿 意    繫 在 紅 羅 (감군전면의  계재홍라유)

당신의 그 애틋한 정에 감동해서     

저는 그것을 제 속옷에 매어 두었어요

          良 人 執 戟 明 光 里(첩가고루연원기  양인집극명광리)

저희 집은 높은 누각 임금의 동산에 연이어 있고   

남편은 창을 들고 명광전을 시위해요

知 君 用 心 如 日 月    事 夫 誓 擬 同 生 死(지군용심여일월  사부서의동생사)

당신의 마음씀씀이는 저 해와 달 같은데      

저는 남편을 섬겨 죽기를 맹세했어요

還 君 明 珠 雙 淚 垂   恨 不 相 逢 未 (환군명주쌍루수  한불상봉미가시)

지금 쌍명주 돌려주며 눈물 흘리나니       

제가 시집가기 전에 당신 못 만남 한스럽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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