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하린이라는 학생이 우리 반에 함께해. 다들 잘 지내봐."
담임 선생님의 소개가 끝나기도 전에, 교실 안은 싸늘한 정적에 휩싸였다.
하린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교실 전체를 훑었다.
감각이 빠져나간 듯한 텅 빈 책상들, 무표정한 얼굴들. 마치 꺼진 화면처럼 텅 빈 눈빛들.
이방인의 시선으로 본 이 공간은, 감정이 박제된 박물관 같았다.
"안녕. 하린이야. 잘 부탁해."
하린의 목소리는 낮고 또렷했지만, 이상할 만큼 공기와 어긋나는 감촉이었다.
그녀의 말은 파문처럼 퍼졌지만, 누구의 마음에도 닿지 못한 채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엘라는 교실 맨 뒤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린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묘한 긴장감이 깃들어 있었다.
따뜻한 듯 차가운, 어딘가 어긋난 퍼즐 조각을 바라보는 느낌.
특히 하린의 눈빛은 인상적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들 속에서, 그녀의 눈동자는 조용히 타오르는 푸른 불꽃 같았다.
'이 낯설고도 익숙한 느낌... 예전에도 이런 기분이 있었던가?'
쉬는 시간.
학생들은 마치 프로그래밍된 듯 정해진 루틴대로 움직였다.
각자의 자리에 앉아 OZ 단말기를 켜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교육 영상을 시청했다.
대화도, 웃음도, 소란도 없었다.
교실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자동 프로그램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그 고요함 속에서, 낯선 질문이 조용히 파고들었다.
"여기, 원래 이렇게 조용해?"
엘라는 놀라듯 고개를 들었다. 그 질문 자체가 금기인 이 공간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 건 처음이었다.
"...응. 여긴 다들 말을 안 해. 필요 없으니까."
"그럼, 감정은?"
엘라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감정은... 여기선 위험한 거야."
하린은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
"왜 위험한데? 그냥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것도 안 돼?"
엘라는 순간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선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 감시 대상이 돼. 감정은 곧 통제 불가능한 변수라고 여겨지거든."
하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단말기를 내려다보았다.
"근데 이상하더라. 아까 어떤 학생이 울었어."
엘라는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봤어?"
"응. 그리고 감정 센서가 반응했지. 그 학생은 바로 단말기를 열었고.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엘라는 눈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다들 그래. 들키면 안 되니까. 감정은 감춰야 하니까."
하린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눈빛은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장난기와 도전이 섞여 있었다.
"그렇구나. 근데... 그게 진짜 살아있는 걸까?"
그 말에 엘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안에서 무언가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교실 뒤편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조심스레 고개를 돌린 엘라는 맨 뒷자리의 한 학생이 손을 꼭 쥐고 떨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눈가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촤르르륵——
기계음이 날카롭게 울렸다. 마치 금속이 벽을 긁는 듯한 소리.
천정에 설치된 감정 감지 센서가 붉은 빛을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학생은 당황한 기색도 없이 눈물을 닦고는 곧바로 단말기를 열었다.
정해진 콘텐츠로 돌아간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표정하게 화면을 바라보았다. 감정은 삭제된 듯, 모든 움직임이 기계처럼 정교했다.
엘라는 그 광경을 숨죽인 채 지켜보았다.
'이건… 뭔가 이상해. 너무 이상해.'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회색빛 하늘, 감정이 지워진 표정들, 정적만이 흐르는 교실 풍경. 그러나 그 가운데
하린.
그녀는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조용히 앉아 있었다.
눈빛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고요한 결의가 깃들어 있었다.
엘라는 느꼈다.
그 눈빛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고, 그 속에서 미세하게 일렁이는 떨림은 자신이 잃어버린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엘라는 알 수 없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무언가가, 아주 큰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