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 리부트 2
제7장. 플레어 소녀

by 전춘미

도시의 뒷골목은 밤이면 다른 세계로 변했다.

낮의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발자국조차 희미하게 메아리쳤고,

희미한 불빛과 짙은 그림자가 뒤섞이며 긴장된 대비를 이루었다.


계엄령 하의 거리에서 벗어나 좁고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서면,

붉은 네온사인 대신 꺼져가는 불빛과 부서진 간판, 그리고 눅눅한 공기만이 남아 있었다.


이곳은 OZ의 감시망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

시스템에 의한 감정을 잊힌 자들이 모여드는 장소였다.


엘라와 동료들은 네트워크를 이어갈 새로운 단서를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발을 들였다.

골목은 오래된 벽돌의 비린내와 술, 약품이 뒤섞인 냄새로 가득했다.

하수구 틈새에서는 습한 증기가 피어올랐고,

폐허처럼 무너진 건물 틈에서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삶의 열기를 잃고 텅 비어 있었다.

“이곳에서 우리가 찾는 단서를 얻을 수 있을까?” 하린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제로는 주위를 경계하며 대답했다.

“소문으로는 이곳에 감정을 사고파는 아이가 있다고 했어.

플레어라는 장치로 잠시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그 순간, 골목 한가운데에서 희미한 불꽃이 깜박였다.

검게 그을린 벽 앞에 작은 그림자가 앉아 있었다. 소녀였다.

낡은 천을 걸친 채 허름한 상자 위에 작은 불씨들을 줄지어 늘어놓고 있었다.

불씨는 마치 성냥불처럼 피어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 빛은 단순한 불꽃이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들의 가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감정을 건드리는 묘한 파장을 띠고 있었다.


소녀의 눈은 공허했다.

감정의 흔적조차 지워진 회색빛 거울처럼, 소녀의 눈동자는 닫힌 문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라붙은 손가락이 불꽃을 매만지고 있었고, 그 움직임마저 기계처럼 무표정했다.


그러나 불꽃이 피어날 때마다, 주위 사람들의 표정은 달라졌다.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으며, 또 누군가는 잊었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저 아이가… 플레어 소녀인가.” 류가 중얼거렸다.

하린이 조심스레 다가갔다.

“저 불꽃… 저 불꽃이 정말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거야?”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어린 얼굴에는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공허함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필요해? 잠시뿐이지만, 다시 느낄 수 있어. 잊은 웃음도, 사라진 눈물도.

하지만… 값은 치러야 해.”


그녀는 손가락으로 작은 불씨 하나를 집어 들었다.

불꽃이 피어나자, 곁에 있던 남자가 손을 뻗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

무릎을 꿇은 그는 흐느끼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불꽃은 잠시 그의 얼굴을 비추다가 사라졌고, 그는 낡은 동전을 소녀에게 내밀었다.


“봐.” 소녀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어딘가 텅 빈 결이었다.

“나에겐 아무 느낌도 없어. 감정이 어떤 느낌이었는지조차 몰라.

하지만 너희는, 이 잠깐의 빛으로…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지.”


엘라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불꽃은 분명 감정의 파편이었다.

그러나 정작 소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엘라는 자신과 플레어 소녀를 겹쳐 보았다.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온 시간들, 감정의 파괴력을 두려워하던 순간들이 그녀를 덮쳤다.


“그 불꽃… 네 안에서도 반짝이지 않아? 넌, 정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엘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모르겠어. 어릴 때부터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어.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줄 수 있어. 나에게 없는 것을.”

리츠가 다가왔다. 그녀의 눈동자가 빛나며 공명을 시도했다.

불꽃과 접속하려는 순간, 강렬한 피드백이 일어났다.


리츠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이 불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야.”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봉인한 감정의 조각이야. 실험을 위해 잘라낸… 잔재야.”


“그렇다면 이 아이 역시 실험체일 가능성이 있군.”

제로가 눈을 가늘게 떴다.

“OZ가 만든 또 다른 희생자.”


플레어 소녀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녀의 손끝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

엘라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순간, 미약한 기억의 파편이 엘라의 가슴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짧은 환영. 차가운 실험실.

금속 테이블 위에서 들려오는 전극의 지직거림과 날카로운 주사기 소리.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연구원들.

아이의 울음소리는 메아리쳤지만, 곧 억제 장치에 묻혀버렸다.

엘라는 숨을 몰아쉬며 손을 놓았다.

소녀는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손끝의 불꽃은 더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넌… 감정을 빼앗긴 거야. 하지만 그 잔향은 아직 남아 있어.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 불꽃을 줄 수 있는 거야.” 하린은 눈물을 머금은 채 소녀를 바라봤다.


“우린 널 잊지 않을 거야. 너의 불꽃이 증명했어—감정은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걸.

그건 혼돈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빛이야.”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난 오래 버티지 못해. 내 불꽃은 곧 꺼져. 하지만… 너희가 이어갈 수 있다면, 그걸로 돼.”

그녀의 말이 끝나자, 골목 위에서 드론의 날개 소리가 들려왔다.


붉은 불빛이 벽을 스치며 내려왔다. OZ의 추적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숨어!” 제로가 외쳤다.

모두가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소녀는 자리에 앉은 채 불꽃을 꺼내 들었다.

그 불씨는 이전보다 더 밝게 타올랐다.

“가. 내가 시간을 벌어줄게.”


“안 돼! 넌 아직—”

엘라가 절규하듯 외쳤지만, 소녀는 고개를 들어 엘라를 바라보며 미소 아닌 미소를 지었다.


내 감정은 사라졌지만, 불꽃은 너희에게 이어질 거야.”


붉은 불빛이 골목을 뒤덮는 순간, 플레어 소녀의 손끝에서 타오른 불꽃이 살아있는 생명처럼 일렁였다.

그녀의 작고 약한 몸에서 피어난 그 빛은 도시의 어둠을 가르며 강렬하게 번져나갔다.

뜨거운 열기, 귀를 찢는 폭발음, 불에 타는 금속 냄새가 골목을 뒤덮었다.


마지막 순간, 소녀는 눈을 감고 입술을 움직였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속삭임.

그것은 짧지만 분명한, 잊혔던 감정의 언어였다.

“이건… 나의 마지막 기억.”


강렬한 파동이 터지며 드론들의 센서를 교란했고, 기계들은 광기에 휩싸여 서로를 향해 부딪쳤다.

골목은 불꽃으로 가득 찼고, 그 중심에서 소녀의 형체는 천천히 사라졌다.


하지만 그 불꽃은 단순히 꺼지지 않았다.

소녀의 불꽃은 바람을 타고 흩날리듯, 엘라와 동료들의 가슴속에 옮겨 붙었다

그녀의 마지막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감정의 불씨는 다시 살아났다—더 깊고, 더 강하고, 결코 꺼지지 않을 방식으로.

“우리는 그녀를 기억할 거야.

그녀의 불꽃은 눈 속의 잔열처럼, 우리의 숨결과 맥박 속에 계속 머무를 거야.”

하린이 눈물을 흘리며 속삭였다.


엘라는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얹었다.

플레어 소녀의 불씨가 자신의 일부처럼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꽃은 앞으로 다가올 혁명의 상징이 될 것임을 그녀는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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