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 버스는 이상한 버스였다. 칸쿤 시내에서 호텔존으로 가는 r버스 안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카리브해에 돌출되어 있는 폭이 좁고 20키로 가량 길게 이어지는 이 지대는 해변이 아름다워 거의 대부분의 지역들이 관광객, 특히 미국 관광객을 위한 호텔들로 채워져 있어 지명 자체가 호텔존으로 불린다. 미국인들에게 사랑받고 세계적으로 명성높은 이지역은 현재 한국에도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높아 심심치 않게 한국인들도 볼 수 있다. 각 호텔들은 대부분 해변을 가지고 있고-엄밀히 말하면 해변으로 향한 길을 막고 있고-그 속에서 모든것을 해결할 수 있는 올인클루시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니까 24시간 내내 운행되는 그 버스는 오직 즐기러 오는 외국인들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출근하는 멕시코인 두 종류의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밝고 활달하고 친절한 멕시코인들은, 유독 조용히 이어폰을 듣고 있거나 작업복을 입은채 창밖을 쳐다보고 말이 없었고, 미국인들은 흥청거렸다. 이상하게 미국인들의 목소리가 유독 큰 지역들이 있다. 미국에 대해서라면 사람들의 목소리 크기가 문제이겠냐만은 말이다
여담이지만 칸쿤 멕시코인들은 마치 수돗물에 친절해지는 약을 탄것만 같다. 너무 친절해서 버스가 택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스페인어 공부의 의지를 꺽어버린다. 심지어 소매치기를 당한 한 신혼부부는 코코봉고 앞에서 사진을 같이 찍고 팁을 뜯는, 다소 강제라서, 분장한 멕시코 인들에게 사진을 찍고 돈이 없다고 하자 오히려 위험하다고 차비를 받았다고 블로그에 적혀 있었는데, 칸쿤에서 8일째 날 코코봉고 앞 맥도날드에 앉아있던 우리는 어이가 없어 웃으면서도 멕시코인이라면 충분히 그럴만도 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총균쇠'에서 보았던 200명의 스페인 양아들이 환대하는 아즈텍 제국의 황제를 사로잡아 정복이 쉬웠다는 에피소드가 괜히 떠올랐다. 물론 원인은 다른 역사에서 보듯 제국의 분열과 서구인들이 가져온 역병에 원주민의 70프로 이상 죽어나간 것이 더 큰 원인이었겠지만.
칸쿤이 물가가 비싸다는 말은 한국인기준으로 호텔존의 물가 때문이다. 하지만 호텔존 입구의 다운타운에서 머무르면 마트와 로컬샵을 이용하면 체감상 한국물가의 절반 정도의 느낌이다. 그러니 미국인들에게는 어떤 느낌이겠는가? 쿠바에서 넘어온 덕분에 미국적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있으면서도 물가가 싸고 사람들이 친절해서 한동안 아주 편안하게 쉴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호텔존 같은 구역은 비싸기도 하고 지나친 관광지 그 자체는 거르는 편인데 지형이 원채 독특했고 이미 쿠바 앙꼰해변에서 카리브해의 색을 이미 보았다.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도 칸쿤이라고 하면 눈초리가 변했다. 특히 여성분들이 더 그랬다. 뭔가 분명있을 것 같았고, 숙소 주인에게 물어 퍼블릭 비치를 소개받았다. 검색을 해보니 쁠라야 델피네스를(playa delfines)많이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숙소 주인은 사람이 너무 많다면서 쁠라야 데 마를린(playa de marlin)을 소개해 주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버스에서 호텔존을 살짝 비집고 들어간 현지인도 투숙객도 아닌 이방인이었다. 보조 가방이 작아 이것저것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들고 들어갔다. 그런데 그 해변에선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퍼블릭 비치입구에서 저멀리 바다가 보이는데 욕이 절로 나왔다. 멀리서 보아도 바다색이 너무 아름다워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파도는 기본적으로 강한 편이지만 바다는 멀리까지 얕았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진 해변은 하얀 파도와 어우러졌다. 바다에 들어가 정면을 보면 하얀 파도가 겹겹히 몰려와 정신이 없는데 좌우를 살펴보면 끝간데 없이 포말이 이어졌다. 아이폰 줌 기능을 최대로 해도 끝이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 도착한 날이 오후3시가 넘어 날도 너무 덥지 않아 마음껏 해수욕을 즐겼다. 해질 무렵 델피네스를 갔는데 전망대가 있고 포토존이 있었다. 잘 꾸며져 있었지만 모래는 마를린이 훨씬 가늘고 좋았다.
다음날은 늦게 일어나 이슬라 무헤레스를 갔다. 칸쿤을 여행하는여행자들이 반드시 찾는 우도만한 섬이었다. 하루 정도는 넉넉히 구경하는 곳이었는데. 늦게라도 억지로 가보았다. 과연 이곳이 그 해변보다 좋을지 확신이 들지 않아 마지막날 오기보다는 선택을 위해 이 곳을 들어와봤다. 섬으로 들어가는 뱃길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야 말로 바다에 진하고 맑은 물감을 여기저기 뿌려둔것 같은 곳이었다. 바다 뒤로 보이는 도시도 낭만적이었다. 하지만 섬은 몇몇 매우 아름다운 곳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제주도 보다 아름답지는 않았다.
그 날 카트를 두어시간 운전하고 비 오기 직전 부두에서 칸쿤 호텔존을 바라본 풍경은 아름다웠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 돌아가는 배를 타러 섬안의 모든 사람들이 부두로 쏟아져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줄을 섰지만 일부 멕시코인들은 맥주를 마시며 세월아 내월아 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속에 끼었다. 배가 사람들을 싣다 멈추는 순간 모두들 야유를 보냈다. 항의라기보다는 모두 그러며 놀고 있었다. 그렇게 배를 보내기를 여러대 이러다 숙소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건물 바깥까지 이어진 줄을 섰는데 어느 직원분이 외국인이 여기 서 있다고 우리를 주워 앞으로내보네 주었다. 밤늦게 숙소로 돌아가는 길도 주변사람에게 물어가며 버스 정류소를 알려주었다. 칸쿤에 버스 정류소 표시가 없는데도 별로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다음날은 다시 호텔존의 다른 퍼블릭 해변을 찾아나섰다. 투어를 해보고 싶어 가장 끝에 니숙(playa de nizuc) 찾아 나섰다. 하지만 한때 퍼블릭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퍼블릭이 아니었다. 더운 땡볕에서 한참을 걸어 돌아왔다. 너무 더웠다. 버스를 타고 쁠라야 발레네스(playa de ballenes)에 갔다. 역시나 환상적이었다. 여기에는 양 옆으로 호텔 비치가 있어 다양한 탈거리 놀거리가 풍부했다. 우리는 안전요원의 원두막이 들인 그늘에 누워 노래도 듣고 수영도 하고 잠을 자기도 했다.
칸쿤 호텔존의 물놀이는 지금까지 본 풍경 중에서는 가장 좋았던거 같다. 가끔 얘기하는 태풍불때의 제주 주상절리, 외돌개보다 좋았다. 태풍이 주는 엄청난 에너지와 절벽 지형이 주는 조화는 정말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평온한 날에도 아름다운 물색과 파도 해변의 장대함을 통해 그 정도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고 무엇보다 체험가능하다. 바다 중간에서 바라본 풍경은 정말 이 정도면 대충 천국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해질 무렵 발레니스에서 마를린까지 걸어갔다. 중간에 호텔 해변이 많았는데 결국은 다 이어져 있었다. 칸쿤 마지막날 석양을 보며 해변을 떠났다. 천국도 지겨워 지는게 인간 아니겠는가
그날 너무 열심히 물놀이를 하고 코코봉고까지 다녀왔더니, 그리고 오늘 툴룸 오는 버스에서 더위를 먹었더니 약간 몸살기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