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리카 라 포르투나
관광을 하기로 작정한 도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소도시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투어 가이드의 손에 달러를 쥐어주고 이끌려 다니거나 겨우 숨통을 틔어놓은 대중교통을 타고 정해진 시간에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와야 한다.
처음 도착한 코스타리카의 소도시 라포르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라포르투나는. 68년 화산 폭발에도 살아남아 마을이름자체를 fortune으로 바꾼 도시이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흘러내리는 용암을 안전하게 볼 수 있는 곳이었는데 최근에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수많은 투어상품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지만 은총은 멈추었고 많은 투어상품은 이를 가리기 위한 것으로도 보였다.
코스타리카는 군대 자체가 없고, 오래전부터 돈에 동물들이 그려져 있을 정도로 생태주의를 표방해 왔다 한다. 국토의 25프로가 국립공원이고 종 다양성도 굉장하다 했다.
하지만 처음 도착한 도시 라포르투나의 인상은 멕시코에 비하면 버스비를 제외하고는 물가가 너무 비쌌고(버스는 아주 싸다) 로컬 다운 로컬 음식점을 찾기도 너무 힘들었다. 대중교통도 아주 띄엄띄엄 있었다.
책이나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라포르투나의 포인트는 화산과 온천이었다. 론리에 따르면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3시쯤에는 돌아와야 하는 대중교통이 있었다. 하지만 칸쿤에서 파나마-보고타 항공권을 예약하느라 밤을 새우고(비바 콜럼비아 항공사의 결재는 수년 전 중국 항공사의 결재경험이 떠올랐다. 결국실패 스카이스캐너에 연계된 여행사서 예약) 멕시코의 격한 작별 세리머니를(출발 직전에 코스타리카 아웃 티켓을 요구해서 새벽에 진땀을 뺐고 큰 짐을 부쳐주면서도 탑승직전 갑자기 가방 사이즈를 재서 사람을 놀라게 만들었다. 땡큐 코파항공! 은 결재하지 않고도 컨펌 메일을 받을 수 있다.) 겪느라 진이 빠진 우리는 다른 게스트들이 모두 떠난 호스텔을 느지막이 나섰다.
자칫하면 백인 관광객을 위한 특색 없는 작은 타운에서 하루를 그냥 서성거릴 뻔했다. 그런데 숙소 건너편에 오토바이를 30달러에 렌트한다는 팻말을 보았다. 이거다 싶었다. 택시를 타도 왕복 20달러였고 돌아올 때도 염려스러울 것 같았다. 무엇보다 버스를 타고 들어오며 보았던, 너무 피곤한 가운데서도 인상적이었던 코스타리카의 산길들을 달려볼 자유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25달러에 12시간 협상도 했다.
첫날은 스쿠터를 타고 화산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화산으로 가는 길은 무척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창을 통하지 않고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행복했다. 하지만 국립공원 화산 입장료 15달러는 좀 별로였다. 그 정도 볼거리는 없을 거라 예상했는데 실제로 그랬다. 산 중턱에서 화산을 볼 수 있지만 대부분 구름에 가려있었다. 가려져 있지 않았다 해도 그것뿐이었다.
한산한 국립공원에서 길을 잘못 들었을 때 어느 스페인 여자분이 호수에 갈 수 있고 입장료가 15달러에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호수를 향한 길을 헤매고 헤매다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화산보다는 포르투나 까지 오던 그 버스길들에 마음이 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헤매다 산길을 거쳐 겨우 찾은 호수 산책로는 너무 평화롭고 훌륭했다. 호수와 화산 다양한 식생 들어본 적 없는 동물들의 울음소리 잘 닦아놓은 길 바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3층짜리 전망대. 편안했고 완벽했다. 사람도 없어 아무렇게 누워 해 질 녘 화산과 호수 건너편 산에 걸린 구름을 만끽했다. 15달러 ok. 생태로 돈을 번다 코스타리카는.
다음날도 규칙적으로 늦게 자서 늦게 일어났다. 온천만 가면 되는 날이다. 어제부터 이어진 약간의 짜증으로 조금 날을 새우다 30분을 더 자고 결국 같은 시간 다시 스쿠터를 빌렸다. 포루투나로 들어오던 버스길을 되돌아갔다. 예상대로 너무 아름다웠고 자유롭게 원하던 곳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이 나무늘보 그림의 큰 타월을 사려고 했는데 마지막 날이 휴일이라 사지를 못했다)
산 능선을 넘거나 오르락내리락하며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 마을들을 좋은 날씨에 보는 것이 참 좋았다. 인간이 자연에 적당히 참 잘 스며든 느낌이었다. 그렇게 달리며 코스타리카의 커피가 마시고 싶어 어느 마을에 스쿠터를 세웠다. 식당이라 다른 메뉴를 소개해 줬는데 배가 안 고프기도 했고 목적은 커피라 라떼와 그냥 커피를 주문했다.
1잔에 1달러 정도(500 콜론) 였는데 거대한 잔에 가득 채워주었다. 산지 커피답게 정말 훌륭했다. 그래서 예정에도 없는 식사를 시켰는데 론니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 casado라는(직역하면 기혼자) 그날의 메뉴가 있다고 했는데, 그곳이 까사도를 파는 식당이었다. 2500 콜론이니 4달러가 조금 넘었다. 둘이서 단 한 그릇을 시켰는데 많은 양의 음식이 나왔는데 맛이 훌륭했다. 동네 식당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밥을 먹고 있자니 기분이 참 좋았다.
밥을 먹고 좀 더 버스길을 거슬러 달려보기로 했다. 높은 곳으로 올랐고 바닥이 보이는 높은 철교를 건넜다. 차도 옆 사이드에 인도도 있었는데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 꽤 무서웠지만 무척 아름다웠다. 그렇게 철교를 왕복했더니 비가 무섭게 내리기 시작했다. 잠시 나무 아래에서 비를 긋다 다시 그 마을로 돌아가 비를 피하기로 했다.
비를 흠뻑 맞고 돌아갔더니 주인 할아버지와 아주머니가 환하게 반겼다. 코스타리카인들은 처음 보고 살갑게 구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그런 사람들은 사기꾼이겠지만) 다시 보았고 그들이 보고 맞고 있던 비를 맞았다는 점이 마음을 좀 열어주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간단한 얘기를 나누며 한참을 비를 피했다. 멕시코도 그렇고 이곳 사람들도 우산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다. 우기에 비가 자주 내리니 그냥 맞고 가거나 그냥 가게 앞에 느긋하게 비를 피하고 있었다. 꽤 오래 비가 내렸는데 동네 사람들 다 모여든 기분이었다. 같이 비를 피하고 커피를 마시다 보니 여행하는 기분이 절로 들었다. 그 순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로소 라포르투나라는 도시의 손길에서 조금은 풀려난 기분이었다.
cf 가게에서 커피를 내리던 양말 같은 기구도 궁금해 물어 동네 마트에서 구입했다. 1달러 정도고 빨아 쓴다고 한다.ㅎㅎ 동네 마트에는 2달러 정도에 향이 풍부한 코스타리카 커피가 매대를 가득 채웠다.
생각해 보니 코스타리카도 교통비 야채값이 커피값이 싸고 레스토랑이 비쌌다. 쿠바처럼. 코스타리카도 복지가 꽤 잘되는 나라로 알고 보니 묘했다. 사람들이 장사를 지나치게 하지는 않았고, 지나치게 친절하지도 않았다. 생수는 꽤 비싸지만 수돗물을 먹을 수 있었다. atm수수료가 없는 곳이 많았다. 희미하게나마 공공의 것이라는 지향을 느낄 수 있을 것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