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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 Jul 02. 2023

라틴 아메리카 뮤지엄에서

아주 가끔 위대한 그림들이 있다. 프리다칼로의 이 그림도 그중 하나. 유리에 비치는 것이 싫어 그림을 정면에서 잘 찍지 않는데 이상하게 내 몸이 정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끌려 들어가 가만히 보니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그림 속의 존재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물은 그렇다 치더라도 새도 원숭이마저도 확실히 흘깃 거리는 것은 의미 심장하다.



저 인물은 어떠한가. 아름다운가? 아마 나는 아닐 것이다. 중남미 혼혈의 남자가 여자처럼 꾸미고 있다. 하지만 뼈대와 골격을 깎지 않아 남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의 피부색 같은 황토색 땅과 우림들은 익숙한 회화의 배경이 아니다. 우리가 익히 아름답다 느끼는 모든 것에서 이 그림은 벗어나 있다.


인상주의의 강렬함과 탁월함은 이후 세대가 그 표현을 넘어서기 무던히도 힘들게 만들었다. 프랑스 미술관에서는 피카소에 가서야 드디어 극복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티즈도 좀 그렇고. 뉴욕 메트로 폴리탄에서는 그러다 남미 미술이 나오자 달랐다. 탈식민적 인상 추상회화 그런 느낌이랄까?


그러다 프리다칼로의 저 그림을 보았는데 굉장했다. 우리의 아름다움이 전제하고 있는 수많은 식민적 규율들을 단번에 저 깊은 곳까지 들켜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건 현대미술이 던지는 것 같은 농담이 아니다. 그야말로 정면돌파. 냉철하면서도 결기가 있으며 명확히 저항하고 있다. 바라보고 있는 우리를 내면을 향해서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관적이다. 내 후진 설명으로 잡히지 않은. 그게 있었다.


조형설치 미술은 형체와 물질성이 있어서 웬만하면 꽤 느낌이 있다. 그런데 이 물체는 재미있었다. 처음에 뭔가 이상했는데 자세히 보니 금속은 나무에 그저 걸쳐져 있었다. 어디의. 홈에도 꽉 끼여있지 않고 닿아 같이 한 물체인 것처럼만 보인다. 다른 것 사이의 관계에 대한 느낌을 상기하게 한다.



그러고 보니 이 회화도 남미의 것인데. 천팔백 년도 후반에 왜 쌍팔년도 고전적 그림이 그려져 있나 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배경은 동시대의 것이다. 동시대의 배경에 고전적 여성을 알고 보면 오브제처럼 그려 넣은 것이다. 아주 현대적인 재미있는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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