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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 Jun 19. 2023

이토록 아름답고, 힘겨운, 볼리비아 시작

볼리비아, 태양의 섬

쿠스코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볼리비아 이슬라 델 솔에(태양의 섬) 들어왔다. 쿠스코에서 볼리비아로 넘어오는 코스는 쿠스코에서 티티카카 호수(3850미터 이상에 위치해 있는 거대한 호수)의 페루 인접도시 푸노를 거쳐(대략 7시간) 티티카카 볼리비아 지역인 코파카바나로 오는 여정을(+3시간) 거친다. 좀도둑이 많다는 쿠스코 푸노 구간이었고(수화물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문구와 탑승객의 비디오를 찍는 것이 꽤나 분실이 많은 구간이겠구나 싶었다) 좋은 좌석인 카마가(cama) 없어 탄 세미 카마였지만 별일은 없었고 상당히 편안한 여정이었다. 페루의 버스는 정말 숙면을 취하기에 상당히 좋은 좌석을 갖추고 있다. 아마 장거리 버스가 많고 버스회사가 많아 경쟁이 심했기 때문인 것 같다. 단 버스만. 한국의 치킨집처럼.


예상보다 훨씬 쉽게 볼리비아 국경을 넘었고(비자를 미리 받아왔기 때문이다) 호수가 인접한 코파카바나로 도착했다. 우리는 괴기스럽게 변했다는 페루지역 티티카카를(우로스섬) 스킵하고 코파카바나에서 바로 이슬라 델 솔로 들어가기로 했다. 론리에 따르면 볼리비아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거라고도 했다. 론리는 배낭여행을 하기에 참 좋은 책이지만 그들의 추천을 그다지 믿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정보를 통해서도 충분히 아름다울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코파카바나에 11시 30분쯤 도착해서 이슬라 델 솔로 향한 마지막 배시간 1시 30분까지 넉넉하게 남지 않았기에 많은 곳을 둘러볼 수는 없었기에 밥을 먹고 바로 섬으로 들어가는 배편을 구하게 되었다. 섬으로 들어가기 전에 선착장 앞, 바닷가 같은 호숫가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어처구니없는 가격과 맛에 살짝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야간버스를 타서 피곤하고 배가 고팠고 무엇보다 모바일기기의 충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식당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어디에나 비싼 가격과 맛없는 음식이 준비되어 있지만, 최소한의 맛조차도 느낄 수 없었다. 최소한의 자본주의적 서비스 정신이 없는 것인지 그에 더해 풍부하지 못한 식재료의 영향인지 잠깐 생각해 보게 되었다. 스테이크를 하나 시켜 먹게 되었는데 대략 50 볼(한화 8500원가량) 무미건조한 맛이 페루의 최고의 관광지 아구아스 깔리엔테의 시장에서 먹었던 오늘의 메뉴(8 솔 2800원) 보다 너무 맛도 없고 부실한 맛이었다. 볼리비아의 물가가 훨씬 더 싼데도 말이다. 고기가 거의 종잇장이었다.



짧게 들렸지만 선착장에서 느낀 분위기는 세계적인 여행지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흥청 되는 느낌이 없었다. 배편을 팔 기 위한 호객도 레스토랑의 호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개발이 충분히 되지 않았거나 흥청거릴 만큼의 충분한 물질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다. 페루에 비해 아직 각종 입장료가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 배편을 사고 그곳에 가방을 맡기고 주변을 좀 둘러보았다. 오래된 목 좋은 식당을 벗어나니 여행자들을 위한 거리가 있었고(그곳이 조금 더 싸고 괜찮아 보였다.) 버스가 모여있는 광장을 좀 더 벗어나니 조금씩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가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심을 사려고 전화방 같은 가게에 들렀는데 갤럭시 j2 같은 모델들이 꽤 고급으로 팔리고 있었다. 유심은 대략 25 볼에(한화 4000원. 유심비를 빼면 10 볼에 1기가) 1기가 정도에 팔리고 있었는데 처음 권한 유심이 폰에 맞지 않았고 시간이 없어 유심 없이 급하게 배를 타야만 했다. 생각해 보면 여기서부터 조금 꼬이기 시작한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배를 타고 들어온 여정이 세 번째였는데 칸쿤 이슬라 무헤레스를 가는 길에 비하면 들어오는 물길자체는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섬에 들어오기 직전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설산을 보며 아름다운 섬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섬에 들어오자마자 입장료를 냈고, 숙소를 구하려면 눈앞에 보이는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10kg 이상의 배낭을 메고 고산지대의 매우 가파른 길을 150미터 이상 올라야 했기에 길을 오르기 전에 배낭을 정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10살 내외의 어린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에 올라가면 las cabanas라는 숙소가 있는데 일인당 80, 두 명 160이라고 했다. 론리에서 보았던 숙소였고 론리에 적혀있는 가격과 같았기에 잠시 같이 가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경험상 같이 가면, 그것도 가파른 언덕을 도움을 받아가면 거절하기가 힘들어지기에 그냥 도움이 필요가 없다고 얘기하고 알아서 가기로 했다. 가파른 언덕길을 가뿐 숨을 내쉬며 올라갔다. 중간중간 자주 쉬며 감자튀김을 사 먹으며 주변사람들과 가벼운 담소를 나누기도 했지만 언덕을 오르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las cabanas가 나왔고 여기서 대충 협상해서 묵기로 생각했다. 하지만 힘든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숙소로 향했다. 언덕에 위치한 숙소는 전망이 굉장했고 건물은 낡고 허름했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숙소주인을 여러 번 부르고 있었는데 위에서 주인이 나타났다. 가격을 물어보니 1인당 60에 프라이빗 욕실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방은 눈앞에 보이는 3개의 방 모두가 가능하다고 했다. 와이파이도 가능하고 조식도 포함이었다. 아까 어린 청년의 가격보다 훨씬 낮았다. 여행을 다니다 보니 조금 닳아 버려 협상을 해야 하는 곳에서는 최소한의 협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2일을 묵을 예정이었기에 2일에 200에 가능하냐고 물었다. 주인은 흔쾌히 ok를 했다. 그래서 어느 방이 좋냐고 물어서 두 방중에 좀 더 전망이 좋고 넓었던 방을 선택했다. 그런데 그 방은 세 명이 사용하는 방이라고 하며 옆방을 쓰라고 했다. 잠시 마음이 걸렸지만 옆방도 충분히 전망 좋고 방 상태도 괜찮았기에 쓰기로 했다. 협상내용을 확인하고 따뜻한 물 사용법을 배웠고 숙박부에 이름을 썼다. 배가 고파 점심을 먹기 위해 나가는 길에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었다. 아주머니는 와이파이를 쓰려면 개인당 5씩 더 내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210에 이틀이면(이틀에 35000원가량 된 것이다.) 가격은 여전히 괜찮았지만 자꾸 무언가가 바뀌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방으로 다시 돌아온 l은 쿠바 트리니다드 숙소 주인이 (갑자기 다음날 떠난다는 우리에게 조식을 주지 않겠다고 했던)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런 느낌이 있었다. 자꾸 말이 바뀌고 말과 행동에서 느껴지는 자기중심적인 느낌이 그러했던 것이었다. 망설이고 있는 l을 보면 그 정도로 찝찔하다면 방을 바꾸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짐을 다시 매고 나서며 숙소주인에게 처음이랑 너무 이야기가 다르다고 얘기하며 나가려 했다. 그러자 숙소 주인은 처음처럼 와이파이 비용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찝집함을 가지는 것보다는 그냥 숙소를 바꾸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서부터가 고난의 시작이었다.


다른 숙소를 알아보기 위해 언덕을 오르고 또 올랐다. 적당한 높이의 숙소들은 이미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숙소를 가더라도 낡은 건물 베란다에서 보이는 호수와 설산의 전망은 끝내주었다. 여기는 그런 곳이었다. 한 숙소의 한 꼬마애가 자신의 집은 모두 예약이 되었지만 다른 숙소를 추천해 주었다. 인당 50에 시설도 좋다며 브로셔를 보여주었다. 그러며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알아서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곳을 찾아갔더니 그 숙소는 아주 좋은 숙소였는데 시설답게 하룻밤에 300 하는 숙소였다. 좀 허무했지만 어쩔 수 없이 숙소를 나왔다. 그런데 그 앞에 있던 알파카를 한 마리 데리고 있던 꼬마애가 우리를 안내하겠다고 나서는 것이었다. 아마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숙소주인들에게 조금이나마 용돈을 받는 것이 아닌가 짐작하기 시작했다. 처음 우리를 소개했던 친구의 경우 가격차를 보면(인당 80에서 60) 커미션을 받는 것이 분명했다. 처음부터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집으로 향하는 길인 것처럼 보였고, 딱히 거절을 할만한 무언가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그 꼬마는 우리를 따라나섰다. 몇몇 숙소는 가격이 높았고 몇몇 숙소는 남은 방이 없었고 우리는 점점 더 산꼭대기로 올라가고 있었다. 5-6개 이상의 숙소를 거치고 나자 힘겨워졌고 계속 붙어있고 괜히 따라다니는 꼬마애가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꼬마애에게 ‘지금까지 고마웠는데 너의 도움은 필요 없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꼬마애가 동전을 달라고 했는데 나는 주지 않았다.


아마 그때부터 내 멘탈이 좀 터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주고도 싶었고 주지 않아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주었어도 멘탈이 터졌을 것이고 주지 않았어도 지금처럼 멘탈은 터졌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많은 아이들이 그 꼬마처럼 행동하고 있었고 나는 그게 좀 싫기도 했다. 그렇다고 어린이는 순수해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어려운 경제 환경일수록 어릴 때부터 경제활동을 하고 그게 사람을 어른스럽게도 한다. 나보다 윗세 대들은 분명 농사일을 돕거나 했을 것이고 지금의 고등학생보다 훨씬 어른스러웠기도 했다고 한다. 그냥 줬어야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또 그런 식으로 아이들이 길들여지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여행을 하다 보면 전통복장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직업으로서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그 사람과 같이 사진을 찍고 싶지는 않았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어린 알파카와 사진을 찍고 관광객에게 돈을 받는 것도 있었는데 나는 끼고 싶지 않았다.(아마 부모가 내보낸 것일 것이고, 아이는 분명 수줍어하고 있었다.) 내가 더 넉넉하게 여행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 돈이 그 집안과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을 돈을 지불하면서 까지 사진을 남기고 싶은 그 욕망은 내 취향은 아니었다. 삶을 구경하러 여행을 온 것이지만 구경거리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하여간 멘탈은 터져버렸고 그래서 정상 근처에서 보았던 괜찮았던 두 개의 숙소를 놓쳐버렸다. 하나는 1인당 40이었던 숙소는 방 상태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내가 보기에 운영하는 두 명의 어린 여자분들이 활달하고 뭐든 해 주려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내가 믿을 것은 짧은 시간에 보는 행동, 관상뿐이었고 사람도 꽤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조식과 무엇보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다는 말에 l이 망설였다. 나는 그게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유심이 없었기여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숙소 주인이 이틀에 120까지 말했는데도 말이다. 그러고 다음집은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집이었다. 방상태도 훌륭했고 와이파이도 조식도 가능했다. 하루에 두 명 150이었다. 조금 비싼 편이었다. 꽤 괜찮은 조건이었고 감당하지 못할 가격도 절대 아니었다.(150 볼은 25500원) 그런데 그때 나는 왠지 마음이 꼬여있었다. 하루종일 고생해서 결국은 인내심이 없어 산 꼭대기에서 비싼 방을 구하게 되나 그런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망설인 끝에 그 집을 패스했다.


그러다 정말 산 정상에서 인당 30을 부르는 숙소를 보았다. 방 상태는 조금 좋지 못했지만 와이파이는 훌륭했고 전망은 정말 훌륭했다. 화장실은 별로였고 샤워시설도 잘 갖춰져있지 않았는데 전망과 와이파이가 괜찮아 다른 것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던 것이다. 서로 지쳐 있었고 해도 저물고 있어 그 방을 고르기로 했다. 와이파이는 정말 꽤 괜찮게 터졌다. 그래서 방을 치울 때까지 보이스톡을 하며 훌륭한 전망을 즐기고 있었다. 아궁이를 피우고 물을 끓이는 모습에 행복회로를 돌리며 제대로 된 민박집에 왔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치워진 방으로 짐을 옮겼다. 그런데 충전을 하려고 했는데, 방에 콘센트가 없었던 것이다. 솔직히 좀 당황했다. 이슬라 델 솔이 섬이고 낙후한 곳은 물을 길어와야 해서 욕실 상태가 좋지 않은 곳이 많다는 블로그들을 보았지만 콘센트가 없다는 것은 상상을 하지 못했다. 어이가 없어 웃었지만 집주인이 기분 나쁠까 봐 조심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충전을 할 수 없다고 콘센트가 없다고. 그러자 주인은 방을 옆방과 바꾸라고 했다. 그래서 그러겠다고 했다. 그런데 옆방에는 방이 치워져 있지 않았기에 방을 좀 치워달라고 했다. 그러자 귀찮았는지 원래 쓰던 방에서 쓰고 옆방에서 충전을 하라고 했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좀 터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말도 통하지 않는 여행객이 약자인 것을. 행복회로를 다시 돌려 우리가 두 방을 모두 사용하는 셈이라고, 아마 산 밑이라 다른 손님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위로했지만 그때부터 약간 찝집해지기 시작했다.


배도 고파 해질 무렵 지도에 피자렐리아 있다는 숙소 근처의 산 꼭대기에 올랐는데(이슬라 델 솔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4070m가량) 무척 아름다웠다. 지금까지 여행을 하며 보았던 풍경 중에 손에 꼽을 만했다. 하지만 배가 고팠다. 그런데 이 지역은 아무리 생각해도 슈퍼도 싼 음식점도 없을 것 같아 염려가 되었다. 숙소는 싼 곳을 구했지만 숙소마다 하나씩 있는 레스토랑들은 보지 않아도 창렬일 것이 분명해 보였다. 여행을 하며 미리 세부적인 준비를 하지 않아도 숙소주인들에게 많은 것을 묻고 좋은 장소들을 추천받으며 여행할 수 있었지만 물을 환경이 되지 않았다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우선 작은 슈퍼에서 생존 물품을 구해야만 했다. 우선 지금까지 쿠스코 시장에서 사 온 8개에 1 솔(350원가량, 꽤 맛이 괜찮았다) 짜리 빵과 0.4 솔짜리 햄버거빵 두 개, 초코칩 따위가 남아 았었다. 보급이 필요했다. 부엌을 쓸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미 어두워진 거리를 걸어 작은 구멍가게를 두 개를 발견했다. 물건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비닐에 든 작은 초코우유 과자 딸기잼 요구르트 등을 살 수 있었다. 물건을 사며 가게를 보고 있던 청년분에게 여기에 싸고 괜찮은 먹을 곳이 없냐고 물었는데, (레스토랑이라 하지 않았다.) 인상이 괜찮았던 그 청년과 친구는 가까운 곳에 한 곳이 있다고 했다. 음식가격이 20-30 정도하고 맛도 괜찮다고 했다. 괜찮은 가격이었고 망설임 없는 추천에 그곳을 찾아 나섰다. 멀지 않았고 어둠 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마르카 사타(Marka Sata) 개강추.



가게 안을 들어가 보니 동네에 있던 외국인 손님들이 모두 모여있는 것 같았다. 저렴하고 괜찮은 음식점으로 알음알음 온 것 같았다. 카드 게임을 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고 동네가 깜깜했던 것에 비해 유독 그 가게만 활기가 있었다. 바로 이곳이다 싶었다. 피자를 만들기 위한 미니 화덕도 있어 훈훈했고,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꼬마가 서빙에 주문을 맡았고 아버지와 누나들이 피자를 굽고 음식을 만들었다. 메뉴판을 보는데도 작은 피자가 30 정도였고(미디엄 40 그란데 50) 파스타가 25. 우리는 다른 때와는 달리 생선요리 하나와 피자를 시켜 먹었다. 숙소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잘 먹는 것으로 해소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생선요리가(trucha) 상당히 훌륭했고 피자도 나는 도우가 조금 아쉬웠지만 l은 상당히 맛있다고 했다.(다음날 다시 먹어보니 도우도 훌륭했다. 처음은 급하게 구운 것 같았다. 샌드위치류는 10-15 볼 정도 내외의 가격이었는데 다음날 먹어보니 꽤 괜찮았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가 쉬기로 했다. 밤이 되자 날이 추워졌다. 그런데 하늘을 쳐다보니 지금까지 본 하늘 중에 가장 아름다운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이렇게 많은 별을 본 적도 없었고, 하늘에 하얗게 별을 흩뿌려 놓은 듯한 은하수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었는데 너무 아름다웠다. 고지대 공해 없는 섬, 가로등이 없는 섬 산기슭이다 보니 별을 보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하지만 추웠기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로 들어가자마자 노크소리가 들렸다. 숙소 주인이 옆방에 다른 손님이 왔다고 전기 충전과 와이파이를 자신들이 운영하고 있는 레스토랑에서 쓰라고 하는 것이었다. 좀 황당했다. 그래서 항의했다. 분명히 우리는 방을 바꿔달라고 이야기했다고. 하지만 그는 그냥 그렇게 하라고만 했다. 솔직히 이때부터 분통이 터지기 시작했다. 와이파이를 쓸 수 있었지만 충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분이 많이 나빠졌는데 그래도 우선 충전부터 하자고 했다. 레스토랑이 닫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 갔더니 한 무리의 동양계 영국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 구석 콘센트에 두 개의 핸드폰을 충전하며 내 태블릿으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아저씨와 청년에게 여기 언제 닫냐고만 물었다. 1시간 정도 더 가능하다고 그랬다. 아마 그 손님들이 밥을 먹는 시간까지 일 것이다. 우리는 1시간 정도 더 전기를 배급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쁜 상황에서도 수습은 해야 하니까 완전히 열받은 상태에서도 조용히 충전하며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들어오더니 나를 야리고 있다고 l이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나는 열이 받은 김에 말했다. 문제가 있냐고?


아주머니는 모바일을 세 개나 쓰는 것은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폰도 태블릿도 내거고 와이파이는 당신 거지만 나는 와이파이는 쓰지 않고 그저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하여간 아주머니는 화를 내고 나갔다. 정말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와이파이가 잘 된다고 방안에서도 잘 접속이 된다고 해서 이곳에 온 것인데 그것을 여러 대 쓴다고 뭐라고 하다니. 내가 생각하기에 우선은 자신들이 잘못한 부분을 모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하게 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옆에 오래간만에 단체 손님이 있는데 분위기가 나빠지거나 나쁜 말을 할까 신경 쓰이는 것 같기도 했다. 대부분의 숙소에 연계된 불 꺼진 레스토랑들은 한 탕 장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열이 받았다. 방 안에서 모바일을 몇 대 쓰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방에서 쓰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당신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쓰라고 해 놓고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은 정말 기본적인 개념이 없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정말 열받았지만 이 밤에 방을 나올 수는 없었기 때문에 꾹 참고 충전을 했고 태블릿으로 글을 쓰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40여분이 지나 단체 손님이 그 레스토랑을 나올 때 시빗거리를 없애기 위해 같이 나오기로 했다. 그리고 내일 바로 숙소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도대체 이 사람들이 어떻게 나올지가 예상이 되지 않아 열이 받으면서도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방에서는 잘 되던 와이파이를 끊어 놓았는지 접속이 되지 않았다. 절로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의 심리과정은 그렇지 않았을까? 우리가 첫 손님일 때는 우리를 받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다 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전원이 되지 않았고 대충 처리하려 했지만 예상외로 다른 손님이 왔다. 우리에게 내건 조건이 성가셔지기 시작했다. 대충 뭉개고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주었다. 그것이 레스토랑. 하지만 다른 손님에게도 마음이 쓰이고 자신의 잘못들이 살짝 신경도 쓰인다. 그 정신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잘못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그것이 모바일을 여러 대 쓴다거나, 전기를 여러 대 충전한다거나 하는 것일 것이다. 다음날 보니 어떤 레스토랑에서는 와이파이를 1시간에 10 볼정도에 팔고 있기도 했다. 그것을 기준으로 인당 30에 와이파이를 여러 대 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우리를 매너 없는 손님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자신이 와이파이를 방에서도 쓸 수 있다고 이야기한 것은 이미 과거의 것, 잊어야 하는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더 이상 머리에 떠올리지도 않는다.


이런 적반하장 혹은 정신적 모순 해결책은 꽤 보편적인 인간의 심리이기도 할 것이다. 변절한 사람들이 이전의 자신이 속한 진영을 더 철저히 공격하는 것과 같은 것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날 하루 만에 방을 나가며 돈을 젊은 아들에게 주고 싶었다. 확률적으로 나이 든 사람들이 타인의 입장에 서는 연습이 되지 않고 오랫동안 자기중심적이 되었을 때, 더 무례해질 수 있다고 본다. 자기중심적으로 윤리적 판단을 되물려온 시간이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역싸움처럼 세상을 살아온 시간도 길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밤에 잠들기 전에 짐을 모두 싸 두었고, 체크아웃 시간에 시비를 털리지 않기 위해 8시 무렵으로 알람을 맞춰 두었다. 가장 나쁜 경우 모함이라든지 이틀 있기로 하고 왜 하루 만에 가냐고 하는 것 등의 최악의 경우 어떻게 대처할지도 생각은 해 두었다. 하지만 딱히 답도 없었다. 밤에는 바람이 강하게 불었고 엉성하게 지어진 건물 문틈 사이로 바람이 찼다. 안쪽으로 열쇠를 걸어두고 일찌감치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는 길에 그들 가족을 보았는데 나는 ‘올라’라고 인사했고 그들 역시 대답했지만 표정이 좋지 못했다. l 역시 화장실을 다녀왔고 우리는 나가기로 했다. 나가는 순간 아무도 없었고, 사람을 찾으니 다행히 젊은 아들이 있었다. 나는 ‘두 명 60’이라 말하고 돈을 주었고 그는 아무 말 없이 받았다. 내키지 않았지만 ‘그라시아스’라고 말하고 나왔다. 좁은 곳이었고 너무 큰 원한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섬이라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가난한 나라의 상황 같기도 했다. 타인의 입장에 서는 연습, 혹은 그런 서비스정신은 물질적 혜택과 상관없는 것은 아니기도 할 것이다. 내가 그 순간 그게 알 게 뭐야 싶으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른 아침 무거운 가방을 들고 아침을 먹기 위해 어제저녁을 먹었던 마르카사 타를 향했다. 다행히 문을 열어 두었고, l은 큰 빵 2, 생과일 주스, 계란, 커피나 마테차 아침 메뉴를(25 볼) 나는 닭햄버거와 생과일 주스(합쳐 26)를 주문했다. 다시 방문해서 그런지 어린 종업원은 미세하지만 조금 아는 체를 했다. 닭햄버거가 상당히 맛있었고, 생과일 오렌지 주스는 상당히 좋았다. 그렇게 아침을 먹으면서도 자책하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내가 지나치게 협상한 것은 아니었을까? 혹은 그 사람들 나름의 인터넷에 대한 가치가 다른 것은 아니었을까? 그들에게 전기는 귀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 모든 질문들은 결국 기각될 만한 다른 그들의 행동을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변 환경을 변화시킬 수 없을 때 인간이 하는 행동은 대부분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게 된다. 그것이 유일하게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 누적이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럴 때 인간에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 여러 유사한 사례들이 떠올랐다. 다행히도 나는 마음이 약해졌지만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


좋은 아침은 그래도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이 섬을 빠져나가는 배편을 물어 알아두기도 했다. 일단 퇴로는 확보가 되었다. 그리고 숙소를 찾아 나섰다. 이른 시간이라 문이 많이들 닫혀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하루에 두 번 들어오는 배편에 맞춰 사람들이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체크아웃 시간도 딱히 없어 보였다. 대부분 그 시간에 맞춰 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어제 주인들이 발랄하게 일하던 숙소를 찾았고, 방이 있어 하루에 80에 아침 일찍부터 쓸 수 있게 되었다. 방과 침대는 깨끗했고 개인용 욕실의 뜨거운 물은 잘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콘센트가 여러 곳에 있었고 주인들은 그래도 뭔가 해주려고 노력했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것은 별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깨끗한 방에서 우선 한숨 돌리고 푹 쉬었다. 하루 만에 mas 20으로 정상적인 숙소에서 너무 큰 행복을 느꼈다.


나는 섬 북부에 트래킹을 가고 싶었다. 여기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머무르는 섬 남부의 유마니라는 곳. map.me를 찍어보니 2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아주 먼 거리는 아니었고 걸어보면 분명히 매우 아름다울 것 같았다. 섬 전체를 볼 수 있는 좋은 루트였고 이미 정상에 있었기 때문에 굴곡은 있겠지만 어려운 루트는 아닐 것 같았다. l이 잠들어 있는 사이 숙소 주인에게 배편을 체크할 겸 해서 이것저것 물었는데 그녀들은 그곳에 걸어서는 갈 수 없다고 했다. 이유를 말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어 번역기를 가져왔다.


strike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분은 revando rojo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들은 걸어 갈 수 있는데 나는 안된다고 했다. 아! 그건 위험하다는 뜻인가? 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나는 다시 대부분 위험한 곳은 밤에만 그런데 이곳은 낮도 그런가? 라고 물었다. 그녀는 하루종일 위험하다고 했다. 숙소 주인이 이렇게 단호하게 위험하다고 한 것은 보고타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리고 섬을 삼등분 하더니 남부의 유마니 지역 남쪽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위험하다고 그랬다. 작은 섬이었지만 작지만은 않은 섬이었던 것이다.


이정도 이야기 한다면 우선은 여러 일행이 있지 않은 이상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고 남쪽의 (Pilko Kaina)유적지를 가기로 했다. 설산이 보이는 쪽 반대쪽으로 길을 잡아 가는 길은 무척 아름다웠다. 아무도 없는 길에 가끔 보이는 알파카나 노쇠 같은 동물들이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 때는 사람을 보지 않는 것이 좋았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곳에서 사람들과 우여곡절을 겪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유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작은 꼬마아이가 알파카 한 마리를 몰고 있는 것을 멀리서 보게 되었다. 혹시나 어제 그 아이가 아닐까? 비슷한 키와 옷 색, 알파카가 눈에 띄었다. 걸어서 40분은 온 거리인데 아닐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옆에 다른 더 어린 여자아이도 하나 더 있었다.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그 아이였다. 인사를 하고 아이에게 1볼을 주었다. 아이는 l이 마시고 있던 쿠스코에서 사온 복숭아 쥬스를 달라고 했다. 주었다. 아마 그 아이에게 1볼은 복숭아 주스 같은 군것질을 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짐작할 뿐이고 내가 알 길은 없다. 옆의 여자 아이는 친구인지 가족인지 물었더니 자신이 언니라고 했다. 길을 내려가려다 왠지 모르지만 갑자기 이 아이와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돈을 주고 아이와 사진을 찍게 되었다.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다른 아이는 유적지 화장실 사용료를 받으며 돌을 주었다. 아마 티켓인 것 같았다. 볼리비아에는 아이들이 눈에 띄게 여기저기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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