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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 Jul 04. 2023

부에노스 아이레스 2일째


오늘은 l이 한국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어제는 100일이 넘는 긴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 꽤 괜찮은 호텔에 하루를 묵었다. 아마 여행 중 묵었던 숙소 중에 가장 괜찮았던 숙소였지만 가장 비싸지는 않았다. (1위는 샌프란시스코. 제일 싼 곳을 골랐는데도 말이다) 여행에서 만난 현지인 친구가 추천한 지역을 골랐는데 이곳은 마치 유럽 같았다. 적당히 높으면서도 고풍스러운 건물뿐만 아니라 다인종화 되어가는 유럽보다 훨씬 백인 비중이 높았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힘주어 꾸미고 다녔다. 우리는 충분히 지불할 수 있었지만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지금 페루에서 산 싸구려 잠바와 수크레에서 엉덩이를 기운(볼리비아 아저씨가 감쪽같이 잘 기웠다) 바지를 입고 다니고 있다. 마치 영화 속의 파리나 뉴욕 같다고 해야 할까? 현실의 파리나 뉴욕은 그렇지 않았다. 가까스로 가 보았으니 하는 말이다. 하지만 우유니에서 이과수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급하게 오느라 너무 많은 버스를 타서 피곤했기에 조금 걷기는 했지만 숙소에서 씻고 먹고 자고 쉬었다. 비싼 동네였지만 동네 베이커리의 엠빠나다와 계란 샌드위치는 싸고 맛있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짐을 싸고 체크아웃 이후 예약해 둔 호스텔에 내 짐을 옮겨두고 공항으로 향하기로 했다.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레콜레타 지역에 잡은 호스텔은 꽤나 고풍스러운 호스텔이었다. 돔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열쇠가 아주 오래된 유럽도시의 그것 같았다. 8인 돔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휴식을 취해야 하는 나에게는 꽤나 괜찮은 곳이었다. (아무도 없는 돔 바닥에 앉아 글을 쓰는 지금의 기분도 꽤 괜찮다.) 하지만 l 없이 혼자 여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좀 막막하기도 했다. 방향감각이 좋았던 l이 길을 찾아왔었고 사람들과 어울릴 때도 나보다 영어를 잘해서, 특히 잘 듣고, 때로는 눈치 빨로 잘 알아듣는 l덕분에 어려운 영어가 나와도 사교생활에 큰 문제는 없었다.

 

 좀 더 있고 싶다고 고집을 부린 것은 나인데 갑자기 꽤나 막막했다. 그리고 적반하장으로 섭섭했다. 그리고 공항에서는 돌아가는 l이 부럽기까지 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피곤하기도 했고 언제나처럼 대도시에서의 첫째 날 둘째 날은 낯이 설고 두렵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아마 대중교통에 대한 이해나 도시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부에노스 아이레스 첫날에 새똥테러를 당한 것도 조심스러운 것을 더했던 것 같다. 아마 오랫동안 별일 없었기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첫날 좀 방심했던 것이 티가 났던 모양이었다. 아침부터 선글라스도 끼고 레티로 터미널 밖에서 거리를 헤매고 있었는데 갑자기 새똥 같은 것이 많이 묻었고 한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같은 무리였고 닦는 척하며 뭔가 훔치려 했지만 우리는 그 수법을 들어본 적 있어 경계했고 그들은 뭘 훔치진 못했다. 마침 한참 헤매던 우버가 도착해서 무사히 호텔로 향할 수 있었다. 그 우버는 자신이 도왔다며 팁을 달라고 했다. 그들이 뿌리고 간 물질은 똥은 아니었지만 식초냄새 같은 것이 심했다. 그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l의 비행기 시간은 저녁 8시 55분. 늦은 오후라 여유 있는 시간이었다. 공항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들었고 국경에서 만난 스테파니가 경고한 영향이 남았는지 치안에 대한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기에 여유 있는 시간에 공항으로 향하기로 했다. 아마 l은 늦은 시간에 다시 나를 돌려보내지 않게 하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호스텔 스탭이 공항버스를 타라고 했지만 우리는 언제나처럼 싼 8번 로컬 버스를 타고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제공항을 향하기로 했다. 60번 버스를 타고 코리엔테스 역 근처에서 내렸고 사람들에게 물어 우선 8번 버스가 존재하는지 확인했다. 블로그에서 본 정보였기에 바뀌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 버스는 있었고 근처에서 아사도를 하나 먹고 긴 비행을 위한 군것질거리와 기념품인 치킨스탁을 사서 8번 버스에 올랐다. (버스비는 sube카드가 필요하고 7페소(460원가량))


버스는 그냥 평범한 버스였다. 다행히 앞쪽에 마주 보는 자리가 있어 그곳에 앉았다. 8번 버스가 정차했던 정류장, 플라사 댈 콘그레소(plaza del congresso)에서부터 이미 부자 동네와는 다른 분위기였는데 밖을 보니 명동 같아 보이는 부분도 청계천 같아 보이는 거리도 보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었고 버스 창밖으로 재빠르게 도시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나는 노인분이 탈 때 두 번 정도 자리를 비켜주고 다시 앉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타는 그런 아르헨티나 버스의 기분이었다. 뭐 중간에 나이 든 노숙자 한분이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고 그가 든 지팡이에서 다소 지린내가 나긴 했지만 그의 눈빛은 천진했고 사람들도 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똘레랑스를 보여주었다. 뭐 그가 우리를 보고 계속 무슨 말을 하며 심하게 웃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했더라도, 아마 아주 원초적인 것으로 우리를 보고 웃었을 것이다, 그런 것은 별 상관은 없었다. 그는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시내를 벗어나면서부터였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 타기 시작했고 혼잡해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 혼잡했던 것은 쿠바에서 탔던 공항버스 이후 처음이었다. 생각해 보면 쿠바 공항행 로컬버스는 한 사람에 2-30원 정도에 탔던 기억이 있다. 20달러에 공항에서 들어와 20원으로 나갔던 쿠바버스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때 꽤 이쁜 집을 가지고 있고, 쿠바에서는 아이는 결혼과 상관없다고 얘기했으며, 드물게 고양이를(기억력이 나쁜데, 이 고양이 이름은 이상하게 기억난다. 로레나) 키웠던 까사주인아주머니는 로컬 버스를 탄다는 우리에게 미쳤다면 머리를 향해 손가락을 돌렸다. 갑자기 혼잡스러운 상황이 되자 그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공항을 향한 교통편이 다른 공항 편 교통수단과 현저하게 가격 차이가 났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타겠는가? 그리고 그 버스들은 대부분 공항 주변의 현지마을들을 순회공연하기 마련이다. 돈이 좀 있고 잘 사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로 혼잡한 그 버스를 타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만했다. 그 까사에서 우리는 하룻밤에 20달러가 넘게 지불했으니 말이다.


 그러는 사이에 돌아보니 인종구성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더 이상 이곳은 어제오늘 보았던 백인들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아니었다. 볼리비아나 페루 등지에서 보았던 현지인들이 많아졌고 버스분위기도 달라졌다. 마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핵심지역이 외곽 이민자들에 의해 포위당한 느낌이었다. 하여간 그 혼잡한 상황은 잠시 오르내리며 계속되었는데 바깥에는 빈민가처럼 보이는 지역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유딩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버스에 타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아이들이 타기 시작했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버스 안에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좌석 앞부분에 높은 짐칸 같은 곳이 있었는데 한 아이는 내 배낭이 놓여있던 그곳에 기어올라 누워버렸고 내 가방은 보이지도 않았다. 이후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 아이의 공간 침투 능력은 정말 탁월했던 것 같다. 그 사이 그 노숙자분은 여러 사람들에게 말도 걸고 자리를 비켜주기도 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려 했다. 하지만 다리가 불편했고 나이가 드셔서 결국은 늘 어딘가에 앉아가시긴 했다. 어떤 여자 아이는 노숙자가 자신의 팔을 만지자 싫다는 듯이 노숙자를 쳐다보기는 했지만 더 이상의 공격적인 표현을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노숙자분이 주는 물을 어떤 아이가 먹고 있어도 엄마는 그대로 두기도 했고 아이가 더 이상 싫은 티를 내지 못하게도 했던 것 같다. 하여간 처음 시작과는 달리 꽤나 혼잡하고 정신없는 버스가 되었다.


 그러다 2명의 여자분과 그 아이들이 버스에 탔는데 내 기억에는 족히 7명 이상은 되었던 것 같다. 한 아주머니가 반대편에 앉았고 아직 젖먹이 아이를 안고 있던 여자분이 내 주변에 서 있었던 같았다. 그런데 그런 아이와 엄마들이 그 버스 안에는 무척 많았다. 그러니 아이들이 엄마를 앞질러 마주 보는 좌석으로 침투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일어나야 하나 생각도 했지만 이 혼잡스러운 상황에서 들고 있는 것도 많았기에 가능하면 앉아있고 싶었다. 옆의 아저씨가 내가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을 때 모르는 척했지만 내 앞쪽 할머니가 양보하려 할 때 일어나기로 했다. 그러자 그 엄마와 함께 아이들이 우르르 그 자리로 몰려왔다. 그 백인 여성은 코에 장식을 하고 팔에 작은 문신도 있어(작은 문신이 디폴트값 같기는 했다) 한 때, 열심히 꾸미셨지 싶은데 지금은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나중에 말하기로는 자기 아이는 셋 뿐이라고 했다. 나머지는 친구분의 아이였든 듯. 한 남자아이가 여동생을 괴롭히기도 하고 엄마는 혼을 냈다. 어머니는 그 많은 아이들의 욕구를 이 좁은 버스에서 들어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아이들을 거칠게 다루기도 했다.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남미에는 가난한 지역들이 많았는데 늘 아이들은 많은 느낌이었다. 아마 한국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그것이 특히 경제적인 여건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어찌 보면 더 가난했던 내 윗세 대들은 아이들을 많이 낳아 길렀다. 좁은 버스여서 이기도 할 것이다.


l도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자리들은 모두 아이들로 채워졌다. 버스는 돌고 돌아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뒷자리아주머니에게 얼마나 더 가야 하냐고 물었는데 한 시간 이상을 더 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도 공항에 간다고 했다. 그 아주머니는 페루나 볼리비아 계로 보였는데 아이 둘과 앉아 있었다. 아주 부유하지는 않아도 꽤 깔끔하게 차려입고 약간의 여유는 있어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그런데 자기들끼리 놀던 아이들은 뒷자리 아주머니의 어린아이와 놀기 시작했다. 빨대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는데 역시 아이들이 빨리 친해지는 것 같았다. 가끔 엄마에게 한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보기에 좋았다. 결국 아이들이 지금처럼 우리들의 자리를 다 차지하고 나면 이렇게 친해지고 같이 놀면서 한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므흣해하고 있는데 백인 아이가 어린 뒷자리 아이를 좀 괴롭혀 엄마에게 혼이 나기도 했고 뒷자리 엄마도 조금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분쟁도 일어날 것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꾸역꾸역 버스는 달렸고 마침내 공항지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버스는 그래도 한산해졌지만 내가 앉았던 자리에 있던 아이들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자 버스 창 밖으로 비행기가 주기되어 있는 것이 보이자 나와 몇몇 여행객들은 드디어 도착했다는 탄식이 나왔다. 그런데 아이들이 하나같이 일어나서 우와 하며 신기해했다. 인종과 계층은 달라도 역시 똑같은 사람의 아이들이었다.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드디어 공항에 도착했고 아이들과 그 어머니들도 내렸고 우리도 내렸다. 비행기 타러 이곳에 왔나? 그 정도 여유는 있었던 건가? 나는 l을 배웅했고 공항에서 환전을 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시에스타처럼 칼 같이 문을 닫았다. l은 별일 없이 비행기를 탔고 나는 다시 공항 밖으로 나왔다. 어둠이 내렸고 나는 혼자가 되었고 약간 두렵기도 했다. 다시 8번 정류장으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이곳이 시내 쪽으로 가는 것이 맞냐고 물으려 했다. 그러다 ‘어’ 하고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그 아주머니와 아이들이 모두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소리를 내자 아주머니도 웃기 시작했다. 왜 웃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는 되었다. 긴 여행을 같이 했는데 떠나지 못하고 다시 그곳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가야 하고 그분들은 아마 좀 더 외곽으로 가는 다른 버스를 타야 하는 것 같았다. 공항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 그날 나는 8번을 타고 돌아오다 중간에서 지하철을 탔고 호스텔 직원은 친절하게 위험한 곳만 콕 찍어 주었다. 나머지는 새벽같이 걸어도 상관없다며.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멋있는 도시였고 나도 조금은 더 여기와 가까워진 것 같았다. 아주머니와 많은 아기들 a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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