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마흔 시간의 버스와 2박 3일의 비행을 잘 견디는 일과 여행하는 깃털처럼 가벼운 신분에서 벗어나는 정신적 적응만 하면 그만이다. 답지 않게 모든 예약은 두 번 세 번 확인해 두었고 음식도 충분히 만들어 두었다. 그저 차에 수동적으로 몸만 맡기면 그만이다. 다행히도 나는 비교적 긴 버스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다.
기상
푹 잘 잤다. 어젯밤은 이상하게 졸음이 몰려왔다. 전날 잠을 잘 못 잤지만, 돔 2층 침대는 좀 불편하다, 늘 그렇듯 모레노 빙하에서 그리고 돌아와서도 많이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와 빵과 소고기를 두 덩이를 사 와 늘 하던 데로, 하지만 고기를 듬뿍 넣어 샌드위치 네 덩이를 만들어 저장했고 스테이크를 만들어 빵과 함께 먹었다. 스파게티만 생략했더니 그리 편할 수가 없었다.
호스텔 주방은 아주 깨끗하고 좋았는데 레스토랑을 같이 운영해서 그런지 기름 소금등 소스가 전혀 없었고 그래서인지 묘하게 불편했다. 실제로 꽤 컸던 숙소의 규모와 투숙객에 비해 주방과 냉장고는 한산했다.
부러 6인돔을 신청했는데 묵게 해 준 아주 깔끔한 4인돔도 돔 안의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는 구조가 살짝 불편했다. 워낙 유명한 숙소이기도 하고 호텔식의 깔끔한 돔이다 보니 가족 여행이나 여름휴가를 온 사람들이 많아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돔의 비전문가들과 같은 공간을 쓰는 것은 좀 더 조심스러워져야 한다는 뜻이다. 뭐 아래쪽만 썼었다면 아주 편했을 것이다. 돔 바깥의 샤워실도 충분했으니까.
밥을 먹고 설탕과 소금 나는 볼리비아 쌀, 기름병, 시리얼 보관용 통을 버렸다. 임시로 비닐봉지에 모아두거나 작은 와인병, 프링글스 통에 지나지 않았는데 여러 번 망설인 것을 보면 애착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필요가 없어져 버리려니 미안하기도 했다. 소금과 설탕과 기름과 함께한 그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할 것이다. 길었던 여행 중 가사노동이 비로소 끝난 것이다. 전날은 설탕 대신 소금을 넣어 파스타를 버려야만 했다. 여행이 끝나간다는 것이 실감이 나서 멘탈을 좀 잡아줘야만 했다.
아침을 먹고 샤워를 하고 전날 정리한 짐을 가방에 넣고 침대 밑을 두 번 살폈다. 10시 체크아웃을 했고 널찍한 휴게 공간에서 버스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확실히 넓고 깔끔하게 잘 꾸며놓은 공간이었다. 경치도 좋았고 스탭들도 친절했다. 마지막 숙소라 그런지 사진도 안팎에서 찍었다. 그러고 보니 숙소이름이 America del sur. 여기를 떠나면 남미를 떠나게 되는 셈이다.
전날부터 모든 기기의 충전을 열심히 해 두었다. 긴 시간 충전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기기의 충전을 마쳤지만 아이폰은 99프로에서 나가야 했다.
엘칼라파테 - 리오갈레기오스
버스터미널에서도 충전을 했지만 99프로에서 다시 멈췄다. 호스텔에서 대기 타고 있을 때 같이 앉아있던 미국인 커플과 잠시 얘기했다. 모래 휴스턴을 경유한다 했더니 폭우 때문에 체크해봐야 할 거라고 했다. 캐나다인인데 미국 산다고 해서 상황 봐서 어디든 갈 수 있어 좋겠다고 했더니 유럽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5시간 가는 구간이었다. 이 버스만 타고 내리면 36시간짜리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엘찰튼에서 버스표를 샀는데 예약 당시 2층을 통틀어 아무런 예약도 없었지만 예약해 두었다. 2층은 세미 까마 아래는 까마였는데 40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까마를 선택했다. 경치충이었던 내가 1층을 선택한 것은 처음이었다. 화장실이 1층에 있기도 해서 고민을 했는데 5시간의 짧은(?) 구간이었지만 편하게 가고 싶었다. '노인처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노인부부 두 분이 타신 것이 1층 까마 승객의 다였다. 2층에서 두 분이 내려왔는데 나는 좀 쳐다봤는데 노인분들은 ok였다. 나는 내 좌석만 산 것이었는데 그때는 한산함까지 사고 싶었던 모양이다. 버스를 타자마자 잠들어 버렸다. 어제도 푹 잤는데 이런 것을 보니 나도 99프로였던 것 같다. 너무 비싸서 그렇지 좌석은 아르헨티나의 버스가 가장 훌륭했다. 좌석도 좀 더 낫고 무엇보다 온도가 섬세하고 환기시스템이 잘되어있다. 가성비라면 페루를 꼽고 싶다.
중간에 한번 정차를 했다. 미국인 커플이 버스를 갈아타려 내렸고 좋은 정보 감사한다고 했다. 버스에 타서 ' 휴스턴 주민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니지만'이라는 말을 붙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뭐가 좋은 정보란 말인가. 좀 추워서 짐칸에서 두꺼운 내복바지로 갈아입었다. 샌드위치를 꺼내 먹어 두 개만 남았다. 재료를 듬뿍 넣었더니 맛이 좋았다.
대초원 중간 국도변에 우두커니 사람이 하나 서 있었는데 오브제 같았다.
리오갈레기오스
다음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4시간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충전을 하며 기다리다 2시간 30분이 남았을 때 마지막으로 이 동네를 한번 돌아다녀보기로 결심했다. 버스회사에 20페소에 짐을 맡기고 인포메이션에서 지도를 받아 항구로 향했다. 중심가를 갈 시간은 되지 않았다.
최단 거리를 알려줘서 걸었는데 거리가 터프해서 좀 놀랐다. 거리에 쓰레기가 많았고 집들도 관광지들과는 달라 거친 곳이 많았다. 뮤로도 여기저기 많았다. 쿠바나 볼리비아만큼은 아니지만 오래된 차들이 많았고, 소음기를 단 차들이 많았지만 이상하게 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조심스러워졌다. 그렇게 조심할 정도의 거리는 아니었지만 130일 동안 아무 일도 없었기에 마지막 미지의 이곳에서도 별일이 생기고 싶지는 않았다. 시간도 넉넉지는 않아서 빨리 걸었고 점퍼의 모자를 쓰려다 후드의 모자를 눌러썼다. 보호색이었다. 30분가량 걸으니 항구가 나왔다. 항구는 한때 번성했으나 지금은 쇠락해 폐허가 된 곳이었다. 곳곳에 고철이 널브러져 있었고 철골 구조물도 삭아 부서져 내릴 것 같았다. 그리고 좀 더 걸어가자 시민들을 위한 산책로가 가까스로 제대로 지어져 있었다. 여기를 관광 인포메이션이 소개를 해준 거구나 생각을 했다. 조금 걷다 돌아가는 길에는 무너져가는 운동장이 있었는데 자세히 듣다 보니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운영 중인 것 같았다.
역시 관광지에서 한 사회를 느끼는 것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는 대도시가 차라리 낫다. 아무리 가리려 해도 다 가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페루 리마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지대를 둘러싼 거대한 벽을 지어 '수치의 벽'이라 불린다는데 그런 것처럼 말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공항 가는 8번 버스에서도 그러했다. 그렇다고 이게 바로 아르헨티나라고 말할 수도 없다. 서울처럼 대도시의 인구비율이 높을 것이고 그곳에 살지 않는다면 오히려 통계수치가 더 믿을만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통계수치가 싸고 맛있는 매일의 소고기 요리의 행복도를 설명해 주지는 또 못할 것이다. 인민에게 고깃국을 먹이고 싶었다 하지 않았는가? 어느 나라에서는
그렇다고 엘찰튼이나 우유니를 가지 않을 수도 없다. 생각해 보면 책에서 소개된 must see는 자연환경이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대도시는 그냥 걸어 다니고 시장을 가고 밥을 사 먹고 자연스럽게 생활해 보는 것이 더 좋았다. 행간을 읽어보는 수밖에. 여기에는 멕시코 식재료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터미널에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나 파타고니아 지역보다 인종구성이 다양했다. 생각해 보니 관광지에 놀러 온 사람들은 거의 백인이었다.
정류소 앞 까르푸에서 먹을 것을 보충하려 했는데 샌드위치나 엠빠나다 같은 조리된 음식은 없어 사지 못했다.
8시 버스였는데 7시 40분쯤 차가 도착했다. 짐을 돌려받으러 갔는데 사람이 보이지 않아 조금 당황했다. 사무실에서 사람을 부르고 탁자를 두드리기도 했다. 담당하시는 분은 옆 부스에 있었고 표부터 보여 달라고 했다. 꼭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니 며칠 동안 잡동작이 많아졌다. 좋지 않았다. 급할수록 언제나 여유 있게.
리오갈레기오스-부에노스아이레스 전반
탑승한 버스는 안데르마스. 우선 차가 무척 깨끗하고 좌석이 훌륭했다. 담요도 있었다. 부에노스 호스텔에서 이 회사가 베스트 중 하나라고 했는데 부에노스-바릴로체 구간을 타고나서 믿지 않았다. 세미 까마였는데 음식도 하나도 없었고 차도 낡았었다. 하지만 인터넷 예약이라 상대적으로 무척 싸서(24시간에 850페소 6만 원 내외) 만족했던 기억이 있었다.
이 버스도 바릴로체에서 엘깔라파테를 가던 버스에서 인터넷으로 가까스로 구입했었다. 자리는 5자리 남았는데 옴니리네아에서는 폰에선 결재가 되지 않았었다. 포기하고 다른 퇴로를 찾기 위해 구글링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예약사이트에서는 가능했다. 1500페소 10만 원가량. 36시간이니 상당히 괜찮은 가격이었다. 생각해 보니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거치는 버스들이 싸고 서비스도 괜찮은 것 같다. 거길 벗어나면 땅이 넓어 반 독점 비슷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처음으로 충전도 가능했다. 글을 쓰기 위해 태블릿 세트를 들고 탈까 고민하다 짐칸에 두었는데 배터리가 무한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긴 구간이라 좌석도 널럴했다. 8시에 탔는데 화장실을 가려다 저녁이 쌓여있는 것을 보았다. 과자하나만 주거나 치즈에 햄 마요네즈만 주는 간편식은 아니었다.
엠빠나다 하나와 샌드위치용 빵 하나와 햄과 치즈가 넉넉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롤케익에 햄을 같이 말아버린 괴랄한 빵에 황도도 하나 있었다. 이것으로도 좋았는데 감자 으깬 것에 얇은 고기도 얹어 따로 메인 메뉴로 주었다. 다 맛있었다. 롤케익만 빼고. 아르헨티나는 요리가 좋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마지막날에 괜찮은 식당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 만족했다. 비행기 음식까지 합쳐서 가장 맛있었는데 와인도 한잔 주었다. 드라이한 와인인데 달 뻔한 친절한 와인이었다. 꽤 마셨는데 다른 때보다 멀쩡했다. 드디어 아이폰도 백 프로 되었고 잠이 들었다.
그러다 4시에 깨서 글을 쓰다 6시 30분쯤 다시 잠들었다. 8시 30분쯤 깨워서 과자와 주는 커피를 마시고 여기까지 글을 썼다. 초원을 한없이 달리고 있고 엄지공주 같은 영화가 끝나고 지금은 레고 배트맨. 지도를 보니 2/5 왔다. 오전 11시 30분
후반부
차를 한번 갈아탔다. 환승 개념이 아니라 차도 할 만큼 했으니 쉬어야 하는 모양이다. 충전이 되지 않았지만 차는 좋았다. 열심히 글을 써 이글과 피츠로이 등반기를 썼다. 점심을 줄 분위기가 아니라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었는데 점심을 줬다. 그리고 간식까지 배고플 틈을 주지 않았다. 지금은 20시 30분 저녁을 준다. 메인 메뉴가 어제만큼은 아니었지만 풍부했다. 과식할뻔했는데 적절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12시간으로 다가오자 차가 가득 찼다. 내 옆에도 사람이 찼고 화장실을 다녀와 잠이 들었다.
새벽에 깨었더니 서너 살쯤 된 남자아이와 같이 탄 아빠는 아이가 자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던 모양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근교에서 사고가 있었는지 정체가 극심했다. 7시 50분에 도착할 버스가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근교였다. 너무 늦어지자 과자와 커피를 한번 더 줬다. 도착 시간은 9시 55분. 급한 분들이 아닌데 버스가 레티로에 들어오자 모두 일어서 있었다. 37시간 55분 엘칼라파테에서부터라면 46시간 55분이 걸렸다.
레티로 터미널에서 식재료와 음식을 거의 버렸다. 이전 묵었던 호스텔에서 샤워를 하고 좀 쉴까 했다. 그런 것은 쿨하게 잘해줄 것 같은 곳이고 뭣하면 조금만 지불하면 될 것 같았다. 충전을 하고 무엇보다 샤워를 하고 싶었다. 공항버스 레온버스가 레티로 근처라 시간표를 알아보러 갔다. 짐만 맡아주면 편하게 가볼까 생각도 했다. 220페소에 짐은 55에 맡겨야 했다. 미련 없이 그냥 8번 버스를 7.5에 타기로 했다. 거의 30분 간격으로 버스가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는 길이 다양하지는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숙소 근처로 갔는데 먼저 l이 주문했던 로즈힙오일을 사러 갔다. 그런데 종류가 다양하지 않아 가방을 메고 한국의 명동이라 볼 수 있는 플로리다 거리를 헤매었다. 화려하고 깔끔하고 환전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물건만 팔았고 다른 물건을 파는 곳은 너무 비쌌다. 그냥 프랜차이즈 편의점의 작은 콜라값이 딱 두 배였다. 버스가 연착된 두 시간이 아쉬웠다. 씻거나 충전을 하기에도 애매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시간도 빠듯했지만 그 숙소에서의 불편했던 기억도 남았던 모양이다. 플로리다 바로 옆골목으로 돌아갔다. 콜라값이 반값이 되었고 이민자 거나 체류자로 보이는 비백인 현지인들이 은행 환전소 앞에 길게 줄을 서 있었고, 천막을 치고 살고 있는 분도 있었다.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거나 작은 과자나 볼리비아처럼 아이를 안고 작은 휴지를 팔기도 했다. 아르헨티나는 휴지가 풍부해서 잘 팔릴 것 같지는 않았다.
기념품으로 마테를 샀다. 현금과 시간이 없어서 잔은 사지 못했고 찻잎과 빨대 비슷한 도구를 여러 개 샀다. 마테를 마시는 사람들의 자세는 마치 약쟁이들 같아 좋다. 좋은 의미에서 몰입이 있다. 마테를 마시기 위해 많은 아르헨티나 인들이 다양한, 굳이 은제 잔과 화려한 빨대, 보온병 그것을 보관하는 통을 세트로 들고 다닌다. 등산을 하거나 관광지에서도 자주 보게 된다. 그러곤 약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묻고 같은 빨대로 나눠마신다. 향은 거칠고 깊은 담배향 같은 게 인상적이었다. 빨대를 좀 많이 사 두려 했는데 마지막에 시간도 현금도 부족했다.
8번 버스를 탔다. 바로 옆 지하철역 congresso에 내렸다. 모든 8번 버스가 공항에 가지는 않아 묻고 30분가량 기다려야 했다. 옆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저건 안 간다고 얘기해 줬다. 지난번 노하우를 살려 제일 뒷자리에 앉아 비교적 편하게 왔다. 이민자로 보이는 유색인종 청년이 내 옆에서 잠들어 버렸다. 너무 편히 잠들어 허벅지가 푹 닿아 버렸는데 너무 편하게 닿고 있어서 나도 편안했다.
공항에 도착해서는 다음 계절을 대비해 내복을 벗고 모든 짐을 큰 배낭에 넣어 부쳐버렸다. 엠빠나다를 두 개 먹었고 면세점 와인은 스페인에 비해 너무 비싸 살 즐거움이 없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휴스턴 10시간 비행
이륙을 하며 바라본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계획이 잘되어있고 지대가 넓어 반듯하고 반짝거렸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지나서도 아래를 쳐다보면 작은 불빛들의 섬들이 군데군데 찍혀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행기의 가장 뒷자리에 일본인과 같이 앉아갔다. 며칠 전 허리케인으로 3일이 미루어졌다고 했다.
이륙 후 식사를 주었다. 무난하고 먹을 만한 메뉴들이었다. 콜라에 와인도 한잔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비행기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안전벨트 사인이 떴다. 처음에는 흔들리며 놀이기구 타는 시늉을 하기로 했는데, 그 후 20분가량 지금까지 타본 민항기 중에서는 가장 심하게 오래 흔들렸다. 와인이 저절로 넘치고 앞자리 친구도 그 와중에 전등이 켜져 당황하고 있어 왼쪽 리모컨을 누른 거라고 얘기했다. 옆으로 심하게 흔들리는 것은 그래도 나았는데 가끔 기체가 갑자기 붕 떠올랐다. 조종사의 의지와 상관없이 바람, 기류를 타고 오른 것 같았다. 그럴 때면 예상대로 잠시 후 아래로 훅 떨어졌다. 이 상태가 계속되자 이게 괜찮은가 싶었고 나중에는 무사하길 빌고 있었다. 그렇게 긴 20분이 지나고 식사를 치웠다. 나는 와인을 한잔 더 마실 수밖에 없었다. 한잔이면 충분히 취하는데. 그리고 다시 십여분 동안 심하게 흔들렸다. 공군장교시절(이 말을 할 때마다 웃긴다) 자주 탔던 수송기 이후로 이 정도는 처음이었다.
이렇게 남미는 격하게 나를 떠나보내주었다. 살려 보내줘서 여러모로 고마웠다. 다시 보자.
새벽에 일어나니 미국땅에서 저 아래에 있는 구름 아래에 번개가 다양하게 번쩍이는 것도 굉장했다.
휴스톤 공항대기 5시간
휴스턴 공항에서는 충전을 했다. 오랫동안 숙소 없이 버스 비행기에서 잠들었더니 피곤했고 아주 오랜만에 알레르기가 돋았다.
휴스톤- 나리타 13시간 비행.
기내식이 맛이 없었다. 샤워가 하고 싶다. 숙소가 나흘째 없는 건가?
곧 집에 가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