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행복했던 어제와는 달리 아침부터 좋지 않았다. 잘 자지 못했고 새벽애 깨어서는 계속 고민을 했다. 이 호스텔은 꽤 좋은 곳이었지만 채식 커뮤니티 식사시간으로 인해 부엌을 9시 이후에나 쓰다 보니 늦게 과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릴로체에 더 머무르는 것이 잘못된 선택은 아닐까? 늘 그렇듯 의심하고 있었다. 나는 더 아래쪽 파타고니아 엘찰튼을 가서 트레킹을 하고 싶었고,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네 번 갈아타고 30시간이나 버스를 타야 했고 무려 2600페소를(18만 원가량) 계산해야 한다. 비용이 많아지면 생각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엘 찰튼을 왕복하면 동남아를 왕복할 수 있는 금액이니 이 정도면 짧은 새로운 여행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엘찰튼, 피츠로이 트래킹은 왠지 우유니나 이과수만큼의 임팩트를 줄 것이 확실해 보였고 여행의 마침표로도 괜찮아 보였다. 물론 그곳을 다녀온 스웨덴 친구의 말처럼 날씨의 가호가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버스는 이틀에 한번 있었으니까 그곳에 가려면 오늘 새벽에 가거나 이틀 뒤에 출발해야 한다. 바릴로체는 분명 평화롭고 아름다운 동네였다. 이번 여행에서 오래 머물고 싶은 곳 1순위를 꼽는다면 분명 바릴로체 일 것이다. 이만큼 평화롭고 아름다우면서도 뭔가 끊임없이 변화가 있는, 제주 같은 곳은 그리 흔하지 않다. (볼리비아의 수크레는 안전하고 평화롭고 아주 저렴하지만 이곳만큼 아름답지는 않다. 그곳은 치안이 완전하지 않은 고산지대 쿠스코와 라파즈와 그리고 추운 우유니가 있어 평화로운 곳이다.) 하지만 여행이 막바지였다. 이제 열흘가량 남았다. 어제의 세로 아꼼빠나리오는 모두의 첫 번째 추천 장소이기도 했고 눈보라까지 장식해주다 보니 바릴로체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어제부로 본 것 같기도 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에 임팩트까지 있었다. 더 볼 것이 있을까? 나는 서두르고 있었다.
아침 녘에 쪽잠을 자고 일어나자 옆 침대의 독일 친구가(여자다) 침대 밑을 뒤지고 있었다. 아마 다른 도시로 떠나는 모양이다. 호스텔을 떠날 때는 대부분 평생 다시는 오지 못할 곳이기에 두고 나오는 것이 없게 샅샅이 뒤져야 한다. 매번 이사하는 쌉쌀한 기분이기도 하다. 나도 떠날 때마다 늘 하는 일이라고 얘기하자 그녀도 웃었다. 딱히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어제 아르메니아인이 아니라 독일인임도 알았고 옷을 갈아입는 어색한 순간을(그녀는 전혀 어색해하지 않았다) 피해 인사를 나누며 쌓인 정도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더 머물 것이냐고 묻고는 그렇다고 하자 'take care'이라고 인사를 하고 웃으며 떠났다. 늘 들어도 괜찮은 인사말이었다. 아래층에 내려가니 페루 친구 하나도 여기를 떠나는 모양이다. 스페인어로 띄엄띄엄 얘기를 했지만 여러모로 첫날부터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다. 호스텔에서 일하며 머무르는 친구라 떠날지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녀는 어제 내가 올랐던 세로 아꼼빠냐리오를 같은 날 다른 시간 걸어 오르기도 했다. 아마 여기를 떠나기 전 세상에서 보기 힘든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떠났으리라. 따뜻한 볼인사와 포옹을 하고 나보다 먼저 이곳을 떠났다. 호스텔은 당연히 늘 누군가 떠나는 곳이지만 가볍게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그렇게 나는 오늘 호스텔 문을 나섰다.
저 멀리 스키장이 있는 세로 까데랄을 갈까 바로 뒷산에 있는 쎄로 오토를 갈까 고민을 좀 했다. 그러다 오늘은 가볍게 동네 뒷산을 다녀와 쉬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조금 피곤했다. 그래서 센트로에서 1km가량 떨어져 있는 세로 오토 등산로로 향했다. 물론 이곳도 케이블카가 있었지만 너무 비쌌고(단 몇 분에 300페소가량 했던 것 같다.) 어제의 눈길 산행이 너무 좋았었던 것도 한 몫했다. 평소보다 여유 있게 생각하다 보니 길을 많이 헤맸다. 길을 잃고 센트로에서 벗어난 언덕길을 걷다 보니 이곳이 왜 ‘남미의 스위스’라 불리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설산과 호수 그리고 동화처럼 깔끔하게 지어진 집들이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언덕 위의 호스텔에서는 호수를 보면 마테를 마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을 길을 잃다 찾다 세로 오토 등산로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곳은 어제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흙길이었지만 차도가 잘 닦여 있었고 스키를 타기 위해 올라가는 사람들과 관광객을 태운 버스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어제처럼 케이블카를 안내하시는 분에게 묻자 그냥 7km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눈이 온 등산로 7km는 결코 짧은 길이 아니었는데. 지도상에 슥슥 진하게 그여 있는 길에 마음마저 편해져 있었던 것 같다.
눈은 계속 내렸고 길은 어제의 새하얀 눈길과는 달라 언제나 그렇듯 걷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기분도 그냥저냥 했다. 눈은 내리기 시작했고 들고 다니는 우의를 점퍼 위에 걸쳤다. 그렇게 걷기를 30여분이 지나자, 내가 이 길을 계속 가야만 하나 하는 퍼뜩 들기 시작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걸어 올라가지 않았지만 어제와는 달리 1분에 한 대꼴은 지나가는 차는 얼음 섞인 흙탕물을 끼얹고 지나갔다. 딱히 눈에 띄는 풍경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파타고니아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믿고 어제처럼 구름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제만큼은 아니더라도 정상에서 보상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어떻게든 걸을 기분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2km 정도 지나가자 구름도 짙어지고 눈발은 짙어져만 갔다. 구름이 걷힐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1시간가량 걸었고 돌아가기에는 숙소에서부터 2시간이면 너무 많이 걸었다. 돌아가기에는 스스로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돌아가다니 어떻게든 정상에라도 올라가고 싶었다. 그냥 올라간 것으로도 뭔가 할 일은 했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라고 믿었다. 재미가 없어도 완수했다 그런 이상한 사명감을 가져보기로 했다. 그러다 주변을 돌아보니 나는 혼자였고 길은 온통 진창이었다. 눈발이 날리는 진창길을 30여 분간 흙탕물을 맞아가면 우의를 벗었다 입었다 하며 걸어 올라갔다. 때때로 배가 고팠지만 우의 안의 가방은 쉽게 열기 힘들었다.
흔한 비유지만 삶이란 이런 진창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많이 걸어버린 길이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돌이킬 수 없고 돌이켜보면 어쩌다 보니 그냥 이곳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나는 늘 예상되는 진창들을 피하면서 살아왔다는 생각도 들어버렸다. 그래서인지 때때로 나는 꽤 괜찮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오만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어떤 길이든 깊이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존중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상에 오르는 것처럼 스스로만 아는 근사한 경지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설사 그것을 아무도 모른다고 할지라도 그 근사한 경지라고 믿는 그 순간이 사람을 어떻게든 나아가게 하는 연료가 될 것이다. 지나친 서사는 곤란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부심이 필요하다.
그런 잡생각들을 하며 조금씩 걸어가다 보니 정상에는 올랐다. 그곳은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기 위해서는 몇 km를 더 가야만 했다. 그냥 돌아갈까 하다 평지만 남아있을 것처럼 보여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려 좀 더 걸어보았다. 노르딕코스가 시작된다는 2km 지점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는데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지만 사람도 차도 없어 진창은 아니었다. 한 청년이 반바지를 입고 뛰어가고 있었고 좀 더 걸어가자 걸어가고 있는 3명의 사람을 보았다.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내가 염려되었는지 어디를 가는지 물었다. 그러다 달려가던 청년을 다시 만나 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지 물어주었다. 2km가량 더 가야 하고 가능하다고 했다. 3명은 가족이었는데 젊은 남자는 영어를 잘했고 그는 두 명이 시니어를 아버지와 그의 와이프라고 했다. 라파즈에서 한번 여기서 두 번째다. ㅎㅎ 쿨해. 그들과 산장에서 커피를 한잔하고 그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휴가를 왔다고 했고 언젠가는 기타를 하나 들고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와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언제나처럼 노스코리아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했다. 그러다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예술적인 도시라고 했고 그와 음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눈이 너무 많이 왔고 이미 오후 3시였기에 불확실한 케이블카를 타기보다는 돌아가기로 했다. 그들은 스키장까지 버스를 타고 올라와서 같이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다 그가 전문적인 재즈기타리스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의 팬페이지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의 음악을 듣고 싶어졌다. 스키장에 도착하자 나는 그에게 버스를 타고 내려갈 수 있는지 물어보았고 버스드라이버는 300페소라고 했고 나는 쿨하게 거절했다. 늘 돈을 아끼느라 신경을 썼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그것은 지나친 가격이었다.
그래서 인사를 하고 걸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걱정했던 것과 어제와는 달리 낮동안 눈이 녹아 질었지만 걸어가기에 편했고 종종걸음으로 내려왔다. 아무 걱정 없이 편히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편해졌다. 눈도 잔잔해져 우의도 벗었다. 그렇게 30여분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구름이 걷히고 저 멀리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해가 들어서자 호수는 정말 물감을 뿌려놓은 것처럼 파랗게 아름답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멀리 뒤쪽으로는 호수 안의 섬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저 멀리 설산들도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구름의 움직임도 눈앞에서 보였다. 특히 길 정면 끝에는 파란 호수와 마을들이 조화롭게 들어서 있어 너무나 아름다웠다. 갑자기 오랫동안 응어리진 것들이 풀려 나오기 시작했다. 가슴속에 있는 것이 터져 나오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우유니에서도 이과수에서도 아레키파에서도 나는 그렇지 않았다. 옛날 그 제주에서나 부산에서처럼 말이다.
표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진기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지나가는 차들 안에서도 연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곳이야 말로 언제나 버스 안에서 내리고 싶은 바로 그런 곳이었다. 창문 없이, 한참이나 그곳에 머물러 즐겼다. 걸어가는 이는 거의 없었으니 환성도 질렀고 노래도 흥얼거렸다. 20여 분간의 짧은 시간이 지나자 다시 날은 흐려졌다. 하지만 내 마음은 평화로웠다.
바릴로체 5일째
어젯밤은 피곤했던지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약간 노곤했지만 개운하고 상쾌했다. 며칠간 내렸던 눈도 멎고 화창했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어제 숙소를 들어오며 오늘은 이후 일정을 위해 쉬고 밀린 글도 쓰기로 마음먹었는데 마음이 살랑살랑했다. 정말 화창한 날씨였고 눈 때문에 마음이 불편할 때 바랬던 바로 그날이었다
라오라오 근처의 자전거 코스를 제대로 걷거나(아마 하루종일 걸릴 것이다) 세로 카타렐을 근처 트래킹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욕심을 접고 잠시 동네 산책을 하고 들어오기로 했다. 도저히 나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완전 무장을 벗고 운동복 바람으로 점퍼하나만 걸치고 호스텔을 나섰다. 어제 귀갓길에 보았던 언덕 쪽으로 걸어가 봤다. 하지만 호수를 보기 위해서는 너무 많이 걸어야 했기에 그냥 돌아와 센트로 시빅에 있는 가까운 호수로 길을 돌렸다.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만약 돈이 많았다면 내 여행은 어땠을까? 지금처럼 이러했을까? 어제 같은 개고생 뒤의 환희는 있었을까? 아마 돈이 많았더라도 나는 이렇게, 대신 더 길게, 걱정 없이 여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태어나서부터 부유했다면 달랐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 좋았을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더 쉬워졌을 것이다. 우유니 여행사에서 몇만 원을 아끼기 위해 기진맥진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바릴로체에 오기 위해 밥도 주지 않는 세미카마 버스를 타면서 고생하면서도(한국 고속버스보다 훨씬 편안하지만 동행이 가고 나니 옆자리의 사람과 긴 시간 몸을 맞대고 가는 것이 꽤 불편했다. 그래서 메뚜기.) 그나마 반값이라고 밥 주며 비싼 것보다 이런 싼 버스가 있다고 고마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우유니에서 이과수로 슝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건 좋았을까? 호텔을 이용했겠지? 쉽게 내 경험에 가산점을 부여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부자나라 사람들에게 과자하나가 큰 기쁨으로 다가오지 않듯 쉬운 것들은 당연해질 수는 있을 것이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의 시간을 얻고 그 편의를 바탕으로 다음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면 더 큰 자극, 아름다움을 추구하겠지. 사람에 따라 유흥이 될 수도 예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유흥과 예술이 그렇게 다를 건 뭔가?
버스를 타고 내리며, 슈퍼마켓을 오가며 보았던 바로 그 호수가 보였다. 그런데 해가 창창해서 그런지 너무 새파랬다. 좀 더 가까이 호수 해변으로 내려가 보았다. 그동안 추워서 보지 못했던 벤치들과 작은 조형물들이 편하게 놓여있었다. 바람 끝은 차고 매운데도 있었지만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느슨하고 평화롭게 놓여있었다. 확 트인 호수는 진한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았고, 저 멀리 설산과 섬들도 생생하게 보였다. 그러다 뒤에 놓여있는 건물들을 보았다. 그리고 저 멀리 언덕 위의 마을들도 보았다. 늘 보던 것들이었는데 참 이쁘고 조화로웠다. 그리고 해변 뒤편 다리에는 뮤로(그래티피 같은 것이다)도 그려져 있었다. 아 여기가 바로 우리가 여행을 떠나면서 느끼려는 한국-아님의 바로 그곳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전에 여행을 처음 떠났을 때는 그냥 홍콩에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행복했었다. 오랜 여행에 잊고 있던 감각이었다. 이런 기분은 잠시 느끼려 이태원도 가지 않았는가? 우유니에서도 이과수에서 뭔가 아쉬웠던 것은 이런 무뎌진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의미부여행위에는 생명력이 담겨있다. 인간이라는 복잡한 동물은 살아갈 이유와 에너지를 집어넣어 줘야 한다. 여행에서의 수많은 행복회로들에도 어떤 의지들이 담겨있다. 피 같은 돈을 탕진하며 온 여행에서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어떻게든 삶의 에너지를 끌어내려한다. 아마 없는 돈일수록 더 절실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나는 때때로 자신의 고생을 미화하며 서사를 끌어내기도 한다.
(뭐 그렇게만 얘기하기에는 덜 편한 여행이 현지 문화를 더 많이 접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불편한 것은 다른 현지의 환경이고 돈을 지불하먼 쉽게 그것을 자신의 문화로 변환해 준다. )
바릴로체는 정말 너무 좋은 곳이다. 평화롭고 아름답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것은 평화롭지 않다. 자극이 지나치기 때문이다. 우유니와 이과수는 그랬다. 제주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은 걸으면 걸을수록 다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그 흐름에 집중하다 보면 더 강렬한 자극을 느낄 수 있다. 바릴로체의 가보지 못한 곳들은 다 조금씩 설산과 호수와의 거리와 각도를 달리하며 아름다울 것이다. 바릴로체는 그러면서도 강렬한 무언가도 보여준다. 아마 주변의 넓은 지대도 무척 아름답고 평화로울 것이다. 그러면서도 도시로서의 편의성도 갖추고 있다. 아름답게 지어진 자연스러운 소도시들은 아름다움을 더한다.
갑자기 호숫가에서 바릴로체가 아련해졌다. 아직 이곳인데 벌써 그리워질 것 같다. 이런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내 마음도 이번 여행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분이 쌉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