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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샘 Nov 15. 2023

잘 먹고 잘 살기

보이지 않아 보게 된 세상

<보이지 않아 보게 된 세상>


Chapter21. 잘 먹고 잘 살기


밥을 먹는 '일상'이 '일상'임에 감사하자.


우리가 먹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먹지 않고 살 수 없는 것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진리이다. 또한, 직업이 갖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제1의 의미는 역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 문제가 해결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성취감이나 적성, 사회공헌 등의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할 여력이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이렇듯 갑자기 '먹는'것에 관한 중요성을 역설하는 이유가 집에서 아내에게 제대로 된 반찬을 얻어먹지 못하고 있는 데서 나오는 푸념이 아니냐는 굉장히 합당한 지적을 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주제를 끄집어낸 것이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럼 굳이 왜 밥 타령을 하고 있느냐?! 하면 그것은 눈에 뵈는 것이 없는 상태로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이 제법 쉽지 않은 일이라는 이야기를 해보기 위해서이다.      


헐리우드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탐 크루즈 형님이 손을 잡고 만들어 개봉했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년 개봉)'는 2054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굉장히 재미있는데 영화의 중반부에 가면 여차저차하고 으쌰으쌰 한 이유로 우리 탐 형님이 양쪽 눈을 통째로 안구 이식받는 수술을 하고 눈에 붕대를 감은 채로 냉장고에서 샌드위치를 찾아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눈에 붕대를 하여 뵈는 것이 없다 보니 신선한 샌드위치가 아니라 썩은 샌드위치를 먹고 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눈에 뵈는 것이 없는 체로 무언가를 먹고자 할 때 부딪히는 첫 번째 난관이다. 과연! 내 앞에 있는 이것이 먹어도 되는 것인지, 냉장고에 있는 우유는 유통기한이 3일 정도만 지나버린 신선한(?) 상태의 우유인지 나 스스로는 판단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냄새와 촉감 등으로 도전을 해보지만 개봉되지 않은 음식물의 유통기한 경과 여부 등은 알아내기 불가능하다. 


더욱이 이것은 단순이 유통기한이 경과했다거나 음식이 썩었다거나 하는 문제를 지나, 내 앞에 놓인 음식의 종류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으로 이야기의 중심을 확장해 나갈 수 있다. 백반집 같은 곳에서 반찬이 여러 종류가 나오면 어느 것이 먹어도 무사한 것인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그저 먹어보는 것뿐이다. 그렇다 보니 한번 먹어보고 안전한 반찬이 얻어걸렸다면 본의 아니게 그 반찬을 위주로 그날의 식사를 해결하게 되는 것이 일상다반사이다. 그런데 문득 집어 든 반찬이  생선 요리, 그것도 생선 가시가 살코기 보다 많은 부분을 잡은 경우에는 조용히 휴지를 찾아 위장으로 가야 할 음식물을 휴지 위에 다시 올려놓고는 하는 일도 제법 있다. 그 밖에도 살코기인 줄 알고 집었는데 비계덩어리이거나 면인줄 알고 먹었는데 팽이버섯이었던 것과 같은 경험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기도 귀찮다.     


불편함의 절정은 고기나 찌개처럼 중간에서 작업을 하고 내 것을 덜어와야 하는 음식들을 먹을 때이다. 고기를 나의 판단과 섣부른 행동으로 불판에서 집어드는 경우 그것은 한쪽면만 익은 상태인 '반익반회'의 상태일 수도 있고 어쩌면 육즙이 가득 배어 나오는 극도의 레어 상태일 수도 있다. 그리고 찌개를 스스로 퍼 나르다가는 앞접시 위에 올려놓는 것보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음식이 더 많을 수 있으니 이거 뭐 음식 먹기가 서울대 가는 것만큼 난코스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는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함께'이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 지난 수년간의 회사 생활 속에서 다행히 좋은 동료들을 만나 나와의 식사 자리 도중에 '너랑 귀찮아서 못 먹겠다!'라고 말하고 뛰쳐나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하하. 다들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로  나의 식사를 잘 지원해 주었다.     

 

이렇듯 우리 모두는 먹고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누군가는 좀 더 다른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노력이 이상해 보이고 낯설어 보이지 않게 배려해 주고 서포트해 주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숙제인 것이다. 숙제가 말끔하게 해결되는 날 조금은 더 편안한 마음과 느긋한 자세로 지인들과 함께 식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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