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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샘 Aug 07. 2023

힘들고 어렵다고 행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아 보게 된 세상#7

<보이지 않아 보게 된 세상>


Chapter.7. 힘들고 어렵다고 행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돈이 많다고 더 행복한 것이 아닌 것처럼,
힘들고 어렵다고 행복이 함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 년 여만의 복귀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좌충우돌하며 회사에 다시 적응해 가는 시간은 나름의 즐거움이기도 했다. 물론 놀고먹는 일의 즐거움과 유익함이란 나의 짧은 지식과 소견머리로 다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지만, 아침에 일어나 회사 갈 옷을 입고 사람들과 함께 전철에 시달리며 회사에서 끙끙거리다 귀가하는 그 일상이 많은 것을 잃어버린 나에게는 큰 행복이었다.      


  소소한 문제라면 그 행복을 길게 즐길 여유 따위 없이 나에게 ‘불행’ 또는 ‘고난’이라고 불리는 친구들이 방문했다는 것이다.      

 

  거부반응... 거부반응은 모든 장기이식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합병증이다. 새로 들어온 장기를 내 몸에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가라고 내쫓는 반응..이라고 나는 얘기한다. 나의 눈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니었고 어찌 보면 젊은 날의 치기로 관리의 소홀함도 있었던지라 거부반응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거부반응은 내 몸 안의 면역력이 강하게 작동돼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보니 치료 방법은 면역력을 낮추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면역억제제를 복용하고 점안하고 바르고 하면서 거부반응 치료에 돌입하게 되는데, 이 경우 몸의 면역력이 급감하기 때문에 다른 병증이 날아들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내 담당 교수님도 역시 면역억제제를 다량 처방하여 사용하게 하셨다. 약을 넣고, 먹고 하면서 눈이 조금씩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진료 때 검사를 해보니 과연 거부반응이 좀 잡힌 듯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교수님 말씀을 듣게 되었다. 그때는 정말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지 모른다. 이대로 잘 조절되면 다시 괜찮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의 머릿속이 꽉 차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아침에 출근길에 오르는 데 눈이 따끔한 것이다. 요즘 약도 많이 넣고 상태도 좋지 못했으니 그런 것이겠지. 하고 속으로 되뇌이며 다음 진료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진료 때 교수님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는 정말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면 내가 안과에서 주로 듣는 이야기는 남들이 살면서 한 번도 듣기 어려울 정도의 안 좋은 이야기들의 행진이었던 것 같다. 교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면역력이 억제되어 바이러스가 침투해 '헤르페스'가 왔다는 것이다. 헤르페스는 사전상으로 '바이러스가 침투해 피부나 점막 등에 물집이 생기는 병증'을 의미한다. 우리에게는 보통 피곤할 때 입술 근처에 생기는 질환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것이 나의 각막에 찾아온 것이다. 바이러스나 세균의 침투는 거부반응을 잡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잘 못 하면 그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몸으로 퍼져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고, 어쩌면 눈이 썩어 들어가 아예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거부반응 치료를 중단하고 바이러스를 잡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부반응 치료의 중단은 나를 다시 암흑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시력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져서 한 달이 되기 전에 나는 눈앞에 있는 손가락의 숫자도 세지 못할 정도의 시력을 지닌 문자 그대로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나이'가 되어 있었다.    


  거부반응 조절의 실패는 곧 두 번째 각막이식이라는 단 하나의 선택지만을 나에게 안겨 주었다. 언젠가 찾아올 줄 알았던 그 선택지가 예상을 지나치게 뛰어넘는 빛과 같은 속도로 나에게 방문했을 때, 나의 실망감과 아픔은... 어떤 워딩으로도 설명이 쉽지가 않다. 다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힘들었던 시간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좀 더 나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들을 가늠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종종 그 시절을 돌아보며 나를 다잡는다. 내가 더 잘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직장에서 남들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푸념을 할 때, 그 시절의 나의 바람이 무엇이었나를 생각해 본다. 그 시절 나는 혼자 출퇴근할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저 회사에서 민폐를 끼치지 않고 일할 수 있게 되기만을 바랐다. 이미 그 이상을 실현한 지금, 어찌 보면 더 바랄 것이 없는 상황 속에서 아팠던 청춘의 시간은 '불혹'으로 나를 이끌어주는 내비게이션 같은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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