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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샘 Feb 26. 2022

복귀 그리고 버티기

보이지 않아 보게 된 세상 #6

<보이지 않아 보게 된 세상>


Chapter6. 복귀 그리고 버티기


 회사생활은 누구에게나 ‘버티기’ 이다.


재활훈련을 받았던 그 해 가을. 각막이식 수술을 받았다. 워낙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이라 만만치않은 수술이었지만 유명하신 교수님이 집도하신 수술이라 수술은 잘 마무리되었다. 

수술 다음 날 안대를 풀고 나면 어떤 세상이 보일까? 하는 기대감에 수능 합격자 발표일보다도 더 긴장되는 마음이었다. 그날 안대를 푸르던 그 순간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확실히 수술 전 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선명한 세상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 순간 한층 더 수능합격발표일과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아… 쫌만 더…’ 하는 느낌. 확실히 뭔가 되긴 했는데 내가 원하던 대학은 떨어진 느낌. 수술전보다 훨씬 잘 보이기는 하지만 나빠지기 전만큼은 안되는 그런’ ..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력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진 것은 사실이었다.  정말이지 수술직전에는 혼자서 거리를 돌아다니지도 못할 시력이었건만 수술 이후에는 혼자 돌아다닐 수도 있게 되었고, 핸드폰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시력이 안 좋았을 때 “이 정도만 시력이 돌아와도 너무 좋겠다.”라고 생각한 것 이상의 시력이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했고 집도해주신 교수님께 감사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력이 회복되고 나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일년 여 전부터 정해져있던 일. 바로 직장으로의 복귀였다. 아직은 원하는 만큼 시력이 나오는 것은 아니고, 몸 상태도 베스트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언제까지고 두려운 마음에 짓눌려 자리에 앉아만 있어서는 평생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베스트의 컨디션으로 링 위에 오르는 챔피언은 없다. 베스트가 아니면 베스트가 아닌 대로 상대방과 싸우는 법을 터득한 이가 챔피언이 되는 것이다. 나는 챔피언은 아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긴 여정에서 늘 좋은 컨디션만을 유지할 순 없고, 그렇다면 챔피언이 베스트가 아니어도 상대방과 시합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것처럼, 나도 저조한 컨디션 속에서 세상과 대적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로 돌아가서 일을 하고싶은 마음을 먹게 되자 나를 지배한 정신은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다. 직장이란 곳으로 돌아가는 설레임과 내가 지금 이 상태로 얼마만큼의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그 이중적인 마음을 짊어지고 출근길에 오른 내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과 흔들리는 정신을 지니고 출근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함께 일하게 된 주임님들과 팀장님, 과장님까지 모두 다시는 만나기 어려운 분들이었다. 주임님들은 휴직전에 같이 일하던 분들도 계셔서 적응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수월했고, 새로운 팀장님 또한 너무 훌륭한 분이시라 나에게 분에 넘치는 배려를 해주려고 애쓰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해 주신 배려가 다 옮은 것은 아니었고, 모든 것이 적절한 것도 아니긴 했다. 하지만 내가 말하기 전에 앞서서 배려해주시는 팀장님은 그 이후로 만나기 쉽지가 없었다.  


복직의 시점에서 내가 맞이한 주변의 인적구성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은 것과 같았다면,  업무에 들어가서 겪어본 시스템들의 장애인 접근성은 거의 천재지변 수준이었다.


내가 시스템 제작의 속사정에 대해 다 아는 건 아니기에 그저 불편함을 나열해보는 정도밖에 할수 없어 아쉽다. 좀 더 전문지식이 있었더라면 시스템 제작사 같은 곳에 건의를 해보았을 텐데 말이다. 그럼 그 불편함에 대해 살짝 나열해 보겠다.  단순한 진상이 되지 않기 위해 나름의 절제를 가지고 기재하였다. 


일단 시각장애인들은 ‘센스리더’라고 하는 화면을 음성으로 출력해주는 브로그램을 사용해서 컴퓨터 작업을 한다.(내가 복직했던 2014년 까지는 센스리더 사용이 지배적이었다. 현재는 윈도우 자체에 음성출력 기능이 내재되어 있어 혼용하여 사용하는 분들도 계시다) 네이버, 구글 등을 웹서핑하고 한글이나 엑셀에서 문서를 작업해보았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접목시켜 보며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제법 괜찮은 프로그램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회사에 깔고 내부망에 들어가 사용해보니 네이버나 다음을 들어갈 때와는 완전히 완전히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읽히지 않는 곳이 너무 많았고 텍스트가 써져야 할 곳으로 커서가 이동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공문서를 작업하는 프로그램에서는 공문을 제대로 읽기가 어려웠고 쓰는 건 거의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이 대박 나는 정도의 불가능성이 있었다. 회계 프로그램에서는 내가 장님이 되었음을 실감하게 해주는 기능이 있었다는 것을 꺠닫게 되었다. 


단순이 프로그램들 사용이 이런데 그 밖의 것들은 얼마나 더 했을지 짐작이 가는가? 출장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아 나 대신 다른 분들이 나가주는 일이 잦았고, 종이서류를 볼 때는 해당 문서를 스캔하고 그 파일을 다시 텍스트로 변환하고 나서야 읽을 수 있어 세상살이가 팍팍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그저 알기만 했던 사실을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장애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우리나라의 근로 환경. 장애인들이 일반인들과 뒤섞여 일하기 어려워하는 현실. 역시 그냥 ‘안다’는 것과 진정으로 느끼고 ‘아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왜 언론에서 자꾸 이야기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의 주변 사람들을 봐도 장애인들에게 조금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으미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그들을 진정으로 도와 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개념의 정립이 되어 있지를 않은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 동안은 등한시했기에 그 누구도 잘 알지 못한 것이다. .


그런 현실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지치고 아파하고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주저앉지는 않은 체로 다른 직장인들이 그런 것처럼 ‘버티기’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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