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 보게 된 세상#8
Chapter.8. Second Round
“내가 옛날엔 말야’를 자꾸 얘기하는 것은 현재가 불행함을 증명하는 것 외에
별다른 효용성이 없다.
두 번째 각막이식을 하고 나름 잘 안착되어 회사로 돌아왔다. 근데 정말 이식받은 각막들은 회사하고 궁합이 안 맞는지 회사에 복귀하고 얼마 안 되어 다시 거부반응이 왔다. 다행히 이번에는 빠른 조치가 별 탈 없이 잘 마무리된 덕에 약간 시력이 떨어진 체로 다시 적정선에서 유지가 되었다. 눈도 안정이 되고 복귀하고 적응도 어느 정도 될 무렵 다시 넘어야 할 큰 산이 다가왔다.
‘인사이동’ 공무원들은 정기적으로 부서를 옮겨 다녀야 하는 규칙이 있고, 장애가 있다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물론 잔류를 신청하고 승인받아 현재 부서에 남게 될 수도 있지만, 나의 경우 휴직과 복귀를 반복하는 동안 한 부서에 너무 오래 있었고, 언제까지 그 부서에만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닌 바 상태가 그나마 나을 때 인사이동을 하는 것이 맞다 생각했다. 인사이동이란 녀석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러니 나같이 눈에 뵈는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정말 어마어마한 일인 것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사이동 시즌이 되면 보통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연락이 온다. 해당 부서에 있는 분들이 같이 일하자고 연락을 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연락을 전혀 받지 못했다. 아는 분들도 별로 없었고, 나처럼 어디 아픈 직원을 데려가고 싶은 상사가 어디 있을까?? 내가 상사였어도 나 같은 직원에게는 연락하지 않았을 것 같다. 문제는 상황이 그렇다 보니 나의 요청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아직은 내가 얼마나 할 수 있고, 어디까지 볼 수 있을지 나도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내가 잘 보이지 않게 된 것에 대한 불평을 되뇌이고 있었다. ‘눈만 잘 보였어도 어디든 갔으면 됐을 텐데...’하는 식으로 말이다. 지금도 나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불평하다 불평에 먹혀 버리지 않고, ‘이렇게 불평만 한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불평해서 뭐 하나. 더 노력해 봐야지.’하는 마음을 먹은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의 긍정의 힘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고 내가 한 선택은 ‘사람을 보고 움직이자'는 것이었다. '일이야 어찌 될지 나도 모르고 누구도 모르니 주변 사람들이 괜찮은 곳으로 가서 노력해 보자.'는 생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여러 조언을 받아 한 곳을 결정하고, 인사팀에 요청하고, 당시 팀장님도 인사팀에 잘 부탁해 주시고 하여 마치 원기옥과도 같은 배려로 원하던 부서에 안착할 수 있었다.
새로운 곳에서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한 사람의 직원으로 인정받는 일이었다. 일을 잘하는 직원이나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장애가 있는 직원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이렇게 텍스트로 표현해 놓고 보면 마치 나쁜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그런 마음을 갖는 사람들은 선량한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이 싫었다. 나도 똑같은 1인임을 인정받고 싶었다. 물론 배려가 필요하고 남들처럼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모든 일을 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님도 확실하니까. 나도 그와 같은 선상으로 바라봐 주길 바랬다. 그래서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했는데, 한 사람의 직원으로 인정을 받았는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하하.
공무원 중에 중도에 실명을 하고 재활훈련을 거쳐 다시 직장으로 복귀한 사람이 내가 처음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어딘가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신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소문이 잘 안 나있는 것을 보면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리고 숫자가 적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으로 통하는 것이 다수다. 나의 시간도 쉬운 순간이 없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아프고 쓰라린 것은 또 아니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행복도 함께하는 그런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들을 누군가의 눈에 띄기 위해서도 아니고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을 위해서 달려온 시간도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나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시간. 그 시간이 나에게 참 고마운 시간이 된 듯하다.
어렵고 힘든 시간에 공을 들인 내 투자는 수익률이 제법 괜찮은 투자였던 것 같다. 그때 얻은 값진 수익률을 바탕으로 나는 어두워진 세상에서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느낌이다. 아직은 적응 중인 나의 두 번째도 제법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