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 보게 된 세상#10
Chapter10. 좌충우돌 육아일기
아이를 하나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함께해야 한다.
아이가 태어난 것은 정말 축복 중의 축복이었다고 할 수 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 분만실에서 아기가 세상에 나오며 울던 그 울음소리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참 신기하게도 텔레비전에서 신생아가 태어날 때 나오는 바로 그 울음소리였다. 다만... 그 축복을 어떤 간섭도 없이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까지라는 시한부였다는 사실은 조금 안타까웠다.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그날부터 겪어보지 못한 6.25가 어느 정도의 난리통이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육아는 정안인들에게도 피를 토하고 불을 뿜게 만드는 거대한 쓰나미 같은 일이다. 그러니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내가 감당하기에 얼마나 어마어마했을지 굳이 자세히 적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아내는 신생아인 아이를 돌보며 나까지 어느 정도 돌봐주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리고 아마 그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아내의 멘탈이 자꾸 가출을 시도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신생아의 주요 업무라면 밥 달라고 울고, 기저귀 갈아달라고 울고, 재워달라고 울고, 기분 안 좋다고 울고, 울고, 그리고 또 우는 일일 것이다. 덕분에 많은 초보 부모님들이 그 울음을 달래기 위해 일생동안 해보지 않았던 갖가지 노력을 기울인다. 안아주고, 업어주고, 웃겨도 보고, 장난감도 쥐어줘보고 하면서 말이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위에 나열한 방법들을 다 동원해 보았고, 놀랍게도 그렇게 얻은 결론이 안아주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답을 얻기 위해 굳이 시행착오를 해가며 노력한 나 자신에게 약간의 비난 섞인 말을 해주며 그때부터 아이를 열심히 안아주는 것이 나의 주요 업무가 되었다.
사실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나로서는 그 외에 해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배변을 처리하기 위해 기저귀를 갈아준다고 설치다가는 집 안을 온통 X밭으로 만들 수 있는 위험이 있었고, 목욕을 시켜준다고 나섰다가 잘못해서 목욕물을 실컷 들이키게 해주는 우를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이런저런 위험들을 제거하고 나니 내가 열심히 해 줄 수 있는 일은 자장가를 부르며 안고 서성이는 일이 최선이었다.
그 덕분일까?? 지금도 손목과 어깨가 좋지 않다... 특히 두 돌 이전까지는 감기에 걸리거나 하면 아이가 누워서 잠을 거의 자지 못해서 내가 아기띠로 아이를 안고 소파에 앉아 잠든 날도 여러 번 있었다. 여러모로 부족한 나이지만 놀랍게도 앉아서 자는 능력만은 탁월해서 다행히 아이를 안고 잠드는 기술을 구사할 수 있었다. 반면에 아내는 앉아서 잠을 자는 일이 익숙지 않아 그런 고급 기술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소파에 앉아 자는 나를 보며 아내가 "개똥도 약에 쓸 때가 있구만..."이라고 중얼거리며 나를 지나친 일은 우리 가족만의 소소한 담소거리로 남아있다.
신생아 시기를 벗어난다고 어려움이 지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안아주는 시간이 좀 줄고 아이가 누워서 자는 시간이 엄청 늘어나긴 했지만, 안아서 재울 때 나에게 느껴지는 하중은 몇 배가 되어 있었다. 하하하. 그리고 이런 육체적인 고난은 좀 부수적인 요소이다. 아이가 조금씩 크다 보니 함께 놀아줘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엄청난 문제가 있었다. 이 부분에서 우리 집의 유니크함이란 공놀이 같은 육체적 놀이를 엄마가 담당하고, 인형 놀이와 같은 비육체적 놀이를 아빠가 담당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아이가 9살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가 아이와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활동은 아직도 인형 놀이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뜻밖에도 코로나19가 불러온 부작용이 우리 집에 들이닥쳤다. 작년 수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던 시기 우리 가족도 감염되고 별 탈 없이 나았는데, 그 이후 체력이 급감한 나의 아내이자 아이의 엄마가 몸으로 뛰면서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이 현격히 줄어든 것이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아이에게 독서 시간을 갖자는 꼬드김으로 본인도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기술을 구사하고 있다. 다행히 아이가 체육센터 프로그램 등을 다니며 친구들과도 뛰어놀고 해서 적당히 체력을 소진하고 있지만 그간의 변화를 지켜봐 온 나는 아내의 꼼수를 파악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장난감 상자 뒤쪽에서 쓰러져 있는 배드민턴 라켓을 구조해 닦아서 좀 잘 보이는 곳에 두었는데, 최근에 그 라켓이 다시 장난감 상자 뒤쪽에서 슬피 울며 쭈그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조금 씁쓸했다... 하하하.
나의 악조건과 육아라는 전 국민의 공통 고난 상황 가운데서도 즐거움과 행복은 함께 한다. 얼마 전 아이가 학교 수업 시간에 가족 소개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그 그림의 제목을 '해피 가족'이라고 적은 것이다. 그 제목을 보고(정확히는 아내에게 그 제목을 듣고) 가슴이 뭉클했다. 부족한 아빠와 함께 지내면서도 항상 즐겁고 밝게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 무한의 사랑을 보낸다. 더불어 항상 나와 아이 둘을 챙기느라 고생 중인 아내에게도 감사함과 사랑을 전한다.
앞의 문단에서 말한 것처럼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행복과 즐거움이 함께한다. 내 생각은 그렇다. 돈이 많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행복의 크기가 더 큰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행복을 주는 소재가 다를 뿐인 것이다. 장애가 있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는 그 상황을 이겨내고 일상을 다듬는 시간들이 행복한 시간이 되어주는 것이고, 재벌가에서는 회사를 키우고 기업 가치를 높이며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사실 재벌이 되어보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다.)하지만 기업 가치를 높이는 일이 내가 오늘 할 일을 마치고 먹는 치킨 한 조각과 맥주 한 잔보다 더 큰 행복을 주는 부등호가 그려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항상 행복을 절대평가라고 이야기한다. 누구와 비교하지 아니하고 내가 스스로 느끼는 행복이 진짜 행복인 것이니까.
그래서 눈에 뵈는 것이 없어 힘들고, 아픈 눈 덕에 병원에 많은 돈을 지불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도 되지 못하지만, 아빠의 휴가를 기다려주고, 아빠와의 인형 놀이를 컴퓨터 게임보다 좋아해 주는 딸과 늘상 귀찮게 하지 말라는 농담을 건네며 나를 이끌고 다니는 아내가 함께하는 나는 오늘 행복하다.